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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시간여행을 떠나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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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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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TV 외화들

“뚜두두두두… 뚜두두두두….”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아시는가? 이 소리를 듣고 팔과 다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눈을 크게 떠본다든지 귀를 쫑긋 세워본다면 당신은 저 아련한 추억 속의 TV외화 <600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를 기억하는 ‘구세대’다. 스티브 오스틴 대령이 시속 60마일로 달리며 질주하는 악당의 차를 따라잡을 때, 제이미 소머즈가 높은 담을 훌쩍 뛰어넘거나 먼 곳에서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어낼 때, 영화 속에는 이 ‘뚜두두두…’ 소리와 함께 슬로모션이 시작됐다. 생체공학이 완성시켰다는 이 반(半) 기계인간들의 놀라운 힘을 부러워한 어린이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뚜두두두…’ 소리를 입으로 내며 슬로모션으로 뛰어다녔다(나도 그랬다). 이따금씩 자신이 진짜로 ‘600만불의 사나이’가 된 걸로 착각한 꼬마들이 높은 담에서 뛰어내리다 다리가 부러졌다는 신문기사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오스틴 대령 역을 맡았던 배우 리 메이저스와 소머즈 역의 린제이 와그너의 용감하고도 선해 보이는 얼굴을 보면서 어쩌면 ‘미국 백인’에 대한 환상을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600만불’이란 돈이 얼마나 큰 액수인지 셈해보며 ‘미국은 대단한 나라’란 외경심까지 품었다. 하지만 흑백TV조차 그리 흔하지 않던 1970년대 후반엔 이 두편의 외화를 보기 위해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내버려야 했다. TV가 있는 주인집 안방 브라운관 앞에서 1시간여 동안 부동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혹시 주인집 아저씨 맘이 바뀌어 채널을 돌려버릴까 마음 졸이면서.

<소머즈>
<600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가 끝날 무렵, 우리를 찾아온 또 다른 괴력의 남녀가 있었다. 바로 ‘헐크’와 ‘원더우먼’. 악당들로부터 억울하게 얻어맞고 ‘두 얼굴의 사나이’ 데이비드 배너 박사가 푸른색 괴물 ‘헐크’로 변하는 순간, 우리 역시 ‘내 옷이 찢어지는 듯한’ 흥분을 느꼈다고나 할까? ‘헐크’가 사람인지, 진짜 괴물인지는 나중에 그가 미스터아메리카 대회 우승자였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진실로 몰랐었다. 우리는 불쌍한 배너 박사가 이왕 악당을 물리치려면 3번이고 4번이고 헐크로 변해줄 것을 바랐지만 영리한 제작진은 변신 장면을 1회분에 꼭 두번으로 제한해놓았다.

큰형들은 비키니 차림 ‘원더우먼’의 몸매와 미모에 넋을 잃었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녀의 총알을 막는 팔찌와 진실을 말하게 하는 황금올가미의 과학적 원리에 더 관심을 쏟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다이애너 프린스와 트레비 대령이 어색한 관계를 벗고 진정 사랑하는 연인관계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온 동네 벽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브이(V)자를 그리게 했던 영화 <브이>.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들의 피부가 벗겨지면서 파충류임이 밝혀질 때, 섹시한 여장부 다이애너가 생쥐를 입 안에 털어넣을 때, 마침내 인간과 파충류 외계인 사이의 아이가 태어날 때 시청자들은 이 무시무시한 외계인 침공 이야기가 이젠 제발 끝나버렸으면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다.

<바야바> <스타스키와 허치> <기동순찰대> <전격제트작전> <형사 콜롬보> 등 지금 30대 이상이 초·중·고등학생 시절에 재밌게 봤던 70~80년대 TV외화들은 대개 공상과학(SF) 혹은 형사물이었다. 지금 보면 영화 속 특수장비·특수효과는 물론 스토리 구성까지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요즘 나오는 눈부신 컴퓨터그래픽(CG) 영화의 인기에 못지않았다. 이런 인기의 비결에는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한몫했다. <600만불의 사나이> 등에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다이내믹한 목소리를 들려준 양지운, <두 얼굴의 사나이>에서 감성적·지적 연기를 보여준 배한성, <원더우먼>의 이경자, <형사 콜롬보>의 최응찬(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추억은 우리 가슴속에 돌아가고 싶은 아름다움으로 남기도 하지만, 그저 머물러 있기엔 너무나 강력한 삶의 욕구인가보다. <전격제트작전> <두 얼굴의 사나이> 등이 최근 영화와 컴퓨터게임 등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소식이 반갑고도 기쁘기만 하다.

밀리언로즈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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