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호 홈런 기록으로 한국 야구사를 다시 쓴 이승엽… “대기록에 결함 있다”는 시각도
지난 6월22일 밤 대구에서 국내 야구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 수립됐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스의 간판 타자 이승엽(27)이 ‘세계 최연소 300홈런’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승엽은 이날 SK 와이번스의 투수들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포함한 2개의 홈런을 뽑아내 26살10개월 만에 300홈런 고지를 돌파했다. 이는 일본의 오 사다하루(왕정치·요미우리 자이언츠)가 1967년에 세운 종전 기록(27살3개월)을 5개월이나 앞당긴 기록이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평균 연봉 2500만달러(약 300억원)의 ‘슈퍼스타’ 알렉스 로드리게스(텍사스 레인저스)가 27살8개월 만에 300홈런을 달성했다. 국내 야구보다 한수 높은 미국과 일본의 기록을 깨뜨렸으니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181개를 대구구장에서 쳐내
이런 점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국내 언론이 ‘호들갑’을 떤 것은 당연했다. 프로 스포츠가 흥행에 성공하려면 ‘스타’와 ‘호재’가 있어야 하는데, 이승엽은 이런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 이승엽의 300호 홈런은 오랫동안 ‘호재’ 가뭄에 시달렸던 국내 프로야구의 갈증을 단번에 해소시켰다. 스포츠 신문을 비롯한 국내 언론들은 이승엽이 290홈런을 쳤을 때부터 연일 ‘이승엽 찬가’를 불러댔다. 특히 프로야구의 흥행이 판매부수와 직결되는 스포츠 신문은 이승엽 자신보다 300홈런을 더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이승엽의 기록이 진정 대기록인가’라는 질문에 전문가들의 대답은 엇갈린다. 이승엽의 기록이 수치상으로는 틀림없는 세계 신기록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많은 결함이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먼저 미국과 일본에 비해 한수 낮은 국내 투수들을 상대로 뽑아낸 기록을 미·일과 같이 비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평균 시속이 150km를 훌쩍 뛰어넘는 강속구 투수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또 국내 야구장이 미국보다 크기가 작은 것도 이승엽의 기록을 깎아내리는 요소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의 크기는 대부분 국내 최대 구장인 잠실야구장과 비슷하다. 잠실구장은 운동장의 크기가 좌우 100m, 가운데 125m, 담장 높이는 2.5m다. 그런데 이승엽은 301개 홈런 중 절반 이상인 181개를 잠실보다 훨씬 작은 대구구장에서 기록했다. 대구구장은 좌우 95m, 가운데 117m, 담장 높이가 3.0m다. 이승엽은 잠실에서는 불과 28개를 쳐냈을 뿐이다. 22일 기록한 300호 홈런도 대구구장의 오른쪽 담장을 살짝 넘어갔다. 잠실구장이었다면 홈런이 안 됐을 수도 있는 타구다. 다시 말하면 이승엽의 301개 홈런 중에는 ‘허수’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이승엽의 홈런 평균 비거리(공이 날아간 거리)가 117m이기 때문에 ‘허수’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것이다. 117m면 잠실구장의 가운데 담장에는 못 미치지만 좌우 담장은 충분히 넘길 수 있는 거리다. 또 미국(162경기)과 일본(140경기)에 비해 경기 수(국내 프로야구는 133경기)가 적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선동열(KBO 홍보위원)과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 김병현(보스턴 레드삭스), 서재응(뉴욕 메츠) 등에게서 볼 수 있듯, 메이저리그 투수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우수한 투수들이 국내에서도 많이 배출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승엽의 300홈런 기록의 의미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올 시즌을 끝으로 미국 무대에 진출하려는 이승엽에게 확실한 ‘수식어’가 붙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실력 못지않게 흥행 요소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1년 시애틀에 입단한 스즈키 이치로나, 올 시즌 뉴욕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은 마쓰이 히데키도 일본리그에서 화려한 기록을 세워 빅리그에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스즈키는 일본리그 7년 연속 타격왕, 올스타 선정, 골든글러브에 뽑혔고, 마쓰이는 7년 연속 30홈런을 기록해 높은 몸값으로 미국에 입성했다. 전문가들은 이승엽의 경우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최연소 홈런 기록을 깼기 때문에 더 많은 몸값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한다. 이미 미국 스카우터들 사이에서는 이승엽의 기록 달성 여부가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이승엽의 메이저리그 진출 성공 여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박노준 SBS 해설위원은 “이승엽 선수가 훌륭한 선수임에 틀림없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홈런 타자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미국 투수들은 손가락 길이가 국내 선수보다 더 길기 때문에 같은 속도라도 공의 변화가 더 심하다. 따라서 이승엽처럼 ‘한방’을 노리는 타자들이 적응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박 위원은 “이치로처럼 공을 맞히는 데 능숙한 타자들은 잘 적응할 수 있지만, 마쓰이처럼 한방 노리는 타자들은 적응하기가 어렵다”며 “이승엽도 정교함과 힘을 더 보강하지 않으면 고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매년 30개 이상의 홈런을 쳐냈던 마쓰이는 23일 현재 7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부진에 빠져 있다.
이승엽은 애초 투수에 더 소질이 있었다. 대구 경상중과 경북고를 거치며 투수와 4번타자를 도맡았던 그는 1994년 12월 당시 고졸 역대 최고 몸값(계약금 1억3200만원)으로 삼성에 입단했다. 이승엽은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삼성의 좌완 에이스”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우용득 감독의 권유로 타자로 전향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이승엽은 데뷔 3년 만인 97년 홈런·타점·최다안타의 3개 타이틀을 독식하면서 스물한살에 한국프로야구 최연소 MVP를 거머쥐는 등 4차례 MVP에 올랐고, 98년에는 54개의 홈런을 쳐내 아시아 신기록(왕정치가 기록한 55개)에 바짝 다가가기도 했다.
이승엽이 올해 아시아 신기록을 깨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63경기 만에 33개를 쳐낸 지금의 패이스대로라면 올 시즌 60개를 무난히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시아에 남기를 거부한다. 그는 세계 신기록을 세운 뒤 “더 큰 무대로 가고 싶다”며 사자후를 토했다. 아마 300호 홈런을 날린 뒤 그라운드를 도는 순간, 그는 이미 머리 속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사진/ 300호 홈런의 순간. 26살10개월 만에 뽑아낸 그의 기록은 일본의 오 사다하루(왕정치·요미우리 자이언츠)가 1967년에 세운 종전 기록을 5개월이나 앞당겼다.
하지만 ‘이승엽의 기록이 진정 대기록인가’라는 질문에 전문가들의 대답은 엇갈린다. 이승엽의 기록이 수치상으로는 틀림없는 세계 신기록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많은 결함이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먼저 미국과 일본에 비해 한수 낮은 국내 투수들을 상대로 뽑아낸 기록을 미·일과 같이 비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평균 시속이 150km를 훌쩍 뛰어넘는 강속구 투수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또 국내 야구장이 미국보다 크기가 작은 것도 이승엽의 기록을 깎아내리는 요소다.


사진/ 내년 시즌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이승엽. 세계신기록을 작성했지만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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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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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76년 8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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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교 |
경북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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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
2002년 1월 6일 · 부인 이송정(22)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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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체중 |
183cm·85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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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시력 |
B형·양안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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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체격 |
가슴둘레(112cm)·팔뚝(34cm)·알통(4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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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
음악감상·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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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경력 |
93년 청룡기 우수투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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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