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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시아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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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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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기자들이 가슴으로 파헤친 아시아 리포트… 아시아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찾는다

3년 전이었을 거다.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각국의 현장 기자들이 조직 (아시아 네트워크)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분쟁지역 전문기자로 이름을 떨쳐온 정문태씨를 중심으로 뭉친 이들이 서구언론의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아시아 현장의 소식을 한국에 알려준다는 거였다. 그리고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을 통해 이들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들의 글은 아시아를 일반적으로 개괄하는 연구 서적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현장 보고서들이었다.

서구언론 정보에 의존하지 않은 생생함

이번에 이 보고서들이 새롭게 편집되어 한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아시아를 아시아의 눈으로, 더 깊게는 아시아 민중들에게 묵직한 고통을 안겨온 권력과 집단에 대한 응징을 펜대에 담아 한국 독자들을 찾아온 이들의 노력이 새롭게 정리된 때문인지 책은 주간지에 실릴 때보다 훨씬 볼륨이 적다. 그 탓인지 오히려 읽기에 부담이 없다. 아시아를 제대로 몰랐던 독자들도 한여름, 뜨거운 아시아의 현실을 접하다 보면 어느새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아시아인으로서 대륙을 지배해온 문화와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구가 싹틀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참으로 아시아를 몰랐다는 사실 앞에서 부끄럽기만 하다. 그래서 아시아를 지배해온 각 나라의 지배문화, 용어들은 여전히 낯설다. 한국에게 아시아는 그렇게 먼 곳이었다.

어쨌든 이런 현실을 과감히 깨보려는 아시아 네트워크 출발의 목표는 이 시점에서 볼 때 성공적인 듯싶다.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아시아를 주목한 이들의 노력을 통해 이제 한국어로 아시아 곳곳의 상처를 느낄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 책에 소개된 나라들의 정치권력 집단과 민중을 지배해온 문화를 바라보는 집필자들의 시선은 삐딱하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읽노라면, 정치적 음모가 판쳐온 역사와 이로 인해 고난받아온 민중들의 삶이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아시아를 지배해온 서구문화와 식민지 역사, 지금도 개발의 명분 아래 융단폭격처럼 쏟아지고 있는 해외원조가 아시아를 더 힘들게 해온 역사에 속이 끓는다.

한국인에게 아시아는 무시와 무관심의 대륙이었다. 해외여행을 가도 유럽과 북미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 아시아에 간다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 그러나 백인에게 더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아시아에 대한 무지는 한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경제개발을 앞세워 환경을 파괴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아시아의 가해자가 돼 있는 한국을 만나게 된다.

필자들은 아름다운 아시아를 아직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까지 현재도 진행 중인 분쟁, 학살, 반민주주의, 독재로 인해 고통이 끊이지 않는 아시아의 핏빛 어린 역사와 고난의 숲에서 살아온 아시아 민중들의 고단함을 주시한다.

여전히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빈곤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좀처럼 쉽게 처방하려고 하지 않는다. 필자들의 눈빛은 지쳐 있는 삶, 그 와중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희망으로 삼는 이들의 삶과 투쟁에 주목한다.

언젠가 아시아를 여행하려는 독자들이 있다면 꼭 이 책을 읽고 길을 떠나길 당부한다. 지금 우리보다 남루해 보이는 생활과 모습은 불과 20여 전 우리의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참 같지 않은, 그러나 참 닮은꼴이 많은 아시아 민족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입문서이다.

이 책의 마지막까지 장을 넘기고 나면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 아시아 연대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독자들에게 필자 중의 한명인 정문태씨는 가능한 실천을 하나 제안하고 있다. ‘아시아 오월 광장’이 그것이다. 인도네시아·필리핀·버마·타이·한국은 민주사회로 가려는 과정에서 시민항쟁을 경험했다. 아시아에서 진행된 5월 항쟁은 핏빛을 띤 시민항쟁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천수만의 아시아 민중들이 민주화를 위해 제 목숨을 내놓았다. 그 대가로 현재 민주화가 진행 중인 곳이 아시아이건만 이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아시아의 미래를 토론하고 또 다른 아시아를 꿈꾸기에는 여전히 서로가 먼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의 특별 기고가인 버마의 닥터 나잉옹은 버마민주주의개발네트워크 의장으로서 한국인들에게 아시아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당부한다. 그가 만난 한국은 아시아 민주주의 심장부에 있는 나라였지만, 아시아 연대에 왜 한국인들이 관심이 없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고단한 아시아인, 서로에게 연대의 손길을

서구 사회의 문명이 더 이상 아시아의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아시아 시민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필자들이 말하는 아시아 민주주의는 서구사회의 민주주의 과정이 아니기에 또 다른 아시아를 꿈꾸는 아시아 풀뿌리 운동가들의 다양한 시도가 네트워크 운동으로 생활·지역 부문에서 함께 그물처럼 엮여가길 희망한다.

이 책에서는 지면상 조건으로 인해 새로운 연대의 구체적 모습들은 담지 못한 듯싶다. 이들이 여전히 아시아의 꿈을 찾아 분쟁과 반평화·반인권의 현장에서 아시아의 꿈을 만들어간다면 그것은 생활에 기초한 아시아 공동체 사회에 대한 모습일 것이다.

자본과 서구문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아시아의 역사가 다시 풀뿌리 민중운동의 연대와 시민사회 강화를 위해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이들을 통해 아시아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시민들은 우리 스스로 아시아와 연대하기 위해 길을 가야 한다. 그 첫 번째 사업으로 버마 민주주의를 위한 아시아연대 프로젝트를 제안해본다.

아시아에서 일어났던 분쟁과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한국에서 아시아와 함께하는 평화공동체 활동을 펼치는 시민들이 많아진다면 인도네시아 아체, 버마에서 총성이 멈추는 날은 꼭 올 것이다.

차미경 | ‘아시아의 친구들’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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