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특급의 스페니시 드림 성취 가능성… 두툼한 배짱·탁월한 스피드 등 기술축구에 유리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황금땅’(엘도라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8월 말(현지시각) 시즌 킥오프가 되면 그곳에선 별들의 전쟁도 불꽃을 튀기 시작한다.
돈 많은 명문구단들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대표스타 데이비드 베컴(레알 마드리드)에 이어 삼바축구의 재간둥이 호나우디뉴(FC바르셀로나)까지 프랑스 1부리그에서 사들였다. 지네딘 지단(레알 마드리드), 호나우두(〃), 호베르투 카를로스(〃), 루이스 피구(〃), 파트리크 클루이베르트(FC바르셀로나), 하비에르 사비올라(〃), 파블로 아이마르(발렌시아)…. 프랑스·브라질·포르투갈·아르헨티나 등 축구강국을 대표하는 월드스타들을 보유한 것도 모자라다는 듯. 지구촌 프로축구는 바야흐로 ‘프리메라리가 전성시대’다.
이런 황금무대를 한국인 최초로 밟게 된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22·레알 소시에다드). 비록 베컴과 호나우디뉴 등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한 350만달러(약 42억원)의 이적료에 K리그 울산 현대에서 신흥강호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한 터이지만, 그는 찬란한 스페니시 드림을 꿈꾸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아시아의 베컴’이 왔다고 떠들어댄다지만, 그것은 과장된 언어다. 이천수는 베컴과는 축구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이천수일 뿐이다.
치열한 주전경쟁 “박힌 돌 뽑아낼까”
이천수는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톡톡 튀는’ 신세대답게 데뷔 첫 시즌 10골 이상을 넣겠다고 호언했다. “베스트11에 드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개인적 목표는 챔피언스리그에서 골을 넣는 것이다. 정규시즌에서는 10골 이상 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어쨌든 초미의 관심은 8월31일 시작되는 2003~2004시즌 프리메라리가에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아내듯’ 이천수가 기존 주전들을 제치고 한자리를 꿰찰 수 있는지 여부. 바스크족이 거주하는 스페인 북부 휴양지 산세바스티안을 연고로 하는 레알 소시에다드에는 다행히 공격진에 수천만달러의 몸값을 자랑하는 월드스타급 선수들이 없다. 따라서 이천수의 ‘박힌 돌’ 뽑아내기가, 다른 명문구단에 비해서는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레알 소시에다드는 2002~2003시즌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축구명가’ 레알 마드리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시즌 후반까지 정상을 달렸으나, 막판 뒷심 부족으로 레알 마드리드에 챔피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21년 만의 우승 꿈도 덧없이 날아가버렸다. 하지만 2003~2004시즌 유럽 프로축구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거머쥐는 성과를 올렸다.
이천수는 지난 7월 계약기간 3년(+옵션 1년)에 연봉 50만달러(세금 제외)를 받기로 하고 국내에서 정식계약을 맺은 뒤 스페인으로 출국했으며, 현재 팀의 오스트리아 제펠트 전지훈련에 참여해 혹독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당장 주전자리를 파고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천수의 주 포지션인 왼쪽 날개에는 스페인 국가대표로 2002 한-일 월드컵 출전멤버인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데 페드로(30)가 포진해 있다. 산세바스티안 지역의 바스크족을 대표하는 스타로 실력도 정상급이어서, 이천수가 그를 주전에서 밀어내기는 매우 어렵다. 한때 데 페드로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 이적설이 나돌아 이천수를 설레게 했지만 이적은 무산됐다. 이천수의 입지도 좁아진 셈이다.
결국 이천수는 데 페드로란 존재 때문에 오른쪽 날개 자리를 넘보고 있으나 그곳에도 러시아 출신으로 185cm 장신인 발레리 카르핀(34)이 강력하게 버티고 있다.
섀도 스트라이커·좌우 날개로 기용될 듯
이천수의 섀도 스트라이커 기용 가능성도 큰 것으로 현지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4-4-2 포메이션을 펼치는 프랑스 출신 레날 다누에(55) 감독은 최근 자체 홍백전에서 여러 차례 이천수를 2진팀의 섀도 스트라이커로 기용했다. 이 자리 주전은 지난 시즌 호나우두와 함께 득점 2위(23골)에 오른 터키 출신의 카베치 니하트(24). 2001~2002시즌 터키 명문 베시크타휴에서 이적했다. 문전에서 포스트플레이를 하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출신의 188cm 장신 골잡이 다르코 코바체비치(30)의 뒤를 받치는 자리다. 레알 소시에다드는 지난 시즌 데 페드로, 카베치 니하트, 다르코 코바체비치, 발레리 카르핀 등으로 이어지는 공격진의 막강한 화력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결국 이런저런 팀내 사정을 종합해보면, 이천수는 당장 주전급으로 특정자리에 투입되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섀도 스트라이커나 좌우 날개로 교체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다 유럽 프로축구 무대 경험이 없고 팀 동료들과 조화를 이루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천수 자신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천수는 오스트리아 제펠트 전지훈련 중 “레알 소시에다드는 지난 시즌 베스트 멤버로 선발진을 구성할 것이기 때문에 시즌 초 주전을 맡기가 힘들 것으로 본다”며 “6개월 안에 베스트 멤버로 진입하는 것이 당면과제”라고 실토했다.
그럼에도 이천수는 팀의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황금기회가 될 전망이다. 챔피언스리그는 프리메라리가를 비롯해 이탈리아 세리에A,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기타 네덜란드·포르투갈 등 유럽의 프로축구 리그의 시즌 챔피언 32개 강호들이 총출동하는 대회여서, 이천수로서는 자신의 이름을 유럽무대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기 때문이다. 특히 오른쪽 날개 카르핀이 30살을 넘긴 노장이어서 시즌 중 함께 치러지는 프리메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다 소화하기 벅찬 상황이다. 이천수의 오른쪽 날개 기용 가능성을 관측할 수 있다.
레알 소시에다드는 정규시즌 다른 19팀과의 홈 앤드 어웨이 38경기말고도, 챔피언스리그 본선 32강전(4개팀을 8개조로 나눠 치르는 홈 앤드 어웨이 경기)에서 최소 6경기를 더 소화해야 한다. 팀이 16강에 오르면 경기 수는 더욱 늘어난다. 레알 소시에다드의 인적 자원이 레알 마드리드나 발렌시아 등 다른 상위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이천수가 출장기회를 잡을 가능성은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레알 소시에다드가 젊고 빠르며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갖춘 이천수를 상대적으로 싼값에 영입한 것도 바로 이 때문으로 보인다.
“프리메라리가는 이천수를 위한 무대”
이천수의 성공 여부에 대해 국내 축구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K리그에서 이천수를 직접 지도한 울산 현대 김정남 감독은 무엇보다 그의 배포를 꼽는다. “배짱이 참 좋은 선수다. 주눅들어서 위축되는 경우가 없다. 대범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여기서 하던 대로 하면 성공할 것이다.” 김 감독은 개인능력 또한 높게 샀다. “워낙 스피드가 뛰어나지만, 두뇌 회전은 더 빠르다. 우리 편 선수가 공을 잡으면 상대 수비수보다 먼저 그 다음 동작이 어떻게 이뤄질지 정확하게 예측한다. 득점력이 좋은 이유는 평범한 상황에서도 빠르게 예측하는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축구전문가들은 또 이천수의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이유로 프리메라리가의 특성을 든다. 거친 태클과 몸싸움으로 대표되는 세리에A나 ‘킥 앤드 러시’ 축구로 힘과 스피드를 요구하는 프리미어리그와 달리, 프리메라리가는 기술축구가 통하는 무대라는 것이다. 특히 몸집이 크지 않아도 개인기와 스피드만 있으면 통하기 때문에, 그런 특성을 가진 이천수에게는 적격인 무대라는 것이다. 다만, 얼마나 빨리 생소한 프리메라리가에 적응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알 소시에다드는 8월31일 지난 시즌 17위팀 에스파뇰과 개막전을 치른다. 이천수는 과연 출격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축구팬들의 관심이 벌써부터 스페인으로 쏠리고 있다.
김경무 기자 | 한겨레 스포츠부 kkm100@hani.co.kr


사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한 이천수. 개인기와 스피드가 뛰어난 이천수는 프리메라리가의 기술축구에 빠르게 적응할 것으로 보인다.(AP연합)

사진/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에서 열린 공식 프리젠테이션에서 동료 선수들과 함께 있는 이천수.(AP연합)

사진/ 공식 프리젠테이션을 마친 뒤 이 선수가 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A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