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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름 모를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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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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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구황식품이자 밑반찬 돼준 들풀들… ‘예촌’에서 들풀 샤브샤브의 향기를 맛보라

“…산을 향해 가는 들길엔 이름 모를 잡초들이 여름을 과시라도 하는 듯 우거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서는 이름 없는 들꽃들이 나를 반기듯이 살포시 미소짓는다. …산에 오르니 우거진 숲 속에서 이름 없는 산새들이 쉴 새 없이 지저귀는 것이 마치 불협화음의 교향악을 듣는 것 같다.…”

나에게는 유명무명 문인들의 작품집 증정본이나 출간을 의뢰하는 원고들이 자주 우편으로 부쳐오는데, 우리 문단의 꽤 유명한 시인이 보내온 수필집에서 본 대목이다. 자기가 밟고 있는 이 땅,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에 대해 무한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문학적 미학으로 표현해야 할 시인이 풀포기 하나, 산새 한 마리 이름조차 모르고 두루뭉수리 ‘이름 모를’ ‘이름 없는’이라 횡설수설하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자기가 모르면 이름이 없는가? 잡초는 없다! 두루뭉수리 ‘이름 없는’ 풀 한 포기가 아니라 풀 하나하나에 모두 이름이 있다. 그리고 풀마다 각기 특성과 기능이 있어 ‘이름 모를’ 이 풀 한 포기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면 약초로도, 먹거리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대충 인간에게 유용한 ‘이름 모를’ 들풀들의 ‘이름’을 찾아보자.

사진/ ‘예촌’ 주인 박태순씨는 김제 들판에 널린 ‘이름 있는’ 들나물들을 손수 채취해와 토속 된장으로 샤브샤브를 만드는데, 그 향기가 기가 막히다.

고들빼기, 씀바귀, 냉이, 소루장이, 물쑥, 달래, 쑥, 무릇, 제비꽃, 순채, 벼룩나물, 미나리아재비, 꿩의다리, 속속이풀, 꽃다지, 가락지나물, 양지꽃, 딱지꽃, 개소시랑개비, 짚신나물, 갈퀴나물, 깨풀, 벌완두, 며느리밑씻개, 마디풀, 명아주, 자리공, 벼룩이자리, 점나도나물, 쇠별꽃, 선밀나물, 사상자, 파드득나물, 까치수염, 메꽃, 꽃마리, 광대나물, 구기자, 까마종이, 주름잎, 질경이, 솔나물, 마타리, 뚝갈, 떡쑥, 담배풀, 옹굿나물, 망초, 뽀리뱅이, 방가지똥, 민들레, 조뱅이, 뻐꾹채, 지칭개, 비름, 말, 소귀나물, 칠면초, 나문재….

이 ‘이름’들은 우리가 그냥 지나쳐버리는, 이름을 부를 가치조차 없는 잡초들로 여기는 것들이지만, 그 옛날 흉년이 들면 쌀 한줌에 듬뿍 죽 끓여 민중들의 생명을 잇게 한 귀중한 구황식품이었으며, 평시에는 세끼 밥상에 올라 입맛을 돋우는 서민들의 밑반찬이었다. 고정옥의 <조선민요연구>에는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채보한 들나물을 소재로 한 민요가 있다.


칩다꺾어 고사리

나립꺾어 고사리

어영꾸부정 활나물

한푼두푼 돈나물

미끈매끈 기름나물

돌돌말어 고비나물

칭칭감어 감둘레

잡아뜯어 꽃다지

쏙쏙뽑아 나생이

어영저영 말맹이

이개저개 지치개

진미백승 잣나물

만병통치 삽추나물

향기만만 시금치

사시장춘 대나물

 

지난 6월 문화기획가 이두엽, 연극인 김혜련씨와 함께 전주 풍남제에 갔다가 전주술박물관 관장의 안내로 김제의 아주 기막힌 식당에 들릴 기회가 있었다. ‘예촌’(063-546-5586)이 그곳이다. 주인 박태순(43)씨는 돌미나리, 민들레, 취나물, 쑥부쟁이, 두릅, 갓꽃, 달래, 칡순, 죽순 등의 들나물로 샤브샤브를 개발했다. 소, 염소, 토끼가 먹을 수 있는 들풀은 사람도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김제 들판에 널린 ‘이름 있는’ 들나물들을 손수 채취해와 토속 된장으로 샤브샤브를 만드는데, 그 향기가 기가 막히다. 된장비빔밥, 청국장, 무우밥, 콩나물밥, 국수 등은 바로 시켜먹을 수 있지만, 들풀 샤브샤브는 꼭 예약을 해야 가능하다.

김학민 |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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