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장을 연 <원더풀 데이즈>… 영상·사운드 높은 완성도에도 캐릭터 밋밋
<원더풀 데이즈>(개봉 7월17일)는 영원히 지연될 것 같은 프로젝트였다. 인물은 2D 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속도감과 입체감을 위해 메카닉 및 배경 일부는 3D로, 주요 배경과 건물들은 미니어처로 제작해 촬영·합성하므로써 실사영화에 버금가는 사실감과 깊이감을 지닌 세계 최초의 ‘멀티메이션’을 탄생시키겠다는 야심.
기획부터 완성까지 7년의 시간과 120억원이 소요된 작품이 탄생하는 사이 미국에서 일본인들이 <파이널 환타지>를 만들었고, 실패했다. 3D로 실사영화에 버금가는 인물과 배경을 만들어냈지만 관객들은 늘 보던 애니메이션도, 실사영화도 아닌 이 낯선 물건을 외면했다. 반면 캐릭터와 에피소드에 탁월한 상상력을 불어넣은 픽사의 3D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와 <니모를 찾아서>는 엄청난 성공으로 신바람이 났다.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할 <원더풀 데이즈>의 운명은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3D와 2D의 시너지 효과인가, 아니면 불행한 조우인가.
3D와 2D 어우러진 멀티메이션 탄생
<원더풀 데이즈>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쓴 것은 확실하다. 스토리와 캐릭터가 밋밋하다는 흠을 빼놓으면(아뿔싸! 혹시 이게 결정적 발목 잡히기가 되는 건 아닐까), 영상과 사운드는 7년이란 시간을 기꺼이 보답해줄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화합하기 어려워 보이는 요소들을 결합시킨 ‘멀티메이션’이란 제작방식은 작품의 흐름에도 적용된 듯하다. 극적인 운명과 낭만은 신파적 감상성으로 탈색되기 십상인데 <원더풀 데이즈>는 그 감상성이 너무 ‘쿨’해서 아무리 폼을 잡아도 그게 값싸 보이지 않는다. 비장미로 승부하는 애니메이션은 때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재패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사이보그가 처한 운명은 매혹적인 비장미로 가득하고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 같은 추종자를 낳았다. 그런데 <공각기동대>는 8년 전에 나온 작품이다. <원더풀 데이즈>의 멋스러움이 아슬아슬해 보이는 건 지연된 시간을 배경으로 등장한 듯한 기시감 때문이다. 2142년, 마침내 그날의 시실섬으로
2142년, 태평양섬 한가운데 떠 있는 시실섬은 짙은 회색빛으로 둘러싸여 비극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 공간을 지배하는 에코반이란 도시의 동력원은 오염이다. <원더풀 데이즈>의 독창성을 잘 보여주는 설정인데 이런 배경이다. 핵전쟁과 환경오염으로 생태계는 연속적으로 파괴됐고 2035년 살아남은 자들은 주위의 오염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성장하는 에코반을 만들어낸다. 그로부터 100년이 흘러 에코반은 최대 위기를 맞는다. 무한대로 얻을 수 있을 것 같던 오염물질이 고갈되면서 에너지 출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세계를 지배하던 에코반은 에너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유전지역을 개발하고 지하에 남아 있는 석유나 천연가스를 태워 오염물질을 늘리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에코반 주위에 존재하는 일종의 슬럼지역 ‘마르’를 불태우는 비밀 작전이 추진되고 마르에 은둔해 사는 수하가 에코반으로 침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에코반 경비대 제이와 마주친다. 계급적·신분적 차이가 뚜렷해 보이는 수하와 제이는 어릴 적 단짝이었고, 어른이 된 지금 그들은 연인처럼 서로를 그리워했다. 마치 <쉬리>에서 서로 총구를 겨눈 연인들처럼 이들도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한국영화의 흐름을 바꾼 <쉬리>처럼 <원더풀 데이즈>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어두운 운명을 박차고 비상할 수 있을까.
이성욱 기자/ 씨네21 lewook@hani.co.kr

<원더풀 데이즈>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쓴 것은 확실하다. 스토리와 캐릭터가 밋밋하다는 흠을 빼놓으면(아뿔싸! 혹시 이게 결정적 발목 잡히기가 되는 건 아닐까), 영상과 사운드는 7년이란 시간을 기꺼이 보답해줄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화합하기 어려워 보이는 요소들을 결합시킨 ‘멀티메이션’이란 제작방식은 작품의 흐름에도 적용된 듯하다. 극적인 운명과 낭만은 신파적 감상성으로 탈색되기 십상인데 <원더풀 데이즈>는 그 감상성이 너무 ‘쿨’해서 아무리 폼을 잡아도 그게 값싸 보이지 않는다. 비장미로 승부하는 애니메이션은 때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재패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사이보그가 처한 운명은 매혹적인 비장미로 가득하고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 같은 추종자를 낳았다. 그런데 <공각기동대>는 8년 전에 나온 작품이다. <원더풀 데이즈>의 멋스러움이 아슬아슬해 보이는 건 지연된 시간을 배경으로 등장한 듯한 기시감 때문이다. 2142년, 마침내 그날의 시실섬으로

사진/ 〈원더풀 데이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것인가. 세 젊은이의 엇갈린 운명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