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아야, 감자 어쨌냐?” “비로 많이 썩어불고(버리고), 값도 안 나간다네.”
“왜야, 감자값 괜찮담서?” “내리 비올 때는 물량이 안 나와서 올랐는가 모르겠는데, 비 그치니 양씬(많이) 쏟아져 나왔는가벼. 1년에 한번씩 꼭 망해먹는다니까. 언제나 이 짓 그만할랑가 모르겠네.”
6월말부터 퍼붓던 장맛비가 잠시 멈추고 한 3일 햇볕을 내리쬐어주었다. 빗물 머금어 질척해질대로 질어진 황토흙에 심어진 감자가 썩어나가도 하릴없이 하늘만 쳐다봐야 했는데, 잠깐 비친 해에 광주에서까지 놉(일꾼) 40여명 얻어서 이틀간 감자 캐고 공판장에 내고 보니 손해막심인가 보다.
말이 5천평이지 25마지기 광활한 후배 경아네 감자밭이 장맛비로 허무하게 주저앉았다.
매년 밭농사를 많이 짓는 경아네는 밭벼도 심고 콩도 갈고 겨울이면 무·배추도 뿌려보았지만, 지나해엔 겨우 노지수박만 수지를 맞출 뿐이었단다. 지난해 수박 심어서 돈 벌었다는 사람 없었는데 ‘반짝틈새’를 노린 덕에 수박이 그럭저럭 만회를 해주었으나, 다른 농사로 본 적자를 메우고 나면 빈손이란다.
장마 전, 저녁 찬거리가 없어 텃밭에서 캔 감자로 반찬을 해먹을 때만도 괜찮았는데 작황도 좋지 않은 데다가 값까지 떨어졌다니 걱정이다.
비가 무섭게 내릴 때는 고추밭이 그저 무성하기만 했었는데 비 그치고 나니 고추도 아작(절단)이 나 있었다.
“징헌 놈의 장맛비가 고추 다 잡아먹었시야. 딸 것이 한나도 없당께” 어머니의 긴 탄식이 이어진다. 짙푸르고 키가 크고 통통하니 살오르게 주렁주렁 달고 있던 고추들이 곯아서 떨어지고 물먹은 고추나무가 햇볕에 드러나며 고스란히 말라죽는다. “작년에는 두벌고추라도 따고 비가 왔는디, 올해는 한 집도 초벌을 못 따보고 고추나무째 죽어버렸당께. 나만 당헌 일도 아닝께 워쩌겠냐?”며 “끙” 된소리 앓으며 밥숟갈 놓는 아버지의 이마엔 골이 깊게 패여 있다. 아직도 장마는 일주일이나 더 남아 있는데 영광의 자랑 ‘순수 태양초’ 맛보기는 하늘에 별따기겠다. 장맛비로 딸 것 없는 빈 밭의 여름 소득을 메우느라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네 품을 파는 일에 마다않고 바쁘게 다닐 일만 남은 듯싶다. 아이들 간식 삼아 심어놓은 참외도 단맛을 잃고, 끝이 곯아버린 풋고추도 맵고 싱싱하기보다 비릿함으로 식욕을 떨군다. 가을 나락을 수확할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영광의 고추밭은 무심히 죽어만 간다. 야속한 하늘엔 먹구름 몰려다니고, 하늘 쳐다보며 우비 걸쳐 입고 논과 밭에 나선 농민들의 삽질이 힘겹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비준 거부를 위해 또다시 농민들이 아스팔트에 천막을 친단다. ‘장맛비’에 엎치고 ‘반농정책’에 덮치는 격이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일러스트레이션 | 경연미
“징헌 놈의 장맛비가 고추 다 잡아먹었시야. 딸 것이 한나도 없당께” 어머니의 긴 탄식이 이어진다. 짙푸르고 키가 크고 통통하니 살오르게 주렁주렁 달고 있던 고추들이 곯아서 떨어지고 물먹은 고추나무가 햇볕에 드러나며 고스란히 말라죽는다. “작년에는 두벌고추라도 따고 비가 왔는디, 올해는 한 집도 초벌을 못 따보고 고추나무째 죽어버렸당께. 나만 당헌 일도 아닝께 워쩌겠냐?”며 “끙” 된소리 앓으며 밥숟갈 놓는 아버지의 이마엔 골이 깊게 패여 있다. 아직도 장마는 일주일이나 더 남아 있는데 영광의 자랑 ‘순수 태양초’ 맛보기는 하늘에 별따기겠다. 장맛비로 딸 것 없는 빈 밭의 여름 소득을 메우느라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네 품을 파는 일에 마다않고 바쁘게 다닐 일만 남은 듯싶다. 아이들 간식 삼아 심어놓은 참외도 단맛을 잃고, 끝이 곯아버린 풋고추도 맵고 싱싱하기보다 비릿함으로 식욕을 떨군다. 가을 나락을 수확할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영광의 고추밭은 무심히 죽어만 간다. 야속한 하늘엔 먹구름 몰려다니고, 하늘 쳐다보며 우비 걸쳐 입고 논과 밭에 나선 농민들의 삽질이 힘겹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비준 거부를 위해 또다시 농민들이 아스팔트에 천막을 친단다. ‘장맛비’에 엎치고 ‘반농정책’에 덮치는 격이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