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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요정마을은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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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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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계의 블록버스터 <리니지2> 체험판 맛보기… 화려한 그래픽·편리한 인터페이스로 게이머 유혹

세계 최고의 게임전시회인 ‘E3쇼’에서는 올해 혁명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외국 유명 제작사의 게임들이 판을 치던 그곳에서 우리나라의 신작 <리니지2>(NC소프트)가 흡사 영화를 보는 듯한 스펙터클한 연출과 비장한 전운이 감도는 공성전의 동영상으로 최고의 인기를 모은 것이다. 이 소식은 블록버스터 후속편을 기다리는 영화광처럼 많은 게이머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올 7월 정식 출시될 <리니지2>는 현재 최종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온라임 게임 속에서도 <리니지2>는 2년6개월 동안 8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판타지 세계에 근거한 방대한 스토리와 생동감 있는 화면으로 다시 한번 게임판을 뒤흔들 준비를 착착 밟고 있다.

150년 거슬러올라간 전설적 영웅의 시대


<리니지2>의 스토리는 <리니지1>의 세계보다 15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이 무렵은 1편의 주요 무대인 아덴왕국이 막 통일을 이룩했고, 북쪽의 엘모어, 바다 건너의 그레시아와 3파전을 거듭하며 도시국가연합의 기틀을 닦는 시대다. <리니지1>에선 이름만 들어보던 전설적 영웅들의 시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리니지2>도 1편과 마찬가지로 판타지 서사물을 바탕으로 삼아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들이었던 요정(엘프족), 난쟁이(드워프족), 오크, 인간 등 다양한 종족이 얽혀 한 시대를 살아간다. 신화와 마법, 계층간의 규율이 날실과 씨실처럼 엮인 이 세계에서 게이머는 주인공이 되어 마법을 쓰거나 군주가 되어 길드를 운용한다. 전쟁을 벌여 다른 길드를 점령해 경제·사회·문화에 걸친 새로운 규범과 이념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롤플레잉 게임은 일방향의 어드벤처 게임에 가까운 일본식과 게이머의 진행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미국식으로 나뉜다. 일본식은 판타지 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호리이 유지의 문학적 세례를 강하게 받은 것으로, 게임 제작자가 미리 정해둔 스토리를 단순히 따라가는 식이다. <파이널 판타지>가 대표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2나 드림캐스트 같은 게임기를 기반으로 한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미국식은 리처드 개리엇이라는 걸출한 제작자가 만들어낸 <울티마>를 비롯해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등이 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다양하게 끝이 나는 자유로운 진행으로 게이머가 직접 이야기를 짜나가는 묘미가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리니지1>은 일본식으로 여겨져왔다. 물론 전형적인 일본식에 비해서는 게이머의 선택이 중요하지만, 한 화면에 똑같은 옷을 입은 캐릭터가 수십명씩 판치는 곳에서 레벨을 올리는 게 플레이어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판타지물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 종족 시스템이 게임 안에서 자신과 집단의 성장에 치명적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리니지2>는 인간과 엘프만 계급이 나뉘었던 1편과 달리 드워프, 오크 안에도 여러 계급과 직업이 있고, 각 종족은 전직을 통해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또한 각 직업은 종족마다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직업군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가령 드워프족은 작은 키에 손재주가 능해 유능한 대장장이가 된다든지, 시력이 좋은 엘프는 명사수, 저돌적인 오크는 싸움꾼이 되는 식이다. 이처럼 다양한 종족과 직업이 뭉쳐 하나의 강력한 길드를 형성해 동맹을 맺음으로써 하나의 영웅이 모든 걸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 가상세계에서의 질서를 만들어간다.

실감나는 캐릭터들… 단축키로 전투 치러

요즘 출시되는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들을 두고 흔히들 ‘3세대 온라인 게임’이라는 표현을 쓴다. 지금까지의 게임들이 밋밋한 평면에서 펼쳐지는 2차원 게임이었다면 2년 전부터 서비스를 해온 ‘뮤’(웹젠), ‘A3 Project’(액토즈소프트) 등은 3차원 세계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역동적 화면을 구사한다. <리니지2> 역시 미국에서 멋진 그래픽과 상당한 안정도를 인정받은 3차원 게임 엔진, ‘언리얼 엔진’을 차용해 온라인 액션게임에 맞는 그래픽으로 튜닝했다. <리니지2>의 그래픽은 <리니지1>에 비해 한 단계, 아니 두 단계 이상 발전을 거듭했다.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시야가 넓어 기존 하드웨어에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용(!)이 등장하고, 수십명이 맞붙는 공성전에선 무기를 든 수십명의 시선이 교차하며 싸움이 전개된다. 나무가 흔들리고 캐릭터의 머릿결이 나부끼는 섬세한 디테일, 반지·망토·투구·장갑·신발 같은 캐릭터의 아이템이 소상히 표현된다.

온라인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메뉴와 단축키 시스템이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게임이기에 순간적인 판단과 화면 장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리니지2>의 인터페이스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아이콘이 전투·마법 등 섹션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게이머가 두세번의 클릭만으로도 많은 명령을 한 화면 안에서 간단하게 실행할 수 있으며 자주 쓰는 마법 등을 단축키로 지정하여 빠른 전투와 액션도 가능하다.

<리니지2>는 확실히 화려하다. 하지만 이 화려함을 뒷받침해주는 고성능의 하드웨어를 갖추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과거 리처드 개리엇의 ‘오리진 소프트’ 게임들은 늘 하드웨어를 앞서가는 게임 제작사로 유명했다. 이는 마니아들의 PC 업그레이드 주기를 단축시키는 데 상당 부분 일조해왔다. 그렇다면 <리니지>처럼 게임방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플레이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이후 이와 맞먹는 소프트웨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게임방들은 낡은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리니지2>를 즐기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많은 게임방 업자들은 <리니지2>의 발매로 인해 과거와 같은 호황을 누리길 원하겠지만, <리니지2>가 돌아가는 환경을 갖추는 것은 게이머와 업자들에게는 커다란 시련일 수 있다.

엘프 나라의 불타는 석양을 어찌 잊으랴

온라임 게임이라는 장르가 생겨난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처음의 조악한 화면 구성과 단순한 그래픽에 비해 최근엔 게임기 정도의 완성도로 무장한 대형 제작사들이 속속 온라인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얼마 전 소니에서도 플레이스테이션을 이용한 온라인 게임 사업을 발표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라 불리는 소니그룹의 실력자 구타라기 겐 사장은 지난 2월 온라인 게임 강국 한국을 높이 평가하며 플레이스테이션2에서도 온라인 게임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X-박스의 온라인 사업에 이어 콘솔 게임기가 온라인 시장에 잇따라 투입되는 것은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널린 깔린 PC방처럼 독특한 온라인 인프라를 가진 시장의 성공을 토대로 다양한 게임들이 출시됨을 뜻한다. 이제 우리나라의 온라인 게임은 국경 안에서만 경쟁하지 않는다. 일주일 남짓 <리니지2>를 직접 해보면서 <반지의 제왕> 촬영지였던 뉴질랜드와도 같은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나라 게임화면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에 황홀해했다. 윤기 흐르는 잔디가 융단처럼 깔려있는 엘프 마을의 불타는 석양을 잊을 수 없다. 절대반지를 운반하기 위해 원정대가 꾸려졌던 성스럽고도 신비한 요정나라. 지난 며칠은 그 풍요로운 자연 앞에서 나 역시 칼자루를 움켜쥐고 결의를 다지는 환상의 나날이었다.

김연수 | 웹디자이너·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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