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자’ 신아의 고백
동미와 나난, 안녕? 난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의 여주인공 신아야. 그동안 에로비디오만 찍었던 봉만대 감독의 첫 번째 스크린 데뷔 영화에서 나 정말 끝내주는 ‘쿨’한 여자로 나왔었지. 화끈하게 섹스하고 오손도손 살다가도 이 남자 나한테 싫증 난 눈치 보이면 바로 반지 빼버리잖아. 사랑이 절대적인 것처럼 노상 눈물 짜는 애들에 비하면 난 정말 개화한 여성 아니겠니.
근데 내가 왜 갑자기 니들 ‘싱글즈’ 자매에게 편지를 쓰고 있냐고? 나 또한 애인이 많아도 ‘싱글 정신’ 하나로 버티며 화려하게 살아왔거든. 근데 갑자기 내가 뭔가에 속고 살아온 건 아닌가 싶은 거야. 남자들에게 잘난 척, 멋진 척 하느라고 실제론 손해 보고 살아온 거 아닐까, 그런 회의가 드는군.
그렇다고 내가 니들 처지를 부러워하는 건 아냐. 물론 너희들 우정은 부럽지만. 우선 동미 넌 미혼모잖아. 나처럼 굳이 콘돔 쓰겠다는 남자한테 다른 이물질이 들어오는 건 싫다며 버티는 여자도 절대 책임질 일 안 생기는 걸 보면 우리 봉 감독님 정말 사려 깊지 않니? (근데 넌 감독 잘못 만나 하룻밤에 임신이라니 정말 처지가 딱하지 뭐냐, 쯧.) 물론 나랑 패션쟁이라는 직업이 같은 나난의 경우엔 좀 부럽기도 하더라. 네 애인은 미국서 패션공부 하라며 뒤를 밀어주겠다는데, 보다시피 내 남자친구는 가게일 땜에 서울 좀 같이 가달라고 하니까 입 내밀고 툴툴거리는 밴댕이 소갈머리 아니겠니. 하지만 매일매일 ‘맛있는 섹스’를 먹여주던 남자랑 헤어져서 얼굴 반을 고도근시 안경으로 가린 남자랑 소개팅하고 있는 내 팔자나, 혼자 한국에 남아서 동미랑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너나 외로운 신세는 마찬가지지 뭐.
각설하고, 니들 앞에서 내가 정말 솔직하게 밝히고 싶었던 건, 봉 감독님이 설정한 내 캐릭터가 사실은 남자들의 또 다른 판타지라는 거야. 영화 앞부분에서야 남자 기 팍팍 죽이지. 첨 만나서 뜨겁게 섹스하고 나서도 그 다음에 전화 오면 “무슨 용건이죠?”라고 차갑게 말하고, 쫙 빼입은 속옷 세트 보고 멋지다 칭찬해주면 “비싼 거예요”라고 기름기 없이 응답하니까. 묻지도 않고 안에다 (사정)해버린 남자가 되려 “그쪽에서 원했던 거 아니냐”고 하는데도 씩 웃고 대범하게 굴잖아. 게다가 옷을 찢을 듯 덤벼들며 침대 아래 위를 분주히 오가는 격정적인 섹스 말고는 별로 남자들한테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요구가 없지. 그뿐이야? 애널섹스하겠다고 오일을 발라가며 아픈데도 자꾸 들이미는 남자친구를 참아주잖니. 남자를 밥줄로 보고 매달리는 것도 아니고, 사랑한다고 올가미를 씌우는 것도 아니니 나야말로 “사랑은 해도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남자들한테 딱 어울리는 여자 아니겠어? 뜨겁고 깔끔한 여자.
그런데도 내가 왜 그렇게 성적 주도권을 쥔 자율적인 여자로 소문이 났는지 알 수 없어. 사랑의 게임판에 여자인 내가 스스로 로그인하고 스스로 로그아웃하기 때문에? 남자들이 지겹게 생각할 즈음에 먼저 떠나주는 게 당당한 여자로 칭송받는 거라면 지겹다고 느낄 틈도 없이 아예 째깍 죽어버리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청순가련한 병든 코스모스나 ‘외강내유’한 해바라기나 다 남자들 머릿속 여자들일 뿐이니까. 이 영화를 보고 똑똑하고 진보적이라는 남자 평론가들이 지루하다고는 할 망정 나쁘다고는 말 안하는 거 다 마찬가지 아닐까.
그리고 동미와 나난. 너희들은 경험이 많으니까 아마 눈치 챘을 텐데 말야. 티 났지? 섹스 중에 내가 내는 신음소리 들으면 아픈 건지, 좋은 건지 분간 잘 안 가잖아. 실제로 대부분 섹스할 때 소리만 요란하게 질러댔지, 별로 맛있진 않았단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그리고 동미와 나난. 너희들은 경험이 많으니까 아마 눈치 챘을 텐데 말야. 티 났지? 섹스 중에 내가 내는 신음소리 들으면 아픈 건지, 좋은 건지 분간 잘 안 가잖아. 실제로 대부분 섹스할 때 소리만 요란하게 질러댔지, 별로 맛있진 않았단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