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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가 닭살 커플을 키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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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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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원작자 김유리씨가 공개하는 연애와 결혼 그리고 동거 노하우

인터넷에서 독자를 사로잡은 뒤 안방에 진입한 〈옥탑방 고양이〉. 인터넷 소설의 원작자인 김유리씨가 연애와 결혼 그리고 동거에 대해 거침없이 밝혔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여겨지는 동거의 효과를 들어봤다.

<옥탑방 고양이> 원작자답게, 부산 동대신동에 위치한 김유리씨의 집에 들어서니 고양이 세 마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미야, 도도, 와사비. 작고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아니라 품에 안기도 버거운 커다란 고양이 세 마리가 마치 제 집인 양 어슬렁거린다. 거치적거리지 않느냐고 묻자 김유리씨는 “쟤들한테는 오히려 우리가 거치적거릴걸요” 하며 웃는다. “고양이가 좋은 이유는 절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죠. 고양이들 보면서 나도 힘내서 살아야지, 결심한 적도 많아요.”

인터넷의 폭발적 반응 드라마로 이어져

알려진 대로 김유리씨는 문화방송 미니시리즈 <옥탑방 고양이>의 원작자이자 실제 주인공이다. 지난 3월 결혼식을 올려 지금은 남편이 된 안동열씨와 1999년부터 동거를 시작했고 2001년부터 여성 포털사이트 마이클럽에 두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힘들고 어렵게 사는 이야기만 풀어놓는 것이 답답해 우리의 재미난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단순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조회 수, 추천 수가 급속도로 올라갔고 김씨는 단숨에 인기 사이버 작가로 자리잡았다. 2001년이 채 가기도 전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내보자는 제의를 받았고, 두권으로 된 동명소설을 출간했다. 영화로 만들겠다는 제의도 끊이지 않았다. 결국 드라마로 만들어지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소설도 재발간되었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김유리씨는 “그저 얼떨떨할 뿐”이라고 말한다. 작가지망생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고 작가로 한발 내디딘 것이 기쁘기는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커졌다고. 그런 그에게 가장 힘이 되는 건 역시 남편 안동열씨다. 김씨의 소설을 30번이나 읽을 정도로 열혈 독자인데다 외조 또한 훌륭하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주스며 과일이며 샌드위치며 이것저것 주섬주섬 내놓던 안동열씨는 슬그머니 옆방으로 사라졌다. 이유인즉 김유리씨가 ‘실제 주인공’이 아닌 ‘작가’로서 인터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안씨의 아내 사랑은 이뿐만이 아니다. 결혼식을 3주 앞두고 김씨가 허리를 다쳐 앓아눕자 안씨는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뒀다. 간병인으로 자신보다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아직 젊기 때문에 돈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고 안씨는 말한다.

김씨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리라. 이들이 얼마나 ‘닭살 커플’인지. “전에는 세상이 흑백TV처럼 재미없었는데 너를 만난 후로 세상이 컬러TV를 보는 것처럼 달라졌다”는 안씨의 프로포즈나 “마트에 장 보러 가면 카트에 올라탈 정도로 엽기적인 데가 있지만 ‘도를 아십니까’ 하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집에 불러들여 차를 대접할 만큼 천성이 착한 사람이다”라는 김씨의 칭찬은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24살, 25살 어린 나이에 보증금 10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동거를 시작한 이들의 삶이 그리 녹록지는 않았을 텐데 두 사람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편견·부조리 드러내려 당당하게 공개

사진/ 〈옥탑방 고양이〉의 실제 ‘닭살 커플’ 안동열·김유리 부부.
김유리씨는 오히려 동거를 한 경험 때문에 더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김씨가 글을 쓸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 집에서 나와 독립한 날, 안씨가 고추장단지 하나 달랑 들고 같이 살자고 왔을 때만 해도 동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살아보고 결혼하자는 말은 예전부터 했지만 막상 닥치니까 겁이 났어요. 부모님께 어떻게 말하나,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게다가 동거하다 깨지면 사람들이 여자한테 더 손가락질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같이 살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고.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이 두려워서 피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앉아서 욕만 하면 소용없잖아요. 진정한 패배는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미리 포기하는 데서 오는 거예요.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은 되도록 안 하고 내 의지대로 열심히 살자 맘먹었죠.”

그래서 부모님께도 “이해하시긴 힘들겠지만 이게 나의 행복이다. 위험해 보이겠지만 실패해도 그건 내 몫이니 내가 감당하겠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고. 강력계 형사 출신인 아버지는 항상 무서운 존재였기에 동거 초기에는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고 친구의 실수로 동거 사실을 부모님께 들켰을 때 모진 일도 많이 겪었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자신감 때문이었다.

<옥탑방 고양이>를 연재하면서도 코믹하고 가볍게 쓰긴 했지만 동거에 대한 편견, 결혼제도의 부조리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싶었다. 사회 통념상 동거 사실을 인터넷상에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동거 옹호론자’로서 진지한 고민을 나눌 필요성은 충분했다.

너희가 동거의 효과를 아느냐

사진/ 문화방송 드라마〈옥탑방 고양이〉의 정다빈·김래원.
“연애와 동거와 결혼은 각각 다 달라요. 연애할 때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진짜 자기 모습은 안 보여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같이 살게 되면 생활이기 때문에 속임수는 불가능하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맞춰나가는 일도 만만치 않아요. 게다가 결혼을 하면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들이 얽혀들기 때문에 작은 일도 커지고 더 복잡해져요. 말하자면 동거는 테스트 기간인 거죠. 서로 잘 알면 더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주변에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자신은 결혼생활에서 겪는 어지간한 문제는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다고 ‘동거의 효과’를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그렇다면 김유리씨가 말하는 ‘동거 노하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이 중요하면 상대방의 생각도 중요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실제로 부딪히며 살다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둘째는 외부 시선에 영향받지 말 것. 특히 동거하는 여자를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욕하려면 해라’라고 모질게 마음먹고 자기 존중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셋째, 가사분담은 철저히 할 것. 여자들은 남자가 가사일을 제대로 못하면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는 심정으로 나서게 되는데 그럴 때 참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느 한 쪽이 희생하는 관계는 행복할 수 없다. 참고 내버려두면 남자들도 다 알아서 한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동거건 결혼이건 인생의 종착지가 아니다. 실패했을 때 지나치게 상처받지 말고 당당하게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동거에 이르는 합의 과정 빠져 아쉽다”

사진/ 드라마〈옥탑방 고양이〉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챘겠지만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는 김유리씨의 원작과 많이 다르다. 두 사람이 진지한 논의를 거쳐 동거에 이른 것과 달리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하룻밤을 같이 보낸 뒤 우연히 동거를 시작한다. 김씨는 “인터넷 소설은 작품으로서의 완결성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에 계약할 때 원작과 많이 달라질 거란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여성에게 불리한 결혼구조에서 동거라는 합의과정이 필요하다는 원작의 문제의식이 사라져서 아쉽다”고 말했다. 같은 아쉬움을 가졌던 독자라면 가족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대해 다룰 김유리씨의 후속작 <옥탑방 고양이-연장전>을 기대해보는 건 어떨까

부산=피소현 기자 | 한겨레 스카이라이프부 plav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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