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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살인지뢰 꼼짝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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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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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중에 숨겨진 지뢰를 탐지하는 신기술들… 꿀벌 수색대에서 원자력 기술까지 총동원

경기도 연천 등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해마다 여름이면 두려움에 떤다. 논밭에서 장마철의 살인마 지뢰를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군인들이 비무장지대 정찰 중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무차별적인 살상무기로 악마적 위력을 드러내는 지뢰가 언제 진면모를 보일지 모르는 탓이다. 봄나물을 캐러 입산금지 지역으로 들어갔던 주민의 발목이 절단되는가 하면 주검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지뢰사고가 산이나 개울가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홍수로 인해 군부대 주변의 지뢰지대에 매설된 지뢰가 유실돼 논밭으로 흘러들어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지뢰가 떠도는 장마철이 두려운 사람들. 이들에게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구상에 매설된 7천만여개의 지뢰. 이를 둘러싼 ‘숨바꼭질’은 그야말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2만6천여명이 지뢰 폭발사고에 희생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대적인 유실지뢰 제거 작업을 벌여도 속수무책이다. 아무리 방호벽을 쌓고 그물을 쳐도 지뢰가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지뢰로 인한 엄청난 희생이 지속되는 것은 지뢰를 탐지하는 기술이 여전히 원시적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지뢰제거 방법은 휴대용 금속탐지기와 훈련받은 군견이 고작이다. 이에 비해 지뢰는 갈수록 첨단화되고 있다. 예컨대 플라스틱 지뢰(M1)는 작고 가벼워서 몇백km를 떠내려가도 탐지하기 힘들다. 이런 탓에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이나 부산 태종대 등지에 지뢰가 수두룩해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장마철의 살인마… 전통 장비 속수무책


그렇다면 숨겨진 지뢰를 찾는 특단의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동안 제안된 방법 가운데 가장 독특한 것은 꿀벌을 지뢰탐지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미국 몬타나대학교 곤충학자 제리 브로먼셴크 박사팀이 고안한 것으로 국방고등연구계획청(DARPA)의 지원을 받아 꿀벌의 등에 조그만 라디오 주파수 태그를 매달아 공중에 날아다니는 폭발물의 미세분자를 감지해 원격지의 지휘소로 자료를 보내는 방법이다. 지뢰를 탐지하는 꿀벌에 곡식의 낟알보다 작은 크기의 전파추적장치를 부착한다. 이 판독기는 꿀벌이 낮에 화분 채취를 위해 외출하면 작동을 시작해 각각의 벌에 있는 꼬리표를 스캔한 뒤 벌의 동정코드와 비행방향 시간 등에 관한 자료를 모뎀을 통해 벌통 주변의 중앙 컴퓨터로 전송한다.

사진/ 지뢰를 찾는 새로운 탐지병들. 꿀벌이 화학물질검출실험을 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꿀벌을 이용한 탐지장치는 ‘생체혼성물’(Biohybrids)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생물체의 자연적 능력에 인간의 기술을 적용한 이 방법은 지뢰 탐지에서 사람의 희생을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날아다니는 먼지 걸레’ 구실을 하는 꿀벌들이 고도의 훈련을 받으면 화재지역이나 전투지역에 있는 지뢰들을 추적하거나 폭발 위험이 있는 물질을 탐색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널리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꿀벌들의 장거리 이동에 한계가 있었다. 일정한 거리만을 비행하는 탓에 꿀벌 지휘소(벌통)를 수시로 옮겨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뢰지대에서 먹이를 구하는 것도 어려움이 따랐다. 인위적으로 꿀벌의 서식환경을 조성해야 지뢰탐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에는 첨단과학 분야의 신기술이 지뢰탐지에 적용되고 있다. 사실 전통적인 지뢰탐지기는 폭발물인 TNT를 감지하는 기술이 아니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폭발물을 찾는 게 아니라 지뢰를 구성하고 있는 금속을 탐지하는 기구에 가까운 것이다. 이에 비해 핵자기공명 등을 이용한 최신의 방법은 폭발물에 많이 포함된 질소원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핵사극자공명’(NQR) 같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다. 핵사극자공명은 폭약을 원재료의 형태에서 탐지하는 기법으로 센서들을 연결해 사용한다. 현재 유럽에서는 원자력 탐사 시스템이 개발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원 아래 크로아티아의 지뢰지대 약 7천㎢에 대한 현장 테스트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 이동형 중성자 발생장치
지하에 매설된 폭발물을 탐지하는 데는 원자력 기술도 한몫 거들고 있다. 중성자 조사에 의한 분석법이 활용되는 것이다. 여기에 쓰이는 중성자는 전하를 띠지 않는다. 그래서 낮은 에너지를 가진 중성자라도 땅 속 깊이 파고들어간다. 고속중성자는 물질과 작용해 원자를 튀게 하고 저속중성자는 원자에 흡수된다. 어떤 경우든 중성자에 의해 원자는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감마선을 방출하게 된다. 지뢰탐사에 사용되는 중성자 분석법은 물질과의 상호작용에서 방출되는 특정 감마선을 측정해 땅 속에 어떤 물질이 존재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중성자와 반응해 방출되는 특정 감마선은 대부분의 원소들에 대해 이미 알려져 있다.

이런 중성자 분석법은 모든 폭탄이 질소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용한다. 질소는 열중성자를 흡수해 10.8MeV의 감마선을 방출한다. 이는 자연상태에서 발생되는 감마선 중에서 가장 높은 감마선이므로 폭탄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지뢰탐사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중성자분석법은 열중성자분석법(TNA)과 펄스중성자분석법(PFTNA)이 있다. TNA는 중성자 발생을 위해 방사성물질인 ‘캘리포늄-252’를 사용하는 것이고, PFTNA는 전기적으로 중성자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이용해 10마이크로초 동안 중성자를 발생시켜 100마이크로초 동안 방출되는 감마선을 측정한다. 전기적 중성자 발생장치는 방사성물질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안전하다. 국내외의 기업에서 이동형 중성자 발생장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수중에 흔적만 있어도 찾아내는 폴리머

지뢰나 폭탄이 육지에서만 살인적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바다에도 폭발되지 않은 무기들이 곳곳에 있다. 수중에 있는 TNT와 피크르산(picric acid) 등의 폭발물 탐지에는 ‘나노전선’(nanowire)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손홍래 박사가 사람 머리카락 지름보다 2천배나 가는 폴리머를 개발한 것이다. 이 폴리머는 폭발물 흔적에 매우 민감해 공기와 물에서 안정적으로 반응한다. 바다에서 스프레이로 칠하듯이 표면에 뿌리기만 하면 TNT가 있을 경우 폴리머의 녹색 광발광이 꺼지는 식으로 작동한다. 바다에서 TNT는 10억분의 50, 피크르산은 10억분의 6 정밀도 수준으로 탐지할 수 있다. 공기 중이라면 정밀도가 더욱 높아져 10억분의 1 수준에서 TNT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첨단탐지 기술이 등장해도 폭발물의 위협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지뢰가 수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폭발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때 어떤 식으로든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지난 6월14일 한반도의 대동맥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됐지만 완전개통까지 수천개의 지뢰를 제거해야 한다. 요즘 수목이 적은 지역에서 리노와 마인브레이커가, 구릉이나 산악지역에서는 바퀴가 달린 MK4 등이 활용되고 있다. 지금으로선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어도 지뢰의 완전제거를 장담하기는 힘들다. 하천이나 숲 등지에 잠입해 탐지장비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지뢰들도 수두룩하다. 앞으로 첨단 탐지장비들이 현장에 배치되더라도 지구상에서 전쟁의 기운이 남아 있는 한 지뢰와의 숨바꼭질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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