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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진화론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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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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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숙의 사이언스크로키

자연과학 분야의 가장 위대한 이론은 무엇일까? 분명 흥미 있는 질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의문이 과연 의미 있는 것인가 하는 점부터 시작해서 평가방법, 기준 등 수많은 문제점이 따르므로 답을 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초점을 ‘영향력’에만 맞춘다면 아마 1859년에 <종의 기원>을 통해 발표된 다윈의 진화론을 첫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적자생존의 원리’가 핵심개념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다윈은 이를 1798년에 발표된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이론에 수용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자연계에 대한 수많은 관찰자료가 깔려 있다. 따라서 진화론은 그 탄생부터 이미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양 분야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줄 씨앗을 내포했다고 볼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 유은주
적자생존의 원리는 자연선택 또는 자연도태의 원리라고도 불린다. 잘 알다시피 이 원리는 자연계에 펼쳐진 생존경쟁의 환경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춘 개체가 번성하여 이후의 자연적 변화 과정을 주도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원리는 동물이나 식물의 한 가지 종 안에도 여러 가지 변이종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 즉, 자연계에서는 끊임없이 수많은 변이종이 출현하며 그 가운데 생존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본다. 하지만 다윈의 시대에는 ‘유전자’의 개념을 몰랐기에 변이종의 출현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해명을 하지 못했다. 이후 멘델이 유전자의 개념을 제창하고 드브리스가 돌연변이설을 내세웠으며, 마침내 1953년에 DNA가 유전자의 본체라는 점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현대의 진화론은 기본적으로 ‘돌연변이설’과 ‘자연선택의 원리’라는 양대 기둥 위에 구축되어 있다.

이와 같은 진화론의 변화 과정을 진화론 자체의 용어를 빌려서 표현한다면 ‘진화론의 진화’라고 하겠다. 진화론이 이런 식의 진화를 한 것은 처음 발표했던 모습 그대로의 진화론에는 많은 결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 말한 변이의 출현 메커니즘은 원초적 허점 가운데 하나이며 이 밖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는 지금도 진화 과정 중에 있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인간이 영위하는 대부분의 학문이 그렇듯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사라질 때까지 진정한 진화론은 다 완성되지 못할 것으로 여겨진다.

며칠 전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맞춤아기’가 탄생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희귀한 빈혈병을 앓는 네살배기 아이의 치료를 위하여 똑같은 유전형질을 가진 새 아기를 ‘선택적으로’ 임신한 뒤에 출산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똑같은 유전형질을 선택하기 위하여 아직 배아 상태에 있을 때 유전자를 검사하고 이후의 과정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이제 ‘자연선택’이 아닌 ‘인간선택’이 새로운 진화 메커니즘으로 끼어들 시대에 접어든 셈이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처음 시도할 때부터 치열한 논쟁과 법정 공방이 벌어졌고, 앞으로는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로서만 최초일 뿐 다른 동·식물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유전자 조작이 시행되고 있다. 따라서 구체적 논쟁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선택의 원리’를 완전히 배제하기란 극히 어렵지 않을까 여겨진다. 과연 진화론의 진화는 현재 어디로 향하려는 것일까 앞으로의 귀결이 부디 합리적인 방향으로 맺어지기를 기대한다.


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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