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오메 신랑도 서울 간디 나까정 한양 간다고 나올랑께 파프리카가 안 잊혀서 죽겄시야.” 고2 아들이 인터넷에서 사준 화려한 귀고리를 덜렁이며 아침 8시 약속시간보다 여지없이 늦게 나타난 영란씨, 출발부터 엉덩이에 근심을 무겁게 매단다.
“긍께 여자들은 자고 오는 것도 아닌디, 하루 빼려면 거치적거리는 것이 많아야.” 밤새워 닭 출하하고 일꾼들 밥만 해주고 뛰어나왔다는 부회장님도 한마디 거든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20주년 성년잔치를 두고 “이번 참에는 꼭 갈 것이여”라고 이 악물던 성미씨는 몸이 아파 못 오고 “글쎄, 내일 하지감자 캐게 될지 모르겠어서…” 말꼬리를 흐리며 확답 못하던 봉정씨는 새벽 댓바람부터 일꾼들 실어다 주고 기언치 달려나왔다.
철석같이 약속하고도 밤12시나 되어서 “아이 때문에, 남편 때문에, 집안에 일이 생겨서” 등등의 이유로 30% 불참은 미리 예상해야 하는 것이 여성단체 실무자들의 고충이다.
영광은 시골이고 보니 기후변화까지 고려해야 한다. 새벽부터 비가 살짝 오다가 차가 출발하여 2시간 이후에 그치면 그날 인원동원은 성공이다.
우리보다 1시간이나 일찍 서둘러야 했을 목포 회원들과 한차를 타고 인사 나누다 보니, 모두들 한바탕 아침전쟁 끝에 서울행 차를 얻어탈 수 있었던 넋두리들로 차안이 두런거린다.
아침도 부실하게 먹은데다 행사시간 맞추느라 점심 굶어도 에너지 넘쳐나는 전국의 여성운동가들과 만나는 재미에 푹 빠지고 안혜경, 윤도현 밴드 공연 때는 콘서트장 못지않은 열기를 뿜어내는 여성들의 모습 보는 게 재미있다.
어느새 집안일은 잊은 듯 하루 나들이의 막바지인 차안에서는 그동안 숨겨두었던 끼들이 터져나오고 오랜만에 목이 쉬도록 웃어젖힌다. 농사일과 혈연 중심의 가족공동체에 묻혀 사는 게 시들했던 우리 회원들, 오늘만큼은 물 만난 고기 같이 거침이 없다. 흙 속에 묻혀 있는 보물을 캐는 것처럼 반짝이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다. 오늘도 보물 예닐곱명 캐고 보니 뽀땃(뿌듯)하다. 봉정씨 하지감자밭에서 며칠 뒤 모여 감자 캐기로 약속을 하고 나니 영광땅에 도착한다. “영광에 들어온께 맘이 푸근해진당께. 에고 우리집이 질(제일)이여”를 외치며 군남면, 법성면, 대마면, 영광읍, 백수읍에 있는 제각각의 집을 향해 조급한 발걸음을 놓는다.
아침밥 먹던 유치원 다니는 아들놈 숟가락도 빼기 전에 뛰어나왔다던 순영씨, 아이들만 두고온 걱정이 그제야 몰려와 제일 먼저 내달리고, 저마다 식구들 불러내어 제집들로 돌아간다.
오늘 하루 귀한 품 내서 다녀온 서울 나들이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까맣게 내려앉은 밤하늘이 반짝이는 별들로 눈부시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일러스트레이션 | 경연미

어느새 집안일은 잊은 듯 하루 나들이의 막바지인 차안에서는 그동안 숨겨두었던 끼들이 터져나오고 오랜만에 목이 쉬도록 웃어젖힌다. 농사일과 혈연 중심의 가족공동체에 묻혀 사는 게 시들했던 우리 회원들, 오늘만큼은 물 만난 고기 같이 거침이 없다. 흙 속에 묻혀 있는 보물을 캐는 것처럼 반짝이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다. 오늘도 보물 예닐곱명 캐고 보니 뽀땃(뿌듯)하다. 봉정씨 하지감자밭에서 며칠 뒤 모여 감자 캐기로 약속을 하고 나니 영광땅에 도착한다. “영광에 들어온께 맘이 푸근해진당께. 에고 우리집이 질(제일)이여”를 외치며 군남면, 법성면, 대마면, 영광읍, 백수읍에 있는 제각각의 집을 향해 조급한 발걸음을 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