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배우 조지 클루니의 감독 데뷔작 <컨페션>… 고백자로 내몰린 한 인간의 위험한 이중생활
“내 이름은 척 배리스. 그저 그런 팝송을 만들었고, 유치찬란한 TV오락 프로그램을 연출한 PD다. 그리고… 33명을 죽인 CIA 비밀요원이다.”
1960~70년대 미국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오락쇼 연출자이자 진행자인 척 배리스는 82년 내놓은 자서전 <위험한 마음의 고백-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고백’한다. 낮에는 잘나가는 PD, 밤에는 비밀요원으로 살았다는 이 황당한 고백이 과연 사실일까? 미 중앙정보국(CIA)이 “우리가 PD를 꼬드겨서 33명을 죽이도록 했다”고 확인해줄 리는 없으므로 이 책은 ‘공인될 수 없는 자서전’이다(CIA는 척 배리스의 주장이 전혀 아니라고 주장했다).
PD 겸 비밀요원으로 활동한 배리스의 고백
어쨌든 믿거나 말거나 ‘고백’은 대단한 화제가 됐고, 스타 배우 조지 클루니는 자신의 첫 감독 작품으로 이 이야기를 골랐다. 여기에 <존 말코비치 되기>와 <어댑테이션>의 작가 찰리 카우프만이 시나리오를 썼고, 제작총지휘에 스티븐 소더버그, 촬영에 뉴튼 토머스 시겔, 배우로 샘 록웰, 줄리아 로버츠, 드루 배리모어, 룻거 하우어 등이 모인 <컨페션>(Confessions of a Dangerous Mind·7월25일 개봉)은 겉으로 보기에, 한 인간의 위험한 이중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여자 꼬시기에 온 관심이 쏠려 있지만 정작 데이트에서는 계속 꼬이기만 하는 척 배리스(샘 록웰)는 TV 산업이 유망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송사 견학 안내자로 시작해 방송사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60년대 초에 입사한 그는 3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나와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다가 짝짓기를 하는 <데이트 게임>의 아이디어를 냈지만,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아 좌절한다. 어느 날 CIA 요원이라는 짐 버드(조지 클루니)가 나타나 비밀암살요원이 될 것을 제안한다.
“CIA? 폼도 나고 취미 삼아 돈도 벌고 마다할 이유가 없지. 동유럽 미녀들과 뒹굴어볼 수도 있고”라며 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말이 좋아 CIA지 애국주의로 포장한 도살자 양성소”인 훈련소에 들어가 카스트로와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에 총을 갈겨대는 등의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돌아온 날 방송사에서 <데이트 게임>을 방송하겠다는 연락이 오고 척은 <데이트 게임> <신혼부부 게임> <땡 쇼>(gong show) 등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쇼 프로 PD로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틈틈이 유럽과 남아메리카를 무대로 비밀요원 일을 한다. 당연히 ‘연애’도 계속된다. 자유분방하고 언제나 그를 믿고 이해하는 평생의 연인 페니 파치노(드루 배리모어)를 ‘사랑’하지만, 위험해 보이면서도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CIA 요원 패트리샤(줄리아 로버츠)와의 기묘한 관계도 얽혀간다.
건물의 어느 문을 열면 실존 배우인 존 말코비치의 머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거나(<존 말코비치 되기>) 자신과 자신이 지어낸 쌍둥이 동생, 실제 여기자와 난초도둑이 등장해 고뇌하고 쫓고 쫓기는 이야기(<어댑테이션>)를 통해 현실과 허구가 뒤죽박죽되며 현실의 다른 면들을 돌아보게 하는 충격을 줬던 카우프만은 이 작품에서는 의외로 얌전하다. 굳이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이 척 배리스의 고백 자체가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판타지 성격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클루니와 카우프만은 배리스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진심으로 그의 고백에 귀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감독 클루니의 말처럼 ‘이중생활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그가 미쳤는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영화의 본론이 아니다(CIA나 안기부, 슈타치 같은 ‘기관’들이 벌인 일들을 생각하면, 사생활에 사정없이 몰래 카메라를 들이대고 자랑스러워하는 쇼 프로 진행자나 짝짓기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기관원’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미국의 정신을 드러내는 엇갈린 시각
어쨌든 심각한 내용과 달리 매우 경쾌하고 조금은 빈정대는 이 영화가 보여주려 애쓰는 것은 배리스가 대표하는 미국의 대중문화와 미국의 정신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약간의 추억이 뒤섞인 묘한 감정이다.
한국에서 내전으로 쑥대밭이 된 나라를 ‘잘 살아보세’식의 동원체제로 극복하느라 정신없던 60~70년대, 머나먼 미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다. 배리스가 연출한 의 60년대 인기 프로 <데이트 게임>은 우리나라의 <사랑의 스튜디오>나 <천생연분> 등 질리도록 계속되는 짝짓기 프로그램의 원조다. 신혼부부들이 나와 퀴즈를 맞히고 냉장고, 세탁기를 타가는 <신혼부부 게임>은 “기꺼이 남편과 아내를 팔아 살림을 장만하겠다”는 알뜰살림 장만퀴즈 같은 종류이며, 일반인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게 하고 틀리면 사정없이 ‘땡’을 치면서 망신 주는 과정을 즐기는 <땡쇼>는 <전국노래자랑>과 비슷하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척 배리스의 프로그램들과 요즘 한국 TV 프로그램들의 놀라운 유사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지금 보기에는 진부하지만 일반인들이 출연해 저지르는 의외의 실수와 쑥스러운 행동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런 ‘리얼리티 쇼’를 배리스가 처음으로 들고 나왔을 때는 혁신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배리스의 한창 시절 방송사의 주간 편성표에는 그의 쇼가 27시간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어둡고 푸른 조명 아래서 벌어지는 비밀요원의 ‘애국적인’ 살인과 밝은 옐로톤 조명 아래 선남선녀들을 등장시켜 미소짓게 하고, 사실은 출연자들을 바보 취급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TV 프로그램이 교차하는 <컨페션>은 현대 대중문화의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속성에 대한 야유다. 배리스가 인기를 얻고 생계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비밀요원 생활을 계속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살인에서 느끼는 기묘한 흥분’ 때문인데 영화는 그가 쇼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넌지시 암시한다. 최근에도 가장 많은 지탄을 받으면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프로그램이 ‘서바이벌 게임’류의 리얼리티 쇼인 것을 보면 대중문화의 관음증과 가학성이 ‘살인적’이지 않은가. 척 배리스는 <땡 쇼>에 나와 쭈삣거리며 노래 부르다 ‘땡’ 소리가 울리면 얌전히 들어가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을 보면서 “잠깐 TV에 출연하고 바보가 되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고 말한다. 배리스는 또 쇼 우승자에게 주는 해외여행 상품의 인솔자로 따라간 여행지에서 지령을 받아 살인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정작 그 사람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배리스의 모습은 미국인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대중문화의 폭력성에 야유를 보내다
척 배리스의 ‘고백’에 대해 대부분은 사람들은 ‘거짓’이라며 “그가 죽인 것은 미국문화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CIA 요원이었다는 주장이 이제는 인기가 예전만 못한 배리스가 자신의 경력을 위조해 관심을 끌려고 하는 ‘마지막 쇼’일지라도 하루하루 시청률에 피를 말려야 하는 강박관념 혹은 정신분열에 대한 상징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죄의식과 자기 혐오의 판타지였을까? 영화에서도 비밀요원으로서 그의 삶은 냉전시대의 실제적인 분위기보다는 판타지나 꿈처럼 묘사된다. 특히 마지막에 짐 버드가 찾아와 “너의 실제 아버지는 어머니가 몰래 사귀었던 애인이었으며 그는 연쇄살인범이었다”고 말하고 죽은 뒤 배리스가 어머니의 거대한 환상을 보는 장면 등을 보면 감독 또한 배리스의 주장을 사실로 믿는 것 같지는 않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사진/ 낮에는 잘나가는 PD로, 밤에는 비밀요원으로 살았다는 척 배리스. 영화 <컨페션>은 배리스의 고백에 담긴 진실을 좇는다.
어쨌든 믿거나 말거나 ‘고백’은 대단한 화제가 됐고, 스타 배우 조지 클루니는 자신의 첫 감독 작품으로 이 이야기를 골랐다. 여기에 <존 말코비치 되기>와 <어댑테이션>의 작가 찰리 카우프만이 시나리오를 썼고, 제작총지휘에 스티븐 소더버그, 촬영에 뉴튼 토머스 시겔, 배우로 샘 록웰, 줄리아 로버츠, 드루 배리모어, 룻거 하우어 등이 모인 <컨페션>(Confessions of a Dangerous Mind·7월25일 개봉)은 겉으로 보기에, 한 인간의 위험한 이중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여자 꼬시기에 온 관심이 쏠려 있지만 정작 데이트에서는 계속 꼬이기만 하는 척 배리스(샘 록웰)는 TV 산업이 유망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송사 견학 안내자로 시작해 방송사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60년대 초


사진/ 너무나도 완벽했던 배리스의 이중생활. 그는 인솔자로 따라간 여행지에서 살인지령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