불임을 극복하는 차세대 보조생식기술로 떠올라… 시술 과정에 복제기술 적용돼 법적 제한 있을 듯
30대 중반의 주부 장아무개씨에게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오랜 고통이 아물어가는 지금, 장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살배기 딸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그런 그에게서 지난 10여년 동안의 맘고생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었다. 장씨는 담당의사로부터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진단 결과를 전해들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에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었다. 순간 불치의 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때에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백혈병 치료의 가혹한 대가 ‘불임’
“당시에는 아기를 갖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깊이 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난소를 냉동 보관하는 기술이 보급되지도 않았을 때이다.” 장씨는 불임 가능성을 알면서도 뾰족한 대책 없이 항암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대부분의 백혈병 여성들은 항암치료 과정에서 화학요법과 방사선 등의 영향으로 난소조직이 파괴되는 걸 피하기 힘들다. 이런 부작용을 막는 방법이 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을지의대 산부인과학교실 불임센터 김세웅 교수팀이 항암치료 전에 난소를 떼어내 냉동 보관한 뒤 치료가 끝나면 재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만일 당시에 그런 게 있었다면 장씨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난소를 보관했을 것이다.
다행히 장씨는 성공적으로 항암치료를 끝냈다. 어느 정도 몸을 회복했을 때 장씨는 아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난소가 망가진 장씨로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아기에게 물려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임신하는 방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장씨 부부는 각종 불임센터에 수시로 드나들었다. 난소가 없거나 난소가 난자를 생산할 수 없는 여성들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난자공여’였다. 일반적으로 난자공여에 의한 임신은 기증자의 나이가 34살 아래로 가임 경험이 있을 때 성공률이 높다고 했다. 이런저런 사정을 따져봤을 때 가장 적합한 사람이 장씨의 언니였다.
장씨의 언니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과배란을 유도하는 주사를 일주일가량 맞는 등 ‘조카’의 출생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난자공여에 의한 수정은 시험관아기법(IVF)으로 난자를 공여자의 난소에서 얻어낸 뒤, 불임 여성 배우자의 정자와 수정을 시킨 다음에 생긴 배아를 수혜자의 자궁에 넣는 방법이다. 임신이 되면 아이는 유전적으로 아빠의 것을 받아들이지만 엄마와는 아무런 유전적 연관성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난자공여가 이뤄져도 임신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장씨는 두번에 걸쳐 난자공여 시술을 받았지만 끝내 아이를 갖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불임부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의 난자나 정자를 받아서 임신하기도 한다. 국내의 불임센터에서 이뤄지는 보조생식기술 가운데 2% 정도는 난자공여 시술로 이뤄진다. 상당수는 친자매가 난자를 공여하지만 무명의 공여자에게 유상으로 난자를 제공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난자 거래 가격은 신체조건이나 학력 등에 따라 다르지만 150만∼200만원 선으로 알려졌다. 이것을 난자은행 업체에서 사려면 400만원 안팎으로 값이 뛰어오른다. 난자를 제공하는 도너(donor)는 난자생성촉진제의 부작용으로 간 손상이나 신부전 등의 부작용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상당한 시간을 투여해야 하기에 일정한 보상이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아기를 갖고 싶다고 해도 유상 공여자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장씨 역시 고민을 거듭했지만 실행에는 이르지 못했다. "오로지 나로 인해 아이를 가질 수 없었기에 무엇이든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내키지 않는 걸 할 수는 없었다. 난자 매매가 불법이고 생명윤리에 어긋난다는 지적 때문에 실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뱃속에서 열달을 키워도 유전적으로 나와 무관하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장씨는 자신이 임신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으로 여겨지던 난자공여를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몇년 뒤 입양으로 딸을 얻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 장씨는 불임으로 인해 겪었던 고통을 추억처럼 말할 수 있는 ‘어엿한 엄마’가 됐다.
때때로 장씨 부부는 임신을 하려고 5년 동안 맘고생 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어온다. 하루라도 빨리 입양을 선택했다면 아이의 재롱에 오래 전에 고통을 잊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임증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입양을 선택하라고 강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자신의 핏줄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불임의 마지막 장벽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장씨 부부 역시 새로운 선택의 고민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영국에서 최초의 시험관아기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난 지 25년 만에 ‘인공난자’(artificial eggs)가 개발되면서 보조생식기술의 혁명()이 무르익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아기 만들기’ 최후의 관문이 열리는 셈이다.
체세포 핵이식 기술로 인공난자 만들어
인공난자는 생식력이 없는 부부의 고통을 해소할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난자와 정자를 생산할 수 없는 사람은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난소절제술을 받거나 조기 난소부전증을 앓은 여성은 설령 체외수정에 성공해도 자신의 유전물질을 전할 수 없었다. 핏줄 때문에 임신을 꾀하면서 자신의 피를 이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보조생식기술은 수정에 관련된 ‘부품’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다. 다만 기종이 다른 차의 부품을 대체품으로 사용하는 정도였다. 이에 비해 일부에서 차세대 체외수정 기술로 받아들이는 인공수정은 고장난 부품을 ‘자기복제’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낸다. 장씨처럼 난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더라도 임신하는 데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인공난자를 만들려면 배아줄기세포의 복제가 필수적이다. 인공난자를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정자와 난자를 제외한 체내의 세포들은 모두 유전자를 지닌 각 염색체가 두쌍씩 들어 있다. 인공난자를 만들려면 불임여성의 체세포를 떼어낸 뒤 염색체(2n)를 분리해 핵을 제거한 공여난자의 세포질에서 배양한다. 어느 정도 배양이 이뤄지면 2n의 염색체가 들어 있는 공여난자에 전기충격을 주고 화학물질을 주입해 활성을 유도한 뒤 둘로 쪼개면 염색체 n의 난자를 만들 수 있다. 이 상태에서 체외수정을 한 뒤 자신의 자궁에 이식하면 부모의 유전물질을 지닌 태아를 얻을 수 있다.
불임 여성의 체세포로 난자를 만드는 기술은 2년 전 미국 코넬대학 생식의학불임치료센터 잔피에로 팔레르모 박사팀이 발표했다. 당시 연구팀은 난자를 정자와 수정시켜 수정난을 한 차례 분열시키는 데까지 성공했다. 폐경기 여성이나 난소 없이 태어난 여성, 양질의 난자를 생산하지 못하는 여성이 자신을 빼닮은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2001년 11월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팀이 소를 대상으로 체세포를 이용해 난자를 제조하는 기술을 확립했다. 암소의 체세포에서 유래한 염색체와 정자에서 나온 염색체를 지닌 수정란을 배양해 자궁에 이식할 수 있는 배반포기배까지 키웠던 것이다.
최근 인공난자는 자궁이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한스 쉴러 박사팀은 마우스의 배아줄기세포(ESCs)를 이용해 인공난자를 만들었다. 배아줄기세포 유래의 인공난자는 수많은 시도 끝에 만든 것이다. 연구팀은 배아줄기세포가 고밀도를 유지할 수 있는 특수한 접시로 배양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인공난자가 인공정자를 만날 수도 있다. 국내의 한 생명과학연구소는 암소의 난자의 핵을 꺼낸 뒤 수소의 체세포를 집어넣어 수컷의 유전물질을 지닌 난자를 만들었다. 일본 미쯔비스카세이생명과학연구소 토쉬아키 노세 박사팀도 마우스 수컷의 체세포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
기술적 안전성 의문… 실용화 산 너머 산
현대적 생명 연금술을 이용한 기적의 불임 극복법이 실용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공난자를 만들려면 복제양 돌리에 적용되었던 체세포 핵이식 방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 인공난자를 통한 임신은 체외수정과 인간복제의 중간쯤에 속하는 기술을 적용한다. 체외수정은 서로 다른 23쌍의 염색체를 배합해 독특한 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인 반면, 무성생식인 인간복제는 공여자의 염색체 46쌍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인공난자를 이용한 임신은 공여받은 난자에 자신의 체세포를 넣는 핵이식 방법을 적용해 23쌍의 염색체를 배합한다.
설령 인공 난자(정자) 생산을 위한 체세포 핵이식이 허용되더라도 걸림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고난도 체외수정에다 비효율적인 체세포 핵이식까지 적용해야 한다. 복제양 돌리 한 마리를 위해 277개의 양 배아가 쓰였던 것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인공난자를 통한 출산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수밖에 없다. 체세포 핵이식이나 세포배양, 자궁착상 등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태아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은 “체세포 핵이식 성공률은 초기에 0.3% 정도였지만 지금은 적게는 2~3%, 많게는 10% 가까이로 좋아졌다. 인공난자를 이용한 보조생식기술을 제대로 연구한다면 기술적 문제는 해소될 것이다”고 말한다.
인공난자는 유전적으로 부모의 것만 따르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불임 여성의 체세포는 핵이 제거된 공여난자에 들어간다. 그런데 수정란의 세포질은 난자로부터 유래한 것으로서 모계유전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미토콘드리아가 들어 있다. 인공난자를 이용해 아기가 태어난다면 핵 속에 유전정보를 담은 DNA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물려받지만, 핵 바깥의 세포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공여난자를 제공한 여성의 것을 물려받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는 모계를 통해 조상을 추적하는 ‘분자시계’ 구실을 한다. 만일 인공난자로 태어난 아기의 조상을 찾는다면 공여난자를 제공한 여성쪽의 계보에 속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인공난자 아기가 실제로 태어날 수도 있다. 인간복제처럼 사회적 논란 속에서 불임부부의 고통을 해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최초의 인공난자 아기 탄생을 위해 경쟁적으로 시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한 복제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으로선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공난자를 이용한 보조생식기술을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적인 금지가 이뤄져도 유혹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난관의 기능 상실로 임신의 꿈을 접은 장씨가 생각해도 인공난자는 매력적인 시술법이다. “이젠 체외수정을 시도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극복된다면 인공난자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필요한 사람에게 선택의 기회 주어야 하나
지금부터 50년 전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해 프랜시스 클릭과 함께 노벨상을 받았던 제임스 왓슨 박사. 그는 루이스 브라운 이후 체외수정으로 인한 기형아가 속출할 것으로 예측했다. 다시 25년이 지난 지금, 왓슨 박사는 “맞춤옷도 있는데 맞춤아기는 어떠냐?”며 생명현상 문제에 신비주의가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것이 인공난자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만일 난자와 정자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기술이 확립된다면 상업적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더구나 현재의 체외수정에 관한 보조생식기술도 의학적인 부작용이 극복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마침내 불임 극복의 마지막 관문이 열리고 있다. 난자와 정자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차세대 보조생식기술로 불리는 인공난자와 정자, 그것은 금단의 열매일까. |
30대 중반의 주부 장아무개씨에게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오랜 고통이 아물어가는 지금, 장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살배기 딸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그런 그에게서 지난 10여년 동안의 맘고생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었다. 장씨는 담당의사로부터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진단 결과를 전해들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에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었다. 순간 불치의 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때에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백혈병 치료의 가혹한 대가 ‘불임’

사진/ 인공 생식세포를 만들 날이 다가오고 있다. 동성애 여성들도 냉동정자를 이용해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이용호 기자)
다행히 장씨는 성공적으로 항암치료를 끝냈다. 어느 정도 몸을 회복했을 때 장씨는 아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난소가 망가진 장씨로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아기에게 물려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임신하는 방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장씨 부부는 각종 불임센터에 수시로 드나들었다. 난소가 없거나 난소가 난자를 생산할 수 없는 여성들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난자공여’였다. 일반적으로 난자공여에 의한 임신은 기증자의 나이가 34살 아래로 가임 경험이 있을 때 성공률이 높다고 했다. 이런저런 사정을 따져봤을 때 가장 적합한 사람이 장씨의 언니였다.

사진/ 세계 최초의 시험관아기로 기록된 루이스 브라운(가운데)이 탄생 25주년 기념식에서 생후 13주 된 시험관 쌍둥이 형제를 안고 있다.(AP연합)

사진/ 실제 난자를 확대한 모습. 불임 여성도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해 난자를 만들 수 있다.


사진/ 정자를 난자에 직접 주입하는 모습. 체외의 인공배양기는 여성의 자궁보다 환경이 훨씬 열악하다. 인공 수정된 배아를 배양접시에서 살피고 있다.(한겨레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