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미·발효미·손맛까지 다양한 맛의 세계… 손으로 찢은 족발이 일품인 ‘동광식당’
‘김학민의 음식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이번호로 꼭 1년이 된다. 처음에는 독자들의 반응이 별로 없었으나 요즈음은 제법 많은 의견이 메일로 들어온다. 다양한 의견에 성의껏 답변을 드리고 있지만 이 자리를 빌려 독자들께 ‘면피’ 삼아 몇 마디 양해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첫째, ‘김학민의 음식이야기’는 특정한 식당을 소개하거나 특별한 음식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하는 곳의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보다는 특정한 식당이나 음식의 역사·문화적 배경, 그리고 이에 사회·경제적으로 얽힌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잘하는 식당, 맛있는 음식에 대한 정보를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가끔 좀 허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는 맛의 보편성 문제다. 맛은 어떠한 물질을 입에 넣었을 때 느끼는 감각이다. 넓은 의미의 맛은 감각적·감상적 관념을 표현하는 언어였으나 감상적인 정서는 ‘멋’으로 분화되고, ‘맛’은 감각적 경험, 특히 식품의 감각을 표현하는 말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음식의 맛은 여러 가지가 복합된 것이므로 과학적으로 정확히 그 기준치를 세우기가 쉽지 않다. 또 식습관, 풍습, 편견, 정서 및 생리적 상태에 따라 맛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맛에 대한 느낌은 개인차가 크다. 곧 맛은 일부는 감각적이지만, 다른 일부는 주관적인 것이다.
음식의 맛은 몇 가지 기본 맛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단맛·신맛·짠맛·쓴맛으로 이를 4원미라 하는데, 이 네 가지 맛은 각기 특성 있는 맛을 가지면서 서로 복합되어 여러 가지 다른 맛을 만들어낸다. 동양에서는 이 네 가지 맛에 매운맛을 더하여 5미를 기본 맛이라 한다. 단맛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 곤충이 가장 강하게 원초적 욕구와 집착을 갖는 맛이다. 신맛은 향기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본래의 맛과 어울려 식품의 맛을 좋게 하고 식욕을 증진시킨다. 쓴맛은 심하면 불쾌감을 느끼게 하지만 적당히 희석되면 입맛을 돋우고, 다른 맛에 혼합되어 독특한 풍미를 형성한다. 인간이 가장 집착하는 것은 단맛이지만, 짠맛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맛이다. 그리고 매운맛은 순수한 미각이라기보다는 생리적인 통각이라 할 수 있다. 즉, 미각신경을 강하게 자극함으로써 느끼는 기계적 현상이다.
이 다섯 가지 맛 이외에도 떫은 맛, 구수한 맛, 아린 맛 등 음식의 복합적인 맛에 크게 영향을 주는 맛이 더 있다. 또 “잊혀지지 않고 늘 마음에 감돌다”라는 뜻의 ‘감치다’ 에서 온 감칠맛도 있다. 감칠맛은 특정한 맛이 아니라 4원미나 5미가 향기 등과 잘 조화된 맛으로, 여러 가지 정미성분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복잡하고 미묘하면서 구수한 짠맛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맛은 5미 이외에 발효미를 더 보태서 논해야 한다. 장·술·김치·젓갈 등과 같이 단순한 재료의 맛 이외에 발효와 분해 과정에서 생긴 다양하고 독특한 풍미가 지방과 각 가정의 개성을 나타낸다.
맛에 대해 대강 읊어보았는데, 하나 빠진 게 있다. 무엇일까? 손맛이다. 얼마 전 TV에서 “손에 체온이 있어서 음식 재료들을 손으로 버무릴 때마다 체온이 전해져 음식이 더 맛있어진다”며 손맛을 그럴듯하게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견강부회의 느낌이다. 그보다는 한톨의 곡식이라도 버리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음식물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전통에서 온 ‘정성’ 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우리라.
얼마 전 강원도 동해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양성평등교육을 하러 가는 아내를 ‘수행한’ 길에 친구 김영준군이 소개해준 정선읍 ‘동광식당’(033-563-3100)에 들렀다. 송계월(59)씨가 20여년 전부터 운영해온 이 집은 엄나무·칡뿌리·황기·오갈피를 넣어 삶은 돼지족발이 유명한데, 다른 지방의 족발집들과는 달리 ‘칼맛’ 이 아니라 ‘손맛’을 보여준다. 곧 채반에 수북이 쌓아놓은 식어서 굳어진 족발을 칼로 썩썩 썰어주는 것이 아니라 솥에서 바로 꺼내 굳기 전에 먹기 좋게 손으로 찢어 내오기 때문에 육질이 아주 부드럽다. 또 이 집의 칼국수는 면발이 굵고 길어 후루룩 면발을 빨아들일 때 콧등을 친다 하여 콧등치기국수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토속된장으로 끓이는 그 국물은 정말로 ‘감칠맛’이 난다.

김학민 |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맛에 대해 대강 읊어보았는데, 하나 빠진 게 있다. 무엇일까? 손맛이다. 얼마 전 TV에서 “손에 체온이 있어서 음식 재료들을 손으로 버무릴 때마다 체온이 전해져 음식이 더 맛있어진다”며 손맛을 그럴듯하게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견강부회의 느낌이다. 그보다는 한톨의 곡식이라도 버리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음식물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전통에서 온 ‘정성’ 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우리라.

사진/ ‘동광식당’은 다른 지방의 족발집들과 달리 ‘칼맛’이 아니라 ‘손맛’을 보여준다. 토속 된장으로 끓이는 칼국수 국물은 정말로 ‘감칠맛’이 난다.

김학민 |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