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상을 위해 전문가들이 추천한 성인만화… 명랑만화부터 폭력물까지 “재밌군 재밌어”
어른이 돼서도 만화를 즐겨 보는 것이 스스로 어색하지 않은 나이는 몇살까지일까? 우리나라에서 만화가 청소년들의 보편적 즐길 거리가 된 것은 60년대 후반부터 잇따라 창간된 <어깨동무> <새소년> 등의 소년잡지들이 만화를 본격적으로 다루면서부터다. 만화계는 바로 그 시절 청소년기를 보낸 지금의 40대 초반∼30대 중반 세대를 잠재적 만화팬의 ‘최고령층’으로 보고 있다. 물론 만화를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지만.
이 연령대 이후 더 만화에 우호적인 세대는 본격 국산애니메이션인 <로보트 태권V>를 초등학교 시절 접하며 만화와 친숙해진 세대들, 바로 지금 흔히 ‘386’세대로 불리는 60년대생들이다. 만화계에서 이들은 그 앞세대보다도 더 만화에 호감을 가진 어른들로 구분된다.
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만화는 뚜렷이 성인과 청소년용으로 구분됐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아이들 만화와는 다른 이 세대 어른들을 위한 만화 걸작들이 마치 모처럼 만화를 찾는 이들을 위한 ‘입문 필수’ 작품처럼 자리잡고 있다. 90년대의 작품들 가운데 양영순씨의 <누들 누드> 등의 한국만화와 <시마과장> <마스터 키튼> 등의 작품성도 뛰어나고 내용도 성인취향인 일본만화들이 입소문처럼 어른을 위한 만화로 인정받으며 만화 초보 어른들의 필독코스로 꼽히고 있다.
만화와 함께 ‘그 시절’로 떠나는 여행
그러면 이제 3∼4년 지난 이들 만화의 뒤를 잇는 최신판 ‘어른만화’의 걸작들은 어떤 것들일까. 만화를 자주 보지 않는 30대 이상의 어른 만화팬들에겐 한달에 수백종씩 쏟아지는 만화들 가운데 어른에게 맞는 게 어떤 것인지 알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많은 만화팬들이 공인하는 이른바 ‘정석’들이 있다. 올 가을, 만화에 빠져 한번 키득거려보고 싶은 어른들을 위해 가장 최근의 주요작들을 골라봤다. 만화에 관한한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평론가들과 주요 만화잡지 편집장 등 만화도사 여섯명이 추천에 참여했다.
30대 이상 만화팬들에겐 마치 가수 조용필씨와 같은 위상의 작가 허영만씨가 최근 내놓은 <타짜>는 오랜만에 선보이는 정통 국산 성인만화다. <48+1>이라는 걸출한 도박만화를 선보였던 허씨가 10여년 만에 다시 도전한 도박만화로, 속고 속이는 화투판의 비정한 생리를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담아 술술 풀어나간다. 연출력에 관한한 국내 최정상급 작가인 허씨 특유의 역동적인 묘사가 마치 ‘내 돈을 잃는’ 듯 실감나게 도박판을 그린다.
60∼70년대의 넉넉하진 않았어도 마음만은 풍성했던 시절을 반추하고 싶은 독자라면 한국만화계에서 손꼽히는 작가주의 만화가 박흥용씨의 <내 파란 세이버>가 괜찮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한 소년이 싸이클 선수로 커나가는 과정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이 만화는 시대 배경이 60년대와 70년대가 교차하는 시점이어서 과거의 향수를 부르는 맛과 함께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것 같은 운치가 매력적이다.
아예 눈높이를 낮춰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을 맛보고 싶다면 이희재씨가 그림 그리고 위기철씨가 글을 쓴 <나 어릴 적에>가 어떨까. 산뜻한 색깔에 이희재씨의 정감어린 펜선이 60년대 시골 고향을 그대로 잡아낸다. 다 보고 나서 자녀들과 바꿔보기에도 좋을 법한 만화이다.
출산과 육아문제도 녹여낸다
아예 방바닥을 굴러다니며 그저 웃는 즐거운 만화로는 마재권씨의 <돌격! 앞으로>가 제격. 남자들의 영원한 안줏거리인 ‘군대이야기’를 철저한 명랑풍으로 코믹하게 꾸민 만화다. “각 잡고 똥 눠!”라고 명령하는 고참 병장과 뺀질이 신참 이등병에게 매번 당하기만 하는 불쌍한 상병의 이야기가 때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당하게 이어진다.
반대로 아주 진지한 만화를 보고 싶다면 90년대 한국만화계 최고의 신인으로 꼽히는 윤태호씨의 <야후>가 좋은 볼거리다. 과거 성을 소재로한 코미디만화를 그렸던 그 윤태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서사적인 내용으로 변신했다. 허무한 인생을 폭력과 방황으로 채우는 한 청년을 통해 사회와 역사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제작이다.
남성용 만화와는 확연히 정서가 다른 순정쪽에서는 한혜연씨의 <엠 노엘>과 순정만화계의 대모 황미나씨의 <이씨네집 이야기>이 요즘 최고 인기작들이다. <엠 노엘>은 순정으로선 보기드문 형사 미스터리물로 예쁜 그림에도 흡입력이 강하다. 액션물이면서도 사람사는 세상에서 느끼는 정서와 사랑을 녹이고 있는 게 특징. 반면 <이씨네…>는 시트콤처럼 대가족의 좌충우돌 에피소드속에서 뽑아내는 웃음이 만만찮다.
30대 이상에게는 절대절명의 관심사인 ‘육아’를 주제로 한 만화들은 남의 집을 엿보면서 동시에 한수 배우는 것이 재미. 그동안 김지윤씨의 <마이 퍼니 베이비>라는 걸출한 육아만화 이후 여성 어른 독자를 사로잡는 눈에 띄는 작품이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래도 수작은 나오기 마련. 한쌍의 부부가 연애를 시작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야기를 누구나 맞장구치게 집어내는 홍승우씨의 <비빔툰>은 요즘 단연 ‘뜨는’ 육아만화로 꼽힌다. 여성만의 고통이자 환희인 출산을 남성들에게 이해시켜줄 법한 <생명의 그릇> 역시 30대들이 읽어볼만한 만화로 꼽힌다.
만화적인 야한 재미와 폭력의 미학은 아무래도 우리 만화보다는 일본만화들을 찾아보는 게 빠르다. 일본 성인만화 최고의 인기작가 이케가미 료이치의 <크라잉 프리맨>은 발표한 지 20년이 지나 뒤늦게 국내에 소개돼 만화팬들을 열광시켰던 작품. 적당한 잔인함과 선정성에, 다소 황당하지만 철저히 남성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 이 작품의 독특한 매력. 헐리웃과 홍콩에서 각각 영화로 만들기도 했던 히트작이다.
90년대 일본만화를 대표하는 미우라 겐타로의 <베르세르크> 역시 ‘피의 미학’이라고 부를 만큼 처절한 격투와 환상적인 이야기로 승부하는 컬트 계열의 만화. 단, 이런 풍을 싫어하면 절대 흥미를 느낄 수 없어 ‘마니아용’이란 단서가 붙는다.
사라진 명랑만화를 다시 찾아
이제는 사라진 ‘명랑만화’의 맛을 다시 되새김질하고자 하면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진다. 귀여운 그림체로 잔잔하면서도 쏠쏠한 재미를 더하는 게 장기인 김진태씨의 <체리 체리 고고>는 막무가내식 우악스런 한 여성의 직장생활기를 온갖 비유와 패러디로 버무려놓았다. 정연식씨의 <또디>는 웃음과 함께 삶의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통찰력이 숨어 있는 만화로 추천받았다.
이 밖에 추천받은 30대 이상을 위한 비교적 최신 주요 만화로는 육상이란 드문 주제를 실감나게 그린 스포츠만화 <스타트>와,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려는 가족이야기 <일생>, 한국적 붓선으로 유명한 백성민씨의 <삐리>, 구중궁궐 속 성문화를 소재로 한 <내시>, 국내에 처음 선보인 유고 출신 작가 엥키 빌랄의 <니코폴> 등이 전문가들의 좋은 평을 들었다.
추천해주신 분
김이랑 만화평론가
백정숙 만화평론가
박인하 만화평론가
김현국 만화잡지 <나인> 편집장
박성식 만화잡지 <부킹> 편집장
이재식 인터넷만화사이트 <코믹스투데이> 편집장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이민아 기자mina@hani.co.kr

(사진/구중궁궐속 성문화를 소재로 한 <내시> )

(사진/허영만씨의 <타짜> )

(사진/홍승우씨의 <비빔툰> )

(사진/황미나씨의 <이씨네집이야기> )
백정숙 만화평론가
박인하 만화평론가
김현국 만화잡지 <나인> 편집장
박성식 만화잡지 <부킹> 편집장
이재식 인터넷만화사이트 <코믹스투데이> 편집장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이민아 기자mi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