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일 | 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이러고도 작가다! 새삼 얼굴이 달아오른다. “책은 늘 책 이상이다.” 누가 한 말인가? 책은 눈앞에 보이는 고형 물질, 또는 그 속에 담겨 있는 정보의 양만이 다가 아니다. 어린 시절 누나의 책꽂이에서 본 빨간색 표지 <소월시집>은 그 속에서 슬핏 떨어지던 빛바랜 은행잎만큼이나 지금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한가한 휴일 오후, 어쩌다 옛날 소설책을 꺼내 표지를 들추자 나타나는, 법무부 관인이 찍힌 ‘도서열독허가증’은 내 젊은 날의 방황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때로는 좌절된, 그러나 아름다운 욕망 술자리에서 모처럼 김지하의 <황토>가 화제에 오르면, 지금은 지방대학에서 조용히 늙어갈 벗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적조했구나, 벗이여. 그럴 때 책은 두루 추억이다. 세배를 간 노시인의 집에서 만난 서가는 그것 자체로 한국문학의 위엄이다. 시골 우체국에서 네루다를 끼고 온 중년 여인을 보았을 때, 히말라야 산 속 롯지에서 마르케스를 읽는 서양 여자를 보았을 때, 나는 다가가 말을 걸고 싶은 욕망을 애써 참아야 했다. 그때 책은 좌절된, 그렇지만 아름다운 욕망이다. 고백한다. “책은 늘 책 이상”이라고 폼나게 말한 바 있는 나는 〈!느낌표〉에서 연락이 오면 아마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흥분할 것이다. 그 한 일년쯤 뒤 달라졌을 내 모습이 보인다. 글, 그런 거 왜 쓰지? 책, 그런 거 왜 보지? 두루두루 부끄럽다. 김종철, 권정생 선생에게 부끄럽고, “책만은 책이 아니라 ‘冊’으로 쓰고 싶다”고 한 선배 작가(이태준)에게도 면목이 없다. 부기: 한겨레의 한글 전용 원칙을 99%(책) 지지하면서도, 1%(冊)의 여유는 좀 남겨 달라고 부탁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 1%의 상형조차 금세기 안으로는 달라질 것만 같아 두렵다. 김남일 | 소설가
책과 함께 달려온 인생의 드라마. ‘冊에세이’가 이번호부터 매주 실립니다. 작가들이 돌아가며 한달씩(4차례) 쓰게 될 책 칼럼을 기대해주십시오. -편집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