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노출의 계절에 생각하는 속옷 패션… 남성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당당함의 표현
얼마 전 말레이시아 출장 길에 짙은 핑크색의 브래지어를 샀다. 특히 어깨 끈이 마음에 들었다. 그 끈들은 속옷이라기보다는 비키니 수영복의 그것처럼 예쁘고 매끈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나시’라고 부르는 탱크톱과 매치시키면 아주 근사할 것 같았다. 요즘 대담한 여자들은 톱의 끈과 브라 끈을 나란히 노출시켜 입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밤 말레이시아 관광청에서 주최하는 ‘과일 축제’에 갈 때 나는 엉뚱하게도 그 브래지어를 하얀 면 티셔츠 안에 받쳐입었다. 물론 내 티셔츠는 당연히 여름용이니까 누가 봐도 ‘저건 분홍색 브래지어다’ 싶을 정도로 얇았다. 가이드가 이슬람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할 때는 반바지나 슬리퍼는 물론 소매 없는 옷도 절대로 입어선 안 된다는 주의를 여러 번 주었던 터라 나는 나름대로 그 ‘틈새시장’을 공략했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축제에서 수많은 회교도 남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속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Obladi, Oblada, Life goes on, blah!).
우리나라 선비님들은 철없는 여자가 나라 망신시킨다며 혀를 차시겠지만, 어차피 행사에 동원된 전 세계 미디어는 사바 주(州) 왕과 말레이시아 문화부 장관이 행사장에 입장하는 순간 도열하여 박수치기 위한 용도밖에 안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한 ‘짓’은 말레이시아의 관료주의에 대한 내 식대로의 ‘복수’였던 것이다. 게다가 아무도 불행해지지 않는 복수이니, 그 얼마나 유쾌한가?
노출을 위한 여름용 ‘끈’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얼마 전 그야말로 난리가 났던 ‘하지원의 팬티 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원쪽은 문제가 커지자 그게 실은 팬티 끈이 아니라 골반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보정하는 벨트였다고 해명했지만 나로서는 그게 팬티 끈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떠랴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보는 상상하기도 끔찍한 화면들에 비하면 그건 쇼 비즈니스계가 던져주는 건강한 볼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혹시 어른들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너무 작은 일에만 분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마돈나가 하면 성 혁명이고 하지원이 하면 천박한 장삿속이라고 생각하는 이중적 잣대도 탐탁지 않다. 그런데 인터뷰를 위해서 만났던 하지원은 “솔직히 욕먹는 건 별로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더 무서운 건 그저 그렇다”는 반응이란다. 마릴린 먼로가 불행했던 건 섹스 심벌이 아닌 예술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성생활까지 팔아치운 마돈나는 결코 불행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하지원의 말은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때때로 어떤 여자들은 일부러 옷을 천박해 보이도록 입는다. 물론 적어도 제 눈에 멋져 보이니까 그렇게 입는다. 그런데 어떤 여자들은 그 저속한 차림 안에 풍자를 숨겨놓는다. 반면 신사동의 ‘나가요’ 아가씨들은 청담동의 요조숙녀처럼 입는다. 왜일까? 남자들이 좋아하는 건 자기 여자가 아니라 남의 여자 노출이라는 걸 누가 모르나? 몇년 전부터 옷 안에 입는 란제리가 아니라 옷으로서의 란제리가 유행하고 있는 건, 여자들이 브래지어 끈을 과감하게 노출시킬 수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남자의 시선에서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에디터

노출을 위한 여름용 ‘끈’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얼마 전 그야말로 난리가 났던 ‘하지원의 팬티 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원쪽은 문제가 커지자 그게 실은 팬티 끈이 아니라 골반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보정하는 벨트였다고 해명했지만 나로서는 그게 팬티 끈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떠랴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보는 상상하기도 끔찍한 화면들에 비하면 그건 쇼 비즈니스계가 던져주는 건강한 볼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혹시 어른들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너무 작은 일에만 분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마돈나가 하면 성 혁명이고 하지원이 하면 천박한 장삿속이라고 생각하는 이중적 잣대도 탐탁지 않다. 그런데 인터뷰를 위해서 만났던 하지원은 “솔직히 욕먹는 건 별로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더 무서운 건 그저 그렇다”는 반응이란다. 마릴린 먼로가 불행했던 건 섹스 심벌이 아닌 예술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성생활까지 팔아치운 마돈나는 결코 불행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하지원의 말은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때때로 어떤 여자들은 일부러 옷을 천박해 보이도록 입는다. 물론 적어도 제 눈에 멋져 보이니까 그렇게 입는다. 그런데 어떤 여자들은 그 저속한 차림 안에 풍자를 숨겨놓는다. 반면 신사동의 ‘나가요’ 아가씨들은 청담동의 요조숙녀처럼 입는다. 왜일까? 남자들이 좋아하는 건 자기 여자가 아니라 남의 여자 노출이라는 걸 누가 모르나? 몇년 전부터 옷 안에 입는 란제리가 아니라 옷으로서의 란제리가 유행하고 있는 건, 여자들이 브래지어 끈을 과감하게 노출시킬 수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남자의 시선에서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