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변기 안의 한점 꽃잎이 안겨준 긴 여운… 심미적 욕구에 다가서는 작은 정성과 지혜
지난해 6월 나는 한 변기 앞에서 잠시 망설였던 오후를 기억한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백자처럼 청결한 변기 안에는 빨간 나뭇잎 하나가 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결국 물을 내렸을 때 나뭇잎은 순식간에 변기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두 시간 후에 다시 그 화장실을 찾았을 때 변기 안에는 또 다른 나뭇잎이 살랑거리고 있었다. 이 레스토랑엔 누군가 물 내려가는 소리만 듣고 있다가 재빨리 새로운 나뭇잎을 가져다놓는 새로운 직종의 종업원을 고용한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패션 피플들이 왜 이 ‘팔레 드 고몽’(이하 고몽)이라는 레스토랑을 사랑하는지, 커피 한 잔에 1만원이나 하는 이 레스토랑에 오면 왜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 화장실을 좋아하지만 청담동 사람들이 무엇보다 사랑하는 건 주차원들의 멋진 유니폼(여름에는 스카프를 두른 흰 셔츠에 사파리풍 카멜색 반바지와 맥고 모자를 쓰고, 겨울에는 더블 버튼 롱코트에 챙이 넓은 모자를 착용한다)이다. 사실 청담동이라는 이 번들거리는 동네에는 인간미는 없고 잘난 체 하며 겉멋만 잔뜩 부린 레스토랑들이 많다. 나는 그런 레스토랑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고몽만큼은 예외였다. 언제나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 고몽의 젊은 사장은 레스토랑 영업을 하는 걸 하나의 공연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스태프들의 의상 자체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사랑했던 레스토랑이나 호텔은 ‘변기 안의 한점 꽃잎’처럼 저마다 아주 사소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숙박비가 고작 1만원 정도에 불과했던 네팔의 인드라호텔 방에 놓여 있던 녹슨 촛대와 하얀 초, 그리고 들꽃 한 송이…. 빌라 내부에서 문을 여는 순간 하얀 꽃잎이 둥둥 떠다니는 개인 풀장이 발 아래서 찰랑거리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 발리의 더 발레 발리 리조트.
나는 지금 일본 다도의 원류 ‘센 리큐’의 충격적인 일화를 생각하며 다시금 몸을 떨고 있다. 최소한의 심미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화려한 장식을 배제했던 센 리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온다는 전갈을 받으면 정원에서 그의 전용 다실에 꽂을 나팔꽃 한 송이를 꺾었는데, 그 한 송이를 취하고 나면 정원의 나머지 꽃들은 다 죽였다고 한다. 나는 이 일화를 듣고 정말로 몸서리를 쳤다. 무사의 칼보다 한 송이 꽃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스스로 탐미주의자이기도 했던 천하제일의 무사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차 주전자 하나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센 리큐를 몹시 두려워했던 모양이다. 결국 센 리큐는 히데요시로부터 명령을 받고 자진함으로써 70년의 일생을 마쳤다. 이제 단순히 최고급 인테리어나 맛있는 음식, 몸에 밴 친절만으로 레스토랑이나 호텔을 경영하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들은 기왕이면 아름다운 환대에 돈을 쓰고 싶어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벚꽃이 비에 막 떨어지는 이미지만으로 충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된 장사치라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무언가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미의식은 천민자본주의 안에서 오랫동안 존중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변할 때가 됐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이제 경제나 이데올로기만큼 중요해진 게 아닌가 싶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사진/ 발리 리조트 입구에 있는 꽃장식.〈바자〉
나는 지금 일본 다도의 원류 ‘센 리큐’의 충격적인 일화를 생각하며 다시금 몸을 떨고 있다. 최소한의 심미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화려한 장식을 배제했던 센 리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온다는 전갈을 받으면 정원에서 그의 전용 다실에 꽂을 나팔꽃 한 송이를 꺾었는데, 그 한 송이를 취하고 나면 정원의 나머지 꽃들은 다 죽였다고 한다. 나는 이 일화를 듣고 정말로 몸서리를 쳤다. 무사의 칼보다 한 송이 꽃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스스로 탐미주의자이기도 했던 천하제일의 무사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차 주전자 하나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센 리큐를 몹시 두려워했던 모양이다. 결국 센 리큐는 히데요시로부터 명령을 받고 자진함으로써 70년의 일생을 마쳤다. 이제 단순히 최고급 인테리어나 맛있는 음식, 몸에 밴 친절만으로 레스토랑이나 호텔을 경영하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들은 기왕이면 아름다운 환대에 돈을 쓰고 싶어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벚꽃이 비에 막 떨어지는 이미지만으로 충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된 장사치라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무언가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미의식은 천민자본주의 안에서 오랫동안 존중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변할 때가 됐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이제 경제나 이데올로기만큼 중요해진 게 아닌가 싶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