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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웬수 단골’ 조태일과 그의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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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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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짓집 ‘대교나루터’가 카페 ‘대교’로, 다시 보신탕집 ‘대교’로 변신하기까지

시인 조태일(1941~2002)씨는 6척 거구에 검고 완강한 얼굴을 가진 무골형 인물이다. 아담한 체구에 파리한 얼굴, 이른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을 보고도 감동하고, 비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눈물짓는 감수성을 시인의 전형으로 떠올린다면 조 시인은 시와는 영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조 시인조차 자기의 시 <석탄·국토 15>에서 “이 조가야, 그 거창한 체구엔/ 노동을 하는 게 썩 어울리는데/ 시를 쓴다니 허허허 우습다, 조가야”라고 읊었겠는가. 그러나 조 시인은 그 우람한 체구와는 달리 목소리도 다정다감하고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곱고 여리다. 그의 시도 초기의 모더니즘 경향에서부터 서정시, 그리고 유신 독재시절의 저항시에 이르기까지 섬세한 감수성과 고졸한 품격이 유감 없이 보인다.

사진/ 보신탕집 ‘대교’는 수육, 탕, 무침도 좋지만 사시사철 정갈하게 나오는 새콤한 열무김치가 애호가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한다.

두주불사에 어눌한 가운데 위트가 번쩍이는 그의 말솜씨 때문인지 조 시인의 주위에는 항시 문인들이 북적거렸다. 또 조 시인은 군사독재 시절 ‘불온한’ 사회과학 원고들을 도맡아 조판해 주었던 ‘창제인쇄공사’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의 사무실에는 의식화 서적을 출간하려는 소위 ‘빵잽이’ 출신 출판인들이 득실거렸다. 1970년대까지 창제인쇄공사는 서울 중구 오장동에 있었는데, 집세가 너무 비싸고 또 주요 거래처인 창작과비평사, 한길사 등이 마포에 있었기 때문에 1981년 초에 공덕동 5거리 서울대동창회관 앞으로 이사를 왔다.

창제인쇄공사에서 공덕시장쪽으로 가면 지금은 없어진 ‘쇼도 보고 영화도 보는 재재재개봉관’ 경보극장이 있었고, 그 옆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면 ‘대교나루터’란 낙짓집이 있었다. 대교나루터의 여주인 오금일씨는 목포 출신으로 항시 모나리자 같은 은은한 미소를 짓는 20대 후반의 예쁜 모습이었는데, 그녀의 미모와 상냥함은 살아 꿈틀거리는 낙지를 가차 없이 식칼로 저며대는 그 엽기스러움을 덮고도 남았다. 조 시인은 그녀를 항시 자기 애인이라 부르며 문단·출판계 후배들을 대교나루터로 끌고 갔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달랐지만 나오는 시간은 밤 12시 항상 일정했다.

그러나 조 시인을 고정 축으로 해서 경제학자 박현채, 소설가 이호철·황석영·송기원, 시인 이시영·정희성·김정환, 평론가 채광석·김사인, 해직기자 김종철, 학생운동 출신 나병식·최민화 등이 교체 멤버로 그 좁은 식당을 차지하고 주야장창 박정희, 전두환 욕이나 하고 있었으니, 으스스한 그 시절에 다른 손님들이 들어오겠는가? 그리고 조 시인을 비롯해서 나이살이나 먹은 축들은 다투어 오금일씨를 자기 애인이라 하며 틈만 나면 손을 잡으려고 하니, 다른 손님들이 보기에 얼마나 눈꼴이 시었을까? 초보 식당주인에 이런 ‘웬수 단골’들 때문인지 낙짓집은 1년도 못가 문을 닫고, 82년 가을 오금일씨는 식당을 수리해 카페 ‘대교’를 열었다. 그러나 카페 대교도 매일 저녁 마른안주에 병맥주 몇병 놓고 한없이 침방울을 튕기는 조 시인과 그의 일행이 독과점하니 장사가 제대로 되겠는가.


83년, 나는 오금일씨에게 카페를 집어치우고 보신탕집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보신탕집 ‘대교’(02-716-7868)의 초기 2, 3년은 손님이 별로 없어 컨설팅한 죄로 나는 약속만 있으면 ‘대교’를 찾아 보신탕을 신물나도록 먹었다. 이때 대교에 자주 오던 손님으로 김원기 의원이 있었다. 88년, 여소야대 13대 국회 제1야당 평민당의 원내총무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원기 의원은 타고난 인화감과 합리성으로 4당체제를 잘 이끌었는데, 밀고 당기는 지리한 총무회담이 끝나면 의원들과 함께 자주 대교집을 찾았다. 청문회 생중계로 TV에서 자주 보아온 유명 정치인들이 대교를 들락거리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집이 얼마나 맛있기에 저 사람들이 자주 올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지사. 일종의 스타 마케팅의 성공사례로 군사독재 시절의 민주투사 스타들은 손님을 쫓아냈지만, 민주화 시대의 정치 스타는 손님을 불러들였으니, 스타도 스타 나름이다. 수육, 탕, 무침도 좋지만 사시사철 정갈하게 나오는 새콤한 열무김치가 애호가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한다.

김학민 |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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