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동안 장맛비가 내리붓다가 가끔씩 무더위와 함께 햇빛을 내비치는 요즘이고 보니 빗줄기만 없어도 좋은 날씨 축에 낀다.
매운 약발 한창 차오르는 고추나무 키가 허리께까지 감아오르고 벌써 붉은 고추 한두개 따면서 오져(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던 어머니는 요사이 “오메 하늘님도 비 좀 그만 내려주시제. 고추 다 잡아먹었당께”라며 울상이다. 가지마다 휘어지게 고추를 매달고 있더니 아마도 장맛비에 고추 속도 골고 어머니 맘도 곯아내린다.
새벽참에 삽자루에 우비 챙겨입고 논에 물꼬 트러 가신 아버님은 아침 때가 돼서야 “징헌 놈의 비” 하시며 들어서신다.
오전참에 원불교 성지에 갈 일이 있던 터에 ‘성지 기운 받고 오자’는 욕심까지 챙겨본다.
비는 멈추고 흰구름떼가 감싸안은 옥녀봉과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이 신령스런 기운을 더해준다. 영광 지명인 신령스럴 영(靈)에 빛 광(光)자가 실감나는 풍광이다.
88년 전 원불교가 생겨난 종교적 발상지를 갖고 있는 곳이 영광이다. 영광 자랑 더하자면 그뿐이랴? 백제 불교의 최초 도래지로 꼽히는 법성항도 이곳에서 멀지 않다.
그러나 최근 얼마간 인터넷이나 사진, 지역신문 기사로 접했던 상식 이하의 일들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핵 폐기장 후보 터 부근 주민들이 유치 집회를 한 뒤 ‘상생, 평화, 환경,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기도 등 종교적 방법으로 ‘에너지 정책’ 전환운동을 벌이고 있는 원불교 성지에 위치한 영산원불교대학교 일대에 들어가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계절학기 수업 중이던 예비 교역자(원불교대학교 학생)와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원로 성직자들은 3시간여 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다. 수업 중이던 교수는 전화를 통해 현장 상황을 급박하게 전했고 건물에 갇혀 수업받기를 포기한 학생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청와대부터 영광군 홈페이지까지 소식을 올려 종교성지 난입, 폭력사건은 세상에 빠르게 전해졌다. 백수 길룡리란 아주 작은 마을에 초라하리만치 소박하게 자리잡은 종교 성지가 사람들의 물욕에 의해 이리저리 짓밟히는 모습은 영광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원불교는 물론 종교계에서도 공동성명들이 줄을 잇고 있다. 더욱 가슴 답답한 건 관련회사 간부급 직원들이 버젓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사진들이다. 종교 성지가 “세상과 나몰라라”하고 고요하거나 청정하기만 하기를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성난 사람들의 분풀이 대상은 더욱 아니지 싶다. 비가 온 탓에 터럭 하나 없이 깔끔한 시야가 초록세상으로 물들어가는 길룡리 들녘을 거짓 없이 보여준다. 아픈 기억을 말끔히 털어버리고픈 듯 말간 기운 전하는 성지 모습에 홀려 덩달아 잠시 세상의 시름 놓아본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일러스트레이션 | 경연미
핵 폐기장 후보 터 부근 주민들이 유치 집회를 한 뒤 ‘상생, 평화, 환경,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기도 등 종교적 방법으로 ‘에너지 정책’ 전환운동을 벌이고 있는 원불교 성지에 위치한 영산원불교대학교 일대에 들어가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계절학기 수업 중이던 예비 교역자(원불교대학교 학생)와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원로 성직자들은 3시간여 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다. 수업 중이던 교수는 전화를 통해 현장 상황을 급박하게 전했고 건물에 갇혀 수업받기를 포기한 학생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청와대부터 영광군 홈페이지까지 소식을 올려 종교성지 난입, 폭력사건은 세상에 빠르게 전해졌다. 백수 길룡리란 아주 작은 마을에 초라하리만치 소박하게 자리잡은 종교 성지가 사람들의 물욕에 의해 이리저리 짓밟히는 모습은 영광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원불교는 물론 종교계에서도 공동성명들이 줄을 잇고 있다. 더욱 가슴 답답한 건 관련회사 간부급 직원들이 버젓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사진들이다. 종교 성지가 “세상과 나몰라라”하고 고요하거나 청정하기만 하기를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성난 사람들의 분풀이 대상은 더욱 아니지 싶다. 비가 온 탓에 터럭 하나 없이 깔끔한 시야가 초록세상으로 물들어가는 길룡리 들녘을 거짓 없이 보여준다. 아픈 기억을 말끔히 털어버리고픈 듯 말간 기운 전하는 성지 모습에 홀려 덩달아 잠시 세상의 시름 놓아본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