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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광팬의 사랑, 대박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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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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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설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면서 인터넷 소설의 잠재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2001년 개봉한 <엽기적인 그녀>와 올해 초 개봉한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모두 500만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리자 영화계는 인터넷 소설 영화화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

사진/ 인터넷 소설을 스크린으로 끌어와 인터넷 문학의 힘을 증명한 〈엽기적인 그녀〉.
인터넷 소설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던 <그놈은 멋있었다> <내 사랑 싸가지> <백조와 백수> <백수의 사랑이야기> <삼수생의 사랑이야기> <쉬즈 마인> 등이 현재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이다. 게다가 6월에 방송을 시작한 문화방송 미니시리즈 <옥탑방 고양이> 또한 ‘인터넷에서의 인기가 드라마에도 이어질까?’라는 우려를 깨고 꾸준히 시청률이 상승하며 같은 시간대 지존인 <야인시대>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 현재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있는 인터넷 소설들.
인터넷 소설은 원래 팬픽(fanfic·팬들이 쓰는 소설)에서 유래했다. 팬클럽 활동의 일환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나 영화, 만화의 등장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인기 시리즈물인 <스타트랙>과 이 그 시초가 되었고 국내에서는 H.O.T 팬클럽에서 시작되었다. 팬픽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금세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고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통로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인터넷 소설을 연재하는 전문작가군이 형성된 것이다. 인터넷 소설을 연재하는 동호회와 홈페이지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인터넷 소설 특유의 사실적이고 발랄한 구성에 매료된 팬층도 넓게 형성되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인기가 높은 인터넷 소설을 제본·출판하는 등 새로운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아갔다.

이렇게 사이버 공간 안에서 가능성을 입증받은 인터넷 소설이 책, 영화, 드라마의 형태로 오프라인에까지 진출하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조회 수’로 흥행 가능성을 입증한 인터넷 소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원료’가 되는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이모티콘과 채팅언어로 가득 찬 대표적 인터넷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가 출판소설로 12만부 이상이 팔리면서 인기를 얻자 문학의 정통성을 흐린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중문학 평론가 조성면씨는 “인터넷 소설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서 가지는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며 “발랄한 사유와 창조력을 억압하는 기존 문학계에 대한 경고”라고 일침을 가했다.


인터넷 소설은 드라마와 영화계에서도 고질적인 소재 빈곤을 해결해줄 좋은 창구로 인식되고 있다. 인터넷 소설은 10~20대인 작가들이 실제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에서 있었던 일을 코믹하게 과장해 풀어내기 때문에 쉽게 공감을 얻는다. 또한 작가들이 다양한 층에 걸쳐 포진해 있기 때문에 독특하고 참신한 소재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주철환 교수는 “인터넷은 예비작가들이 서식하는 바다다. 그물에 걸리는 고기만 기다리지 말고 직접 들어가 건강한 소재를 건져내야 한다. <옥탑방 고양이>가 그 좋은 본보기다”라고 지적했다. 성공회대 신방과 최영묵 교수 또한 “빠르고 감각적인 인터넷 소설이 주 문화 소비층인 젊은 세대의 감성과 맞아떨어지는데다, 유명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판권료도 적기 때문에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영화 제작 붐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피소현 기자 | 한겨레 스카이라이프부 plav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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