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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상파 혁명의 도화선은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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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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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화가 쿠르베를 찍은 19세기의 사진)
“사진이 인상파를 불렀다.”

인상파의 탄생은 표현양식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이 컸지만 산업적으로 볼 때는 인상파보다 앞서 등장한 ‘사진’의 영향이 또다른 요인이었다. 사진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회화는 유일한 기록 수단이었다. 그러나 사물을 모습 그대로 포착해내는 사진이 등장하면서 회화는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기록성에서 그 자리를 물려줘야 했다. 대신 새로운 표현방식과 시도를 통해 회화는 다른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바로 인상파다.

재미있는 점은 사진이 지금은 가장 대표적인 빠른 속도의 예술로 인식되고 있지만, 당시 인상파가 사진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속도에서 앞섰기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사진은 빛에 가장 민감한 물질인 은을 이용한 ‘은화 사진’이었다. 얇은 종이에 은박을 입혀 인화했기 때문에 지금의 필름과는 달리 사진 한장 찍는 데 보통 한두 시간 이상 걸릴 만큼 느렸다. 그러나 이에 비해 인상파는 노출된 빛 속의 사물을 빨리 그리는 속사에 능했기 때문에 사진보다도 빨랐다. 인상파는 초상화처럼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는 기능은 사진에 넘겨주는 대신 새로운 표현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기존 고전회화와는 다른 근대 미술의 첫 번째 흐름으로 등장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이번 전시회는 인상파 당시의 사진 작품들도 함께 전시한다.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시작된 그림과 사진의 관계, 사진이 갖는 시각·확장적 측면과 인상파와의 상호 영향까지 ‘시각 문화’적 측면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이 사상에서 근대성 획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 발명은 산업의 근대화를 일으켰고, 지난 세기 시각 문화는 인상주의와 카메라의 발명으로 근대성을 획득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도 이번 전시회를 관람하는 또다른 재밋거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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