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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박해일] ‘박해일스러움’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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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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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사이도 아니면서 유난히 버벅대는 그, 그러면서도 할말은 다하더라

영화 <살인의 추억>은 내가 본 어떤 한국영화보다도 배우들의 연기가 빛나는 영화였다. (그게 결국 감독의 역량일지라도 말이다.) 이미 최고의 연기력을 인정받은 송강호의 연기 이외에도 연극배우 출신인 수많은 조·단역 배우들의 사실적 연기는 이 영화의 무서운 힘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영화의 끝 부분에 15분가량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매서운 눈빛과 무거운 중량감으로 스크린을 꽉 채우고 마치 연쇄살인의 범인이 실제로 출연한 듯한 소름끼침을 느끼게 한 신인 배우 박해일의 얼굴을 되새김질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거다. 실로 그 느낌은 영화 <세븐>에서 케빈 스페이시를 봤을 때의 충격과 맞먹었다.

연극의 나의 힘

사진/ 박해일(김진수 기자)
박해일을 만나러간다 하니 따라나서겠다는 여인들이 한두명이 아니었다. 그를 만나자마자 여성팬들의 성화(?)를 떨구고 오느라 힘들었다고 너스레를 떠니 난생 처음 있는 일이라는 듯이 쑥스러워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대학로 연극인 출신이다. 아니 지금도 그는 대학로가 훨씬 더 편한 배우다. 근황을 물으니 <질투는 나의 힘> 촬영 끝나고 연극을 한편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한참 얘길 나누다가 근황이 그거밖에 없냐는 내 추궁에 모기만한 목소리로 CF도 하나 들어왔다고 고백한다. 안 바쁜 척을 했지만 그는 분명 뜨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뜨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지리한 과정이 필요한 연극을 했다는 건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와 함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찍을 때만 해도 극중 성우처럼 힘없는 배우였는데 인터뷰 섭외도 매니저를 통해서 해야 하고 그냥 수다나 떨자고 만나는 자리인 이 자리에도 매니저와 함께 나타나니 내가 다 감개가 무량해진다. 매니저 있는 생활의 가장 큰 변화가 뭐냐 물었다.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 하는 거라는 연극쟁이다운 대답을 한다. 그러나 이런 작은 불평은 정말 배부른 투정이렷다. 암, 그렇고 말고.

초심을 지켜내는 데에 가장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느냐니까 “하던 대로...무난하게...무리없이...유지는 하되 머무르지 않고...” 하며 더듬더듬 어렵게 대답을 한다. 원래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나는 사이도 아닌데 유난히 버벅댄다 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대학입시의 면접 보는 학생처럼 진땀을 빼며 대답하는 것 같아 이유를 물으니 인터뷰를 많이 하긴 했지만 연예잡지나 영화담당기자가 아닌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는 처음이라 아무리 내가 ‘지혜누나’라도 긴장된다는 거다. (짜식, 촌스럽긴∼)

그러면서 고백하는 얘기가 날 만나러 오는 길에 스크린쿼터 관련 영화인 모임에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좀 나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선약이 있어서 못 간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선약이 없었어도 아마 안 갔을 거라고, 이유는 그런 자리에 나가기엔 아직 ‘공부’가 모자라기 때문이고 그런 자신이 조금 부끄럽다는 거다. 참 솔직한 그가 예뻐보였다. ‘공부’야 이제부터 하면 되지 뭐.

말을 조리 있게 하진 못하지만 “무엇 무엇의 정점에서…”라거나 “사뭇 무엇 무엇하다”는 둥의 독특한 어법을 보여주는 그의 태도는 시종일관 느릿느릿하고 진지했다. 애늙은이 같다 했더니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면서 아마 어렸을 때 연극판엘 들어와 술자리에서 언제나 막내로 선배들하고만 지내서 그런 거 같다고 한다. 지금도 또래들보단 30대들하고 있는 게 더 편하다나?

사진/ 대학입시 면접보는 학생처럼 진땀을 빼며 대답한 박해일씨. 시종일관 느릿느릿하고 진지했다.(김진수 기자)

말 안 듣지, 공부 못하지, 사고나 치지…

그의 10대와 20대 초반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처럼 무명밴드의 보컬 겸 기타쟁이였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매일 기타들고 다녀서 부모님 속을 꽤나 썩혀 드렸다.(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이 딴따라가 되는 걸 왜 그리 싫어하는 걸까?) 그러다 수능 전날 수능과 상관없는 한 친구가 새로 산 오토바이를 자랑하길래 잠깐만 몰아본다고 까불다가 엉덩이뼈와 허벅지뼈가 박살이 나는 중상을 입는 사고를 친다. 당연히 재수를 했고 겨우 들어간 대학도 기타친다고 4번이나 휴학을 하다 잘렸다. 그후, 사고 때의 상처가 말썽을 일으키는 와중에 신검이 나와서 그는 ‘신의 아들’이 된다. “새옹지마네?” 했더니 그때 생각하면 부모님 뵐 낯이 없었다고 한다. 말 안 듣지, 공부 못하지, 사고나 치고 다니지... 넉넉지 못한 형편에 군대라도 가줘야 할텐데 하는 일 없이 방구석을 지켜드렸다는 거다.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당 5만원짜리인 꽤 힘든 ‘노가다’도 했었다. 그러다가 아르바이트의 하나로 아동극무대에 잠시 섰었는데 ‘오호, 이것 봐라’ 코흘리개들 앞인데도 ‘관객’ 앞에 서는 쾌감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기타로 무대 설 생각만 하던 얼치기 딴따라 박해일의 배우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무대 위는 무섭지만 무대 뒤 술자리가 재밌어서’ 5여년을 연극을 했지만 부모님은 단 한번도 모시지 못했다. 속상해 하실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영화판으로 뽑혀()간 첫 작품인 <와이키키 브라더스> 때 처음으로 부모님이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셨다. 기타친다고 속 썩혀 드렸는데 하필이면 기타쟁이로 나오는 걸 보여드리다니... 하지만 영화를 보시고 난 아버님께선 “집에서 속 썩히던 게 도움이 됐구나” 하시며 흐믓해 하시더란다. 부모에게 언제나 인정만 받아온 자식들은 이런 게 어떤 기분인지 모를 거다.

좋은 연기란 뭐라고 생각하느냐 했더니 아직 찾고 있는 중이란다. 하지만 그 방법의 이론을 백 개를 외우고 익힌다 한들 ‘상황’에 들어가면 느낌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느낌’을 많이 믿는 편이란다. 그리고 <질투는 나의 힘>에서의 모습이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많이 비슷하다 했더니 어차피 무슨 역을 하던 ‘박해일스러움’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성격배우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 한다.(버벅대면서도 할 말은 다한다.)

청춘예찬, 그리고 감독예찬

같이 작업할 때는 들을 기회가 없었기에 물어봤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엔 어떤 경로로 출연하게 됐는가를... 화려한 상업영화가 아니라 떠들썩하게 오디션을 치른 것도 아니고 박해일 성격상 ‘개인플레이’로 로비를 하고 다녔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답인즉슨, 작품이 좋다고 입소문이 났던 연극 ‘청춘예찬’에 출연하고 있을 때(그는 이 연극으로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임순례 감독이 객석에 있었다는 거다. 참 고무적인 출연경로가 아닐 수 없다. 난 이렇게 영화감독들이 연극공연장 객석에 앉아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맘이 풍요로와지는 걸 느낀다. 잠시 후 더 즐거운 얘길 들었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과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 역시 이 연극의 관객이었다는 게 아닌가. 아! 이 어찌 멋진 감독들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영화판에선 한국영화의 배우층이 너무 얇다는 탄식이 나온다. 그러나 그건 ‘장사’가 될 스타들에 한한 얘기다. 좋은 영화를 찍은 감독들의 공통점 중 한 가지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배우를 찾는다는 데 있다. 지금도 대학로에는 수많은 ‘박해일’들이 치열하게 자신의 연기를 갈고 닦고 있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그리고 더 높이 날기 위해서 말이다.

오지혜 |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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