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치해야 할 위장병의 주범설에 맞서는 주장 나와… “장내 생태계 유지하며 식도염 등 막는다”
몇 가닥 편모를 길게 늘어뜨려 ‘풀어진 짚신’ 모양을 한 길이 2~7㎛(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의 세균. 우리나라 어른 10명 가운데 7, 8명의 윗속에 사는 세균. 강력한 위 염산에도 끄덕하지 않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 자신의 서식처를 지켜온 지독한 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뱃속 불편한 한국인의 귀에 익숙한 균이다. 헬리코박터균은 만성위염·위궤양, 나아가 위암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로 알려지고, 한국인의 몸에 유난히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인 위장병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이에 따라 여러 건강식품들이 ‘뱃속 편한 세상’을 위한 헬리코박터균 퇴치 선언에 나서고 있다. 헬리코박터를 죽이는 항균 김치도 인기를 얻고 있다.
‘뱃속 편한 세상’의 적으로, 퇴치제품 많아
헬리코박터균에 관한 의과학계의 다수설은 이 균이 만성위염과 위암의 원인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학설은 1983년 오스트레일리아 의사 워런과 마셜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위 점막에서 처음 분리해낸 이래 여러 역학조사와 동물실험들을 통해 입증됐다. “수많은 역학조사를 종합하면 이 균을 지닌 사람이 균이 없는 사람보다 위암에 걸릴 확률은 2.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송인성 서울대 교수(내과)는 말했다. 1994년 세계보건기구도 헬리코박터균을 ‘제1급 암 유발인자’로 경고한 바 있다. 세계 인구의 20~30%가 소화불량을 앓고 인구의 50%가 이 균에 감염된 상황에서 헬리코박터의 정체에 관한 연구는 당연히 주목을 받는다.
1983년 헬리코박터균 확인은 웬만한 음식물을 녹여버리는 강한 염산 때문에 윗속에는 어떤 미생물도 살지 못할 것이라는 오랜 의학계의 상식을 뒤엎는 ‘사건’이었다. 생명의 신비감마저 자아내던 이 균의 생존비밀은 곧 풀렸다. 헬리코박터균은 위벽을 뒤덮은 끈끈한 점막층 안에 살면서 염산의 직접 공격을 피하는데다,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만들어내 알칼리성 보호층으로 염산을 너끈히 중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편모를 이용해 위벽 보호 점막을 이리저리 뚫고 다니는 활동성까지 갖췄다. 포항공대 오병하 교수는 “이 균이 분비하는 효소단백질 ‘우레아제’가 염산을 중화하는 생존기작에 결정적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힌 바 있다. 헬리코박터균의 유전체(게놈) 연구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1996년과 1999년 미국·영국인 헬리코박터균의 게놈을 해독했으며, 2001년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한국인 헬리코박터균의 159만1297개 염기쌍을 경상대 의대 이광호 교수 연구팀이 해독했다. 이 교수는 “미국·영국인의 것과 한국인의 균은 놀라울 정도로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균이 인종과 민족에 따라 매우 다르게 진화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들어선 새로운 접근방법이 눈길을 끈다. 그동안 헬리코박터균을 위염·위암의 원인균으로 보아 세균 제거에 주된 관심을 기울였던 주류학설과 다르게, 새로운 접근법을 내세운 이들은 헬리코박터를 사람 몸에서 몰아내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한다. 의과학계에 논쟁을 일으킨 이들은 헬리코박터가 없애야 할 인간의 적일 뿐인지,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의 인터넷판 뉴스는 최근 헬리코박터균이 위생 개선과 항생제 발달로 점차 인간의 몸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이 균의 감소 추세를 오히려 우려하는 의과학자들의 목소리와 연구결과를 전해 눈길을 끈다. 이들 소수학자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헬리코박터균을 박멸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장내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장내 생태계의 중요한 일원을 제거하는 것이 사람 몸 내부 생태계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현대과학은 알지 못한다고 미국 스탠퍼드대학 줄리 파슨넷 교수는 경고했다. 그는 세균과 인간의 좀더 복잡한 관계를 조명하는 ‘인간의 미생물 생태학’ 연구를 촉구했다. 실제로 이런 복잡한 관계는 연구결과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위산 분비 억제 작용을 하는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했을 때 위산 분비가 지나치게 많아져 역류하는 바람에 식도염이나 식도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지난해 뉴욕대 마틴 블레서 교수나 미국 국립암연구소 조셉 프로메니 박사는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치료가 퍼지면서 식도암 환자도 함께 늘었다”며 헬리코박터균이 오히려 식도염을 막는 구실을 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아 의학계에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부에선 헬리코박터가 점차 미국인의 윗속에서 사라지는 추세가 알레르기·천식 등의 증가 추세와 어떤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 형편이다. 그러나 새로운 학설들이 헬리코박터균의 유해성을 둘러싸고 논쟁의 불씨를 던지고 있지만, 다수 주류 의학계는 이 균을 사람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질병의 원인으로 인식한다. 주류학설은 여전히 굳건하다. 새로운 소수학설 역시 아직 명쾌한 증거나 결론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국내의 한 전문가는 헬리코박터균을 위장 내 생태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시각에 대해 “턱도 없는 주장들”이라고 일축할 정도로 의과학계 내부 일반에 수용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헬리코박터 없으면 알레르기·천식 증가? 하지만 주류학설 역시 최근 들어 조금씩 ‘열린 태도’를 나타내고 있어 주목된다. 헬리코박터균이 위염·위암의 원인균일 가능성이 높지만 직접적 관련성에 대해선 분명한 결론을 유보하고 있다. 송인성 교수는 “헬리코박터를 없앤다고 식도염·식도암이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는 일정치 않고 불분명하다”면서도 “이 세균을 없애면 위암 발생이 뚜렷이 줄어든다는 결론 역시 단순히 수용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국·일본 등에서 대규모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므로 그 결과를 보아야 좀더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헬리코박터의 정체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이 균이 인류의 위장병 주범인지, 아니면 사람 몸에 기생하며 장내 생태계 전체에 어떤 긍정적 구실을 하는지는 더 많은 연구결과를 얻고 나서야 결말의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 헬리코박터균은 인종·지역마다 매우 다른 종의 모습을 띠며 진화해, 인류 진화·이주의 역사를 연구하는 인류학의 주요한 도구로도 널리 연구되고 있다. 일례로 페루인의 유전자는 동아시아인쪽에 가깝지만 페루인의 헬리코박터균은 스페인인의 것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띠는데, 이는 500년 전 스페인의 정복시대에 균도 함께 옮겨져 페루인의 위장을 지배하게 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헬리코박터 인류학자 역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점차 사라지는 추세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라고 <네이처> 인터넷 뉴스는 소개했다. 오철우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eolwoo@hani.co.kr

1983년 헬리코박터균 확인은 웬만한 음식물을 녹여버리는 강한 염산 때문에 윗속에는 어떤 미생물도 살지 못할 것이라는 오랜 의학계의 상식을 뒤엎는 ‘사건’이었다. 생명의 신비감마저 자아내던 이 균의 생존비밀은 곧 풀렸다. 헬리코박터균은 위벽을 뒤덮은 끈끈한 점막층 안에 살면서 염산의 직접 공격을 피하는데다,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만들어내 알칼리성 보호층으로 염산을 너끈히 중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편모를 이용해 위벽 보호 점막을 이리저리 뚫고 다니는 활동성까지 갖췄다. 포항공대 오병하 교수는 “이 균이 분비하는 효소단백질 ‘우레아제’가 염산을 중화하는 생존기작에 결정적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힌 바 있다. 헬리코박터균의 유전체(게놈) 연구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1996년과 1999년 미국·영국인 헬리코박터균의 게놈을 해독했으며, 2001년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한국인 헬리코박터균의 159만1297개 염기쌍을 경상대 의대 이광호 교수 연구팀이 해독했다. 이 교수는 “미국·영국인의 것과 한국인의 균은 놀라울 정도로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균이 인종과 민족에 따라 매우 다르게 진화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들어선 새로운 접근방법이 눈길을 끈다. 그동안 헬리코박터균을 위염·위암의 원인균으로 보아 세균 제거에 주된 관심을 기울였던 주류학설과 다르게, 새로운 접근법을 내세운 이들은 헬리코박터를 사람 몸에서 몰아내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한다. 의과학계에 논쟁을 일으킨 이들은 헬리코박터가 없애야 할 인간의 적일 뿐인지,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의 인터넷판 뉴스는 최근 헬리코박터균이 위생 개선과 항생제 발달로 점차 인간의 몸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이 균의 감소 추세를 오히려 우려하는 의과학자들의 목소리와 연구결과를 전해 눈길을 끈다. 이들 소수학자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헬리코박터균을 박멸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장내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장내 생태계의 중요한 일원을 제거하는 것이 사람 몸 내부 생태계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현대과학은 알지 못한다고 미국 스탠퍼드대학 줄리 파슨넷 교수는 경고했다. 그는 세균과 인간의 좀더 복잡한 관계를 조명하는 ‘인간의 미생물 생태학’ 연구를 촉구했다. 실제로 이런 복잡한 관계는 연구결과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위산 분비 억제 작용을 하는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했을 때 위산 분비가 지나치게 많아져 역류하는 바람에 식도염이나 식도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지난해 뉴욕대 마틴 블레서 교수나 미국 국립암연구소 조셉 프로메니 박사는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치료가 퍼지면서 식도암 환자도 함께 늘었다”며 헬리코박터균이 오히려 식도염을 막는 구실을 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아 의학계에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부에선 헬리코박터가 점차 미국인의 윗속에서 사라지는 추세가 알레르기·천식 등의 증가 추세와 어떤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 형편이다. 그러나 새로운 학설들이 헬리코박터균의 유해성을 둘러싸고 논쟁의 불씨를 던지고 있지만, 다수 주류 의학계는 이 균을 사람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질병의 원인으로 인식한다. 주류학설은 여전히 굳건하다. 새로운 소수학설 역시 아직 명쾌한 증거나 결론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국내의 한 전문가는 헬리코박터균을 위장 내 생태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시각에 대해 “턱도 없는 주장들”이라고 일축할 정도로 의과학계 내부 일반에 수용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헬리코박터 없으면 알레르기·천식 증가? 하지만 주류학설 역시 최근 들어 조금씩 ‘열린 태도’를 나타내고 있어 주목된다. 헬리코박터균이 위염·위암의 원인균일 가능성이 높지만 직접적 관련성에 대해선 분명한 결론을 유보하고 있다. 송인성 교수는 “헬리코박터를 없앤다고 식도염·식도암이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는 일정치 않고 불분명하다”면서도 “이 세균을 없애면 위암 발생이 뚜렷이 줄어든다는 결론 역시 단순히 수용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국·일본 등에서 대규모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므로 그 결과를 보아야 좀더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헬리코박터의 정체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이 균이 인류의 위장병 주범인지, 아니면 사람 몸에 기생하며 장내 생태계 전체에 어떤 긍정적 구실을 하는지는 더 많은 연구결과를 얻고 나서야 결말의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 헬리코박터균은 인종·지역마다 매우 다른 종의 모습을 띠며 진화해, 인류 진화·이주의 역사를 연구하는 인류학의 주요한 도구로도 널리 연구되고 있다. 일례로 페루인의 유전자는 동아시아인쪽에 가깝지만 페루인의 헬리코박터균은 스페인인의 것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띠는데, 이는 500년 전 스페인의 정복시대에 균도 함께 옮겨져 페루인의 위장을 지배하게 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헬리코박터 인류학자 역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점차 사라지는 추세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라고 <네이처> 인터넷 뉴스는 소개했다. 오철우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eolwo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