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부설 한림원 학생들의 반구서원 임간수업… 낭랑한 글소리에 마음밭의 배움이 깊어가네
“인간수업이라고요?” 7월21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 반구서원으로 가는 길에서 무지한 기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운전대를 잡은 방정균 교수(상지대 한의학과)가 현답을 날렸다. “임간수업(林間受業)을 열심히 하다보면 인간이 되겠죠.” 도심을 벗어나 한옥에서 5일 동안 지내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한학 교육기관 중의 하나인 성균관 부설 한림원 학생들은 여름·겨울 한해에 두 차례씩 서원에서 글공부를 한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맑은 바람 잘 통하는 옛 한옥에서 5일 정도 머물며 경전을 읽는다. 경전을 읽다보면 마음과 몸이 어느새 차분해진다. 대부분 학생이거나 직장인인 이들은 평소엔 일주일에 2~3차례씩 있는 저녁수업을 위해 헐레벌떡 오가느라 정답게 인사 나눌 시간도 내기 어려웠다. 넉넉한 자연의 품에 안겨 성현의 말씀을 배우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좁혀가는 임간수업이야말로 정말 ‘인간’이 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울산 시내에서 서울산(삼남) 톨게이트를 통과해 경주쪽으로 방향을 잡고 30분쯤 달리다 차 한대도 지나기 어려운 길을 꼬불꼬불 돌아가노라면 푸른 물이 가득 담겨 호수를 이룬 대곡리에 이른다. 선사시대 생활상을 바위에 새긴 암각화(국보 285호)로 유명한 이곳은 1965년 울산공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지어진 사연댐 때문에 옛마을이 수몰됐다. 호수 가운데 머리를 내밀고 선 절벽은 거북이가 동쪽으로 머리를 납작 엎드린 것과 닮았다고 하여 ‘반구대’(盤龜臺)로 불리는데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를 비롯해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등 조선의 선비들이 그 아름다운 풍경을 사랑해 시를 읊으며 노닐었던 경승지다. 정몽주·이언적·정구 선생의 신위를 모신 반구서원은 1814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았다가 댐공사로 터마저 잃었는데, 1983년 복원공사를 벌여 동재·서재(학생들의 기숙사)는 제외하고 강당(교실)과 사당(성현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 등만을 지어놓았다.
이날 오후엔 서원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지역특강’이 마련됐다. 언양 출신으로 한문학을 전공한 이수봉 청주대 명예교수는 반구대를 노래한 선비들의 한시를 강의했다. “조물주는 언제 이 기이한 솜씨를 부렸나/ 지금에사 바위는 거북이 등이 되어 있네/ 중천에서 내린 이슬 동로반에 고이고 산마루에 걸린 구름 바둑무늬인 양 기려 하네/ 컴컴한 소(沼)에는 용이 누웠고/ 달이 밝으니 학 돌아올 때 되었어라/ 반구대의 한여름이 너무도 시원하여/ 해질녘 맑은 술잔이 말타기를 늦추네”(권해의 <반구대>)
호수에서 잡은 붕어찜으로 저녁을 먹고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논어>를 옆구리에 낀 1학년(한림원은 2년과정 학정계제와 3년과정 한림계제로 나뉜다. 학정계제 때는 논어·맹자·중용·대학을, 한림계제 때는 시경·서경·역경·춘추·예기·악경을 익힌다) 학생들이 강당에 모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낸 간재학파의 정통 맥을 잇고 있는 고당 김충호(58·한림원장) 선생이 <논어> 제9편, 자한(子罕)편을 한구절 한구절씩 맑은 시냇물 흘러가듯 청아한 목소리로 읊었다. “좋은 옥이 여기에 있는데 궤짝에 숨겨놓고 간직해야 합니까? 좋은 가격을 구하여서 팔아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팔아야 하는구나, 팔아야 하는구나.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겠다.” 저녁매미 짙게 우는 가운데 가만가만 차분한 목소리로 일러주는 스승의 목소리에 학생들은 식후 혼곤히 밀려오는 잠을 뿌리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지역 스승에 사사… 직장에 휴가 내고 참여
학정계제 1학년으로 올해 공부를 시작한 이상돈(39)씨는 처음으로 임간수업을 받느라 휴가를 내고 울산으로 달려왔다. “검찰에서 일하며 하루 종일 피의자와 씨름을 하다보니 내 스스로 도덕적 기준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한자로 가득한 조서를 꾸미는 게 직업이라 한자가 낯설지는 않지만 문장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강의시간 내내 책에서 눈을 떼지 않던 이씨는 늦깎이 공부가 문자 공부뿐 아니라 마음 공부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강의 뒤 소주 한잔을 앞에 두고 고당 선생은 살아온 내력을 말했다. 그가 한학의 길에 들어선 것은 조부의 강력한 방침 때문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겨우 이틀 지났을 때였지. 조부가 부르시더니 문중어른인 김경암 선생께로 공부를 보냈어.” 식영정과 환벽당, 소쇄원이 가깝고 예로부터 도학과 문학의 산실로 이름났던 광주 충효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이후 제도권 학교와는 영영 멀어졌다. 18살 무렵 간재 전우의 직속 제자인 양재 권순명에게 들어간 고당은 “평생 써먹지도 못할 공부가 그저 좋아” 농사짓고 글 읽으며 평생을 보내리라 다짐한다. “박정희 정권 때 경제개발이다 뭐다 할 때, 한문 같은 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 그래도 상관없었어. 양재 선생이 내게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지. 선비가 쇠퇴한 세상에 태어나서 홀로 가는 것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士生衰世 獨往安可避).” 하지만 세상의 가난은 그를 그저 촌의 숨은 선비로 놔두지 않았다. “78년에 모시고 살던 할머니가 위중하셨는데 좋은 약 한첩 못 써보고 그냥 돌아가셨지. 1년도 안 돼 아버지마저 중풍으로 쓰러지셨는데 발만 동동 굴렀어.” 고당 선생은 돈을 벌어야겠다고 작정한 참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각사등록>(각 지방관아가 중앙정부로 보낸 공문 모음집)을 번역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세상 속으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당이 가장 으뜸으로 뽑는 필생의 과제는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일이다. “문자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면면이 내려온 선비의 올곧은 정신을 잇자는 것이지. 한 사람이라도 옹근 인재를 만들어서 한학의 이념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생각해.” 90년 한림원을 만들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14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온 것은 이런 신념이 없고서는 불가능했다. “별다른 지원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려니 어쩔 수 없이 한 학기에 25만원씩 등록금을 받는 것이 가슴이 아파.”
“선생님 세숫물 떠놓는 걸 잊었네요”
조촐한 술자리가 이내 파하고 숙소로 돌아가던 학생들이 갑자기 발길을 돌렸다. “선생님 세숫물 떠놓는 걸 잊어버렸네요.” 물안개 피어오르는 마을길에서 멈춰선 기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배움의 길에서 만난 큰 스승에게 세숫물을 바치는 이들의 행복은 무엇일까. 스승과 제자와의 친분 관계가 ‘인맥’과 ‘자리’의 동의어로 대치된 요즘 세상에, 이들의 공손함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탈리아의 혁명적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옛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는 상황이 위기”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옛것의 복원에 힘써야 하는가, 새것의 탄생에 애써야 하는가. 옛것이 몰살된 상황에서 참된 새것은 나올 수 있을까. 새로운 예학이 정립되지 않은 무례하고 거친 세상에서 밤 깊은 반구서원은 죽어버린 예학의 희미한 향기가 감도는 외로운 섬 같았다.
울주=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 성균관 부설 한림원 학생들이 반구서원에서 임간수업으로 여름을 난다. 지역에 있는 스승을 만나 한학을 배우는 것이다. 글 읽는 소리에 여름밤이 깊어가고 배움이 쌓인다. |
“인간수업이라고요?” 7월21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 반구서원으로 가는 길에서 무지한 기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운전대를 잡은 방정균 교수(상지대 한의학과)가 현답을 날렸다. “임간수업(林間受業)을 열심히 하다보면 인간이 되겠죠.” 도심을 벗어나 한옥에서 5일 동안 지내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한학 교육기관 중의 하나인 성균관 부설 한림원 학생들은 여름·겨울 한해에 두 차례씩 서원에서 글공부를 한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맑은 바람 잘 통하는 옛 한옥에서 5일 정도 머물며 경전을 읽는다. 경전을 읽다보면 마음과 몸이 어느새 차분해진다. 대부분 학생이거나 직장인인 이들은 평소엔 일주일에 2~3차례씩 있는 저녁수업을 위해 헐레벌떡 오가느라 정답게 인사 나눌 시간도 내기 어려웠다. 넉넉한 자연의 품에 안겨 성현의 말씀을 배우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좁혀가는 임간수업이야말로 정말 ‘인간’이 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한림원 임간수업때는 소리내어 글 읽는 성독(聲讀)시간이 새벽마다 열린다.

사진/ 늦은밤 서원 툇마루에서 홀로 글 읽는 학생.

사진/ 서원에 모신 성현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고유(告由) 장면. 제복을 입은 이 중 가운데가 고당 김충호 선생.

사진/ 반구서원이 있는 울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지역특강 때는 울산에서 유래한 선비들의 춤인 학춤이 선보였다.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