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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쩝~ 그 취조실의 개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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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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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에 끌려간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 ‘광교할매집’을 문화재로 지정하라

첫 경험이 중요하다. 어느 때 어디서 누구하고 어떤 기분으로 첫 경험을 겪었는지 말이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입이 짧은 사람들은 육회, 간천엽, 순대국, 보신탕 등 약간은 ‘엽기스러운’ 음식들을 어떤 상황에서 처음으로 대하였는지에 따라 그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이 머리에 박혀버리기 때문에, 그런 음식들은 꼭 전문집에서, 제철에, 편안한 사람들과, 기분 좋게 먹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다. 물론 입에 끌리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지만,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그러한 음식들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관용의 입맛’을 보일 수 있다면 더 다채로운 사회생활이 전개되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사진/ 광교할매집은 뭉근 불에 24시간 푹 끓인 탕이 담백한 해장국맛과 비슷하여 ‘첫 경험자’도 별다른 느낌 없이 접할 수 있다.
농촌에서는 현충일을 전후해 모내기가 끝나면 첫 번째 김을 맬 때까지 약간 숨을 돌리게 된다. 3월 못자리 짜는 일에서부터 오이, 수박 심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부엌 부지깽이도 한몫 거들어야 할 정도로 숨막히게 농사일이 밀어닥치는 시기가 6월 초까지의 석달인데, 한여름 무더위 아래서의 농사일에 대비해 농부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원기를 보충한다. 어릴 적 나의 외갓집은 머슴을 두명이나 부릴 정도로 농사를 크게 지었다. 해마다 6월 중순쯤이면 외갓집에서는 농사일에 지친 일꾼들을 먹이기 위해 개를 잡아 동네 잔치를 벌였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외갓집엘 갔는데, 어머니와 외숙모는 된장국이 설설 끓는 가마솥에서 개고기를 꺼내 냉수에 손 담가가며 갈래갈래 찢어 큰 양푼에 갖은 양념으로 무쳐놓고, 일꾼들이 내미는 개장국 대접에 한 움큼씩 고기를 넣어주셨다. 이렇게 노동에 지친 농부들의 달콤한 휴식 속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마을 잔치에서, 대여섯살이던 내가 개고기를 첫 경험 했으니, 어찌 내가 이 음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자연스러운 첫 경험이 아니라 모종의 ‘원통함’ 때문에 첫 경험을 하고야 만 사람이 있다. 지금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는 나의 친구 유인태씨가 그다. 1974년 4월, 이철·유인태 등 수많은 전국의 청년 학생들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반유신운동을 압살하기 위해 4월 초부터 시작된 고문과 구타, 협박과 날조의 이 허망한 놀음은 6월에 이르러 막바지에 왔는데, 이때쯤에는 사건은 그들의 ‘기획안’대로 대개 마무리되어 중앙정보부 각 취조실은 제법 파장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때 서울대 이현배 선배와 유인태의 취조실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한다. 6월 어느 날 저녁 이현배 취조실의 중정 요원들과 유인태 취조실의 요원들이 밤참으로 개고기와 소주를 시켜 먹었다. 그러나 아무리 피의자라 해도 한 방에 있는 사람을 놓고 자기들끼리만 먹기가 뭐했던지, 유인태에게 “너 개고기 먹니?” 물었다. 당시 유인태는 개고기를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 곧이곧대로 못 먹는다고 대답했단다. 유인태 담당 요원이 이현배 담당 요원에게 하는 말. “얘는 못 먹는대. 그 새끼는 먹는대?” “음, 먹는대.” 이리하여 두 방의 요원들이 한곳에 모여 개고기 파티를 여는데, 피의자끼리는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는 법. “유인태! 벽 보고 꿇어앉아 있어!” 이리하여 이현배는 중정 요원들과 쩝쩝거리며 개고기에 소주 한잔을 걸치고 있는데, 유인태는 그들이 마지막 고기 한점을 다 먹어치울 때까지 벽을 향해 꿇어앉아서 침만 삼켰단다. 그날 이후 유인태는 개고기를 배우지 못한 것을 철천지 한으로 여기고 옥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개고기를 먹기 시작해 이제는 마니아가 되었다고 언젠가 나에게 그 ‘통한의 역사’를 밝히며, 국가정보원은 개혁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침을 튀겼다.

서울 광교의 삼일빌딩 건너편에 가면 ‘광교할매집’(02-776-4603)이라는 40년 된 보신탕집이 있다. 골목안 조그만 한옥에 오무라니 방들이 이어 있는 폼이 보신탕집의 전형 같은 곳이다.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같이 온 친구들에게 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할 집이라고 극구 주장했는데, 아깝다! 청계천 개발로 조만간 헐릴 예정이란다. 이 집은 뭉근 불에 24시간 푹 끓인 탕이 아주 좋은데, 씹는 맛이 없어 별로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담백한 해장국맛과 비슷해 ‘첫 경험자’도 별다른 느낌 없이 접할 수 있다.



김학민 |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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