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 동화책 <나의 사직동>
‘경희궁의 아침’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엿볼 수 있고 게딱지 같은 집들 대신 훤칠한 고층빌딩이 들어서는 ‘광화문 시대’가 열려서 좋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재개발은, 특히 서울 강북의 재개발은 오랜 세월 쌓아온 사람들의 자취를 한꺼번에 지워버리는 폭력적인 과정임에 틀림없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 129번지에서 삼십년 넘게 살아온 한성옥씨와 그의 친구 김서정씨가 글·그림을 함께한 동화책 <나의 사직동>은 11살 주인공 소녀의 눈에 비친 재개발을 그렸다.
재개발 직전 사직동은 정든 이웃들이 함께 살아가는 동네였다. 햇볕이 따뜻한 날이면 무·호박·가지·버섯을 멍석 가득 넣어놓고 말리던 나물 할머니, 파마약 사들고 가면 공짜로 해주는 파마 아줌마, 웃는 얼굴로 날마다 골목길을 깨끗이 쓸던 스마일 아저씨가 있고, 친구들과 함께 뛰노는 골목길, 땀을 씻어주던 나무 그늘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재개발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더니 동네는 슬금슬금 변하기 시작했다. 엄마아빠가 갑자기 무슨 회의에 간다며 집을 자주 비웠고 꽃집이랑 치킨집이 부동산 사무실로 바뀌었다. 늦은 가을날 오후 반장 할아버지 생일날 동네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모였다. 잔치가 끝나고 뿔뿔이 흩어지던 사람들을 배웅하던 반장 할아버지는 중얼거린다. “아파트도 좋지만 이런 동네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공사가 끝나고 ‘나’는 다시 사직동에 돌아왔다. 이제 우리집은 사직동 129번지가 아니고 모닝팰리스 103동 801호다. 집 주소만 바뀐 것이 아니다. 동네의 모든 것이 변했다. 이젠 우리 동네가 아니라고 할 만큼. “단지 안 길은 널찍하고 반듯합니다. 나무에, 꽃에, 분수가 춤추는 작은 공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팽이 돌리고 인형놀이 하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싹싹 비질하는 사람은 제복 입은 청소 아줌마입니다. 옛날 동네 사람들은 이제 여기 살지 않습니다… 여기는 사직동이지만 나의 사직동은 아닙니다. 나의 사직동은 이제 없습니다.”
책 속 그림들은 모두 실제 사직동의 풍경과 사람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한성옥씨는 동네 모습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은 뒤 연필과 수채화로 다시 손을 대어 다큐멘터리적인 사실감을 살렸다. 책 내용과 달리 실제 사직동은 아직 재개발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덮고 나면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지울 길 없다. 그건 아마도 사직동의 앞날이 책의 줄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일 거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책 속 그림들은 모두 실제 사직동의 풍경과 사람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한성옥씨는 동네 모습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은 뒤 연필과 수채화로 다시 손을 대어 다큐멘터리적인 사실감을 살렸다. 책 내용과 달리 실제 사직동은 아직 재개발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덮고 나면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지울 길 없다. 그건 아마도 사직동의 앞날이 책의 줄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일 거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