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문화공간 순례하며 삼복 더위 날려… 휴가철에 가족과 함께하는 전시와 공연들
여름휴가라고 산과 바다로만 가라는 법 있나. 집 떠나지 않고도 짬을 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풍성하다. 가족들을 위한 전시·공연 프로그램을 찾아보자.
전시 | 동화나라 찍고 명상여행 떠날까
여름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을 위해 전시장이 직접 작품을 만지고 체험하는 놀이터로 바뀐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02-734-6111)는 ‘동화속 미술여행’(8월17일까지)을 주제로 설치미술 작가들이 동화나라를 꾸민다. 2층 메인 전시장에는 예술가들이 동서양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들을 놓았다. 알루미늄으로 올록·볼록 거울을 만들어 얼굴이 재미나게 비치는 <백설공주의 요술거울>, <어린왕자>에서 보아뱀이 모자로도 보이는 것처럼 고무찰흙을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 붙이는 고무자석놀이 등 재밌는 ‘놀잇감’ 10점이 선보인다. 1층엔 가구 디자이너 이종명씨가 디자인한 어린이 도서관을 위한 가구들이 놓여 자유롭게 사진도 찍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지하 전시장은 <털끝 하나도 건드리면 안되기> <마지막 거인> <짱뚱이> 등 그림책 원화를 슬라이드로 만들어 하루에 2~3작품씩 보여준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02-580-1517)도 5개월 동안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새 단장한 모습으로 미술과 놀아보자고 손짓한다. ‘미술과 놀이전’(7월25일~8월24일)은 회화·만화·사진·조각·설치·영상미술 등 탈장르적인 작품 150점을 선보인다. 미술로 부르기 주저했던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모자이크 퍼즐놀이, 그림자놀이, 과자로 만든 조각, 전시장에서 드러누워 작품 감상하기 등이 벌어진다. 자전거 손잡이로 <황소의 머리>를 만들었던 피카소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재치 넘치는 조각·설치 작품도 놓인다.
히딩크로 더욱 가까워진 네덜란드의 정통 회화를 맛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8월15일~11월9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02-779-5310)은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우스 왕립미술관 소장품 50여점을 초대했다. 하멜이 제주도에 와서 표류했던 17세기 당시 네덜란드는 국제무역이 가장 성행한 곳으로 보통 시민들도 회화를 구입할 정도로 시각 문화가 꽃피었던 곳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17세기 북부 네덜란드 미술을 대표하는 피터 클레즈, 얀 다비즈 데 헤엠, 빌렘 클레즈 헤다 등의 정물화와 가브리엘 메추 등의 서민적 풍속화, 발렌 반 데 벨데의 풍경화 등을 비롯해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안토니 반 다이크 등 플랑드르 작가의 작품들이 함께 소개된다.
하안거에 들어가 용맹정진함으로써 더위를 물리치는 스님들처럼 명상적인 전시를 통해서도 찜통더위를 잊을 수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02-2188-6000)은 독일 출신이지만 동양적 세계관을 표현하는 작가 볼프강 라이프 초대전을 연다. 7월9일~9월12일까지. 볼프강 라이프는 어린 시절부터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을 자주 여행하며 힌두교·자이나교·불교·도교를 비롯해 12세기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신비주의자인 잘라루딘 루미의 삶과 사상에 매료됐다. 일찍이 서양 자연과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의학공부를 마치고도 의사 되는 길을 포기하고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그가 사용하는 꽃가루·우유·돌·밀랍 등의 천연 재료는 자연의 순환과 우주적 질서를 표현한다. 자신의 집 주변에 널려 있는 민들레·송화·개암나무·미나리아재비 등 꽃가루를 받아서 조심스럽게 체에 거른 뒤 바닥에 뿌리거나 병에 담아 보관하는 <꽃가루> 작업을 비롯해 죽음과 삶의 경계,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묻는 쌀로 만든 집, 밀랍으로 만든 방 등이 전시된다.
공연 | 야외극장에서 추억을 만드세요
무엇보다 여름밤엔 야외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만큼 잘 어울리는 공연도 없겠다
천년 먹은 은행나무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 용문산 야외공연장(02-525-6929)에선 극단 미추의 <한여름밤의 꿈>이 열린다. 8월1~3일 사흘 동안 펼쳐지는 이 공연은 서울~양평 교통편을 제공하며 산채정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뒤엔 시원한 맥주·커피를 마시며 공연을 즐기는 패키지 프로그램이다. 마당놀이로 이름난 극단 미추는 셰익스피어도 걸쭉한 재담 넘치는 마당극으로 바꿔 해학적 무대를 선사한다. 미추관현악단은 라이브 연주로 생생한 무대 분위기에 한몫한다. 한여름밤 깊은 숲 속에서 실타래처럼 엮이던 오해와 갈등이 달빛 걷히고 먼동이 터올 때쯤 풀리면서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이 이야기는 관객과 배우가 함께 숨쉬는 마당극에선 더욱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일본 만화 <유리가면>을 소재로 연작을 만들어온 애플씨어터는 <유리가면>과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뒤섞은 특이한 야외공연을 올린다. 7월9~13일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02-742-7753)에서 열리는 ‘유리가면 에피소드3-한여름밤의 꿈’. 본래 유리가면은 1975년부터 시작해 26년 동안 연재된 일본 만화의 고전으로 한 천부적 재능을 지닌 소녀가 연극계의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고통과 기쁨을 상세히 묘사한 작품이다. 애플씨어터는 이 중 주인공 오유경이 한동안 연기를 하지 못하다 극단 동료들과 어렵게 준비해 결국엔 수천명의 관객을 야외무대에 동원한다는 대목을 원용해 극중극 형식으로 한여름밤의 꿈을 펼쳐놓는다. 야외공연장이란 이점을 살려 공작 내외가 말을 타고 등장하는 장면에선 실제 말을 불러오고, 사냥개인 러시아산 대형 울프하운드도 출연한다. 극 속에서 신비한 마술을 부리는 요정들의 얘기를 재현하기 위해 요정으로 분장한 연기자들은 여러 가지 마술을 익혔고, 조명이나 무대장치로 마술적 효과를 보여준다. 만화 원작 내용처럼 이 공연 역시 극이 끝나고 난 뒤 관객들이 성의껏 돈을 내는 자유 후불제 방식을 택했다. 제작비를 제외한 나머지 수익은 자선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서울 예술의전당(02-580-1300)은 매년 여름방학마다 진행하고 있는 우수 어린이 연극 시리즈로 <이중섭의 그림속 이야기>(7월30일~8월10일), <꼭두각시 놀음 '떼루'>(8월13일~24일) 등 2편의 연극과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7월31일~8월10일)을 무대에 올린다. 연극이 끝난 뒤엔 어린이들이 그림으로 극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또한 어렵고 난해한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고 극적이고 경쾌한 아리아를 재배치해 모험과 환상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그린 어린이 오페라 <마술피리>(8월9일~24일)도 상연된다. 이밖에 음악당에서는 <박정호의 팝스콘서트>(8월7~9일)가 준비됐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박정호의 팝스콘서트>는 클래식 애호가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올해에는 1960년대의 팝명곡들로 주요 레퍼토리를 정해 사흘동안 ‘미니스커트와 고고부츠’ ‘헤이! 비틀즈’ ‘OST 1960’이라는 주제로 관객을 찾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