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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건축의 향기, 낮은 곳으로 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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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7-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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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와 시골 서민주택에 조형미와 인간미를 불어넣는 건축가들의 새로운 시도

회색 판잣집들이 촘촘히 이어지는 인천 만석동 골목. 동네 집 숫자보다 화장실 숫자가 적은 곳, 아침마다 공중화장실 앞에 주민들이 줄을 서는 곳, 그래서 ‘치질약국’이란 이름의 약국이 있는 곳이다. 이 골목 한구석에 3층짜리 콘크리트 집인 ‘기찻길 옆 공부방’이 있다.

동네 빛깔에 녹아든 ‘기찻길 옆 공부방’

(사진/인천시 만석동의 저소득층 어린이 보금자리 ‘기찻길 옆 공부방’. 판잣집들이 밀집된 동네 분위기에 조화를 이루면서도 미니멀리즘 건축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했다)
주변 집들이 단층인 탓에 공부방 건물은 지붕 사이로 고개를 내민듯 불뚝 솟아 있다. 그러나 결코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는다. 주변 여기저기 온갖 장식과 빛깔로 치장한 다세대주택들이 회색빛 도화지에 떨어진 물감 자국처럼 튀어보이는 것과는 달리, ‘기찻길 옆 공부방’은 마치 이웃 판잣집들이 마을에 들어설 때 함께 지어졌던 것처럼 동네 빛깔 그대로 만석동의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있다. 이곳 어린이들의 배움터이자 삶터라는 점을 감안해 아이들이 사는 집 모습과 느낌 그대로 지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는 신앙공동체 ‘기찻길 옆 공부방’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이 건물은 건축가 이일훈(46)씨의 작품으로 98년말 만석동에 소리소문 없이 지어졌다. 그리고 최근 한 건축잡지와 젊은 건축비평가그룹 크리악이 선정하는 이달의 건물로 뽑혔다. 건축주의 빠듯한 예산 때문에 일반 다세대주택보다도 적은 공사비로 지어진 연건평 45평짜리 이 작디 작은 건물이 건축계의 젊은 비판가들로부터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찬사를 받은 것이다. 과연 무엇 때문일까.

“우연히 맡은 일이었지만 최상의 건축주를 만난 경우였습니다. 공부방은 돌보는 아이들의 생활공간인 만석동과 강한 연관성을 갖고 있고, 그래서 건물의 주인인 아이들과 건축주의 삶에 맞는 집을 기획했습니다.”

이씨의 말대로 건축주인 공부방 대표 최흥찬씨의 주문은 단 한 가지였다. “동네 고유의 정서를 살려달라”는 것. 그리고 “돈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을 뿐이었다. 건축가 이씨는 동네의 색깔인 회색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리는 건물,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건물을 구상했다. 그래서 공부방 건물은 쓸데없는 치장도, 폼나는 공간도 없다. 그러면서도 요즘 가장 각광받는 건축스타일인 미니멀리즘의 단순한 아름다움도 은은하게 풍겨난다.

한국의 건축풍토에서 ‘기찻길 옆 공부방’은 매우 드문 사례다. 젊은 건축비평가들은 무엇보다도 그동안 건축으로부터 소외됐던 소규모 서민 공공건물에 건축가의 철학이 스며들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건축주와 건축가가 바람직한 의사소통을 통해 건축물의 공공성과 장소성을 살렸다는 점, 서민들의 삶을 담는 건축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에서 이 건물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사진/기찻길 옆 공부방 옥상에 만들어진 하늘마당. 비좁은 면적을 감안해 거주자들이 하늘이란 자연을 느끼도록 배려했다)
건축은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건축은 그렇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건축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먼 세계의 단어일 뿐이다. 돈문제에 종속되는 속성상 건축이 가진자의 전유물이 되는 경향을 띨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건축과 대중의 거리는 너무나 멀기만 하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건축계에서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기찻길 옆 공부방’은 그런 작지만 의미있는 새로운 시도 가운데 하나다. 높은 곳만을 쳐다보던 건축이 비로소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징표이자 서민들의 생활공간에 건축의 향기가 덧씌워지는 반가운 소식이다.

전혀 다른 다세대주택

94년 서울 중구 신당동 달동네에 건축가 조병수(43)씨가 지은 세채의 임대주택은 90년대 건축계에서 등장한 이런 의미있는 작업 가운데에서도 앞선 축에 속한다. 건축가로 독립한 신예의 첫 번째 작업이었던 이 건물들은 건축계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못했지만, 건축가 조씨에게는 지금도 가장 재미있었던 작업으로 남아 있다.

(사진/솔마당집은 값싼 철골조와 미송 목재로 장식적인 멋을 살리면서도 건축비를 절감하는 노하우를 보여준다)
“건축가들도 ‘현대건축이 건축을 망쳤다’, ‘현대건축은 예전 건축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미를 잃었다’고들 말하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달동네의 ‘건축가 없는 건축’이 오히려 현대건축에서 사라진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고쳐지고 바뀌면서 유기적 생명체처럼 자라는 달동네 집들은 사람 느낌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할까…. 건축가들이 고전건축을 멋있어 하고, 연구하고, 작업에 차용하듯 달동네 건축의 생명력과 기발함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조씨가 달동네 건축을 주제로 삼고 가상의 프로젝트로 연구하던 도중, 마침 신당동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건축주들은 조씨가 중시한 달동네 건축의 건전함을 되려 싫어했다. 대신 건축가 조씨가 그토록 싫어했던 ‘천박한’ 다세대 건물을 원했다. 설득 끝에 조씨의 생각은 관철됐지만, 다음에는 시공이 문제였다. 늘 ‘집장사 집’만을 지어왔던 시공자는 도면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법규도 무시했다. “평생 그렇게 집을 지어왔는데 왜 까다롭게 구느냐며 반문하는데 할말이 없었어요. 결국 건축은 설계부터 시공까지 일련의 과정이 모두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사진/건축가 조병수씨의 용인 ‘솔마당집’. 19세대를 수용하는 서민용 다세대주택이면서도 기존 다세대주택의 천편일률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잘 지은 개인주택처럼 꾸며졌다)
달동네 주택에서 배운 시행착오와 이후 작업을 통한 수련을 더한 뒤, 조씨는 98년 또다른 다세대주택을 작업했다. 경기도 용인의 한 주택가에 지은 ‘솔마당집’이란 이름의 이 다세대주택은 일반 다세대주택보다 싼 건축비를 들였음에도 미적인 측면과 기능적인 측면에서 일반 다세대주택을 훨씬 뛰어넘는 집이라는 건축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솔마당집은 다세대주택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그 어떤 이미지도 적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맨살 콘크리트와 나무로 보통 다세대주택 평당 건축비 250만원에 비해 훨씬 싼값인 평당 210만원에 지었는데도 건축잡지에 나오는 잘 지은 외국집처럼 근사해 보인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우리나라 서민주택의 가장 큰 문제점인 공용공간의 부족을 극복했다는 점이다. 조씨는 다른 다세대주택들을 분석한 결과 신발장조차 고려하지 않는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중간 복도 가장자리로 가구를 뺑 둘러 배치해 환기나 채광도 문제인데다 가장 중요한 프라이버시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대지면적 100평 남짓한 건물에 7∼14평의 작은 세대 19가구를 배치하면서도 집들 사이 공간에 주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공공간을 배치했다. 주택임대로 노후를 대비하려는 평범한 시민인 건축주가 다세대주택을 과감하게 건축가에게 맡기는 ‘용기’를 발휘한 것도 이 집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지방 건축현실 비난만 하면 무책임”

(사진/공장의 고정관념을 깨는 동우밸브컨트롤 공장의 모습)
파란 벽과 노란 기둥으로 기하학적 조형미를 강조하는 경기도 화성군 동우밸브컨트롤 공장 역시 솔마당집처럼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는 새로운 건축적 시도로 손꼽힌다. 공장은 직원들이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란 점에서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긴 건축주의 과감한 선택과 건축가의 감각이 잘 맞아떨어진 건물이다.

건축가 김효만(45)씨가 작업한 이 공장은 처음 보면 갤러리로 착각할 정도로 외관이 산뜻하다. 공장 내부도 여느 공장들과는 한참 다르다. 건물 천장에 설치한 빛우물로 햇빛이 들어와 작업공간의 기계적 느낌을 덜어주고, 3층까지 시원하게 뚫린 내부공간이 공장 특유의 답답한 실내분위기를 없앴다.

건축주 최성일 사장은 천편일률적인 네모난 상자모습으로 지어지는 우리 공장들과는 달리 마치 가정집처럼 편안하게 지은 외국의 공장들을 보고 ‘언젠가는 그런 공장을 짓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다가 기회가 오자 건축가에게 공장을 맡기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직원들에게 공장은 하루의 절반을 보내는 곳이니만큼 회색조의 답답한 상자갑 같은 공장은 짓고 싶지 않았다.” 최 사장의 말이다.

이들 세 건축가의 작업은 사실 건축계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이다. 그리고 운이 좋은 경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건축에 대한 의식이 앞선 건축주들을 만난 덕에 가능했다. 물론 그동안 이런 ‘작은 건축’에 관심을 갖고 고민해왔던 건축가들의 작품이란 공통점도 갖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경제성장만을 해온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건축은 경제개발의 첨병인 동시에 수혜자로서 넘치는 일감을 고르며 작업을 해왔다. 그래서 이들의 작업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많은 부분을 소홀히 해왔던 건축이 그동안 놓쳤던 작은 부분에 비로소 신경쓰기 시작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사진/전북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의 마을회관. 건축문화의 소외지대인 지방 작은 마을에 유명 건축가가 직접 나서 마을회관을 지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리고 이 건축물들은 비교적 젊은 축에 드는 건축가들의 작품이란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아직까지 간판급의 거물 건축가들에게서는 이런 시도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건축계의 대표적 건축가인 정기용(56)씨의 ‘무주 프로젝트’는 건축가가 스스로 먼저 나서 낙후된 지방건축을 직접 개선하고자 뛰어든 사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정씨의 무주프로젝트는 최근 작업이 끝난 전북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의 마을회관 신축과 무주군청 리노베이션 작업, 그리고 조만간 완공될 예정인 안성면 면사무소 신축작업 등 세 가지 프로그램이다. 거물급 건축가가 대형 프로젝트를 마다하고 서울도 아닌 리 단위 ‘시골 구석’의 작은 건물에 신경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건축계에선 없었던 일이다.

“모든 건축가들이 지방 건축문화에 대해서 비웃습니다. ‘저게 무슨 건축이냐’, ‘눈 뜨고 볼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비난하고서 서울로 돌아오면 그 사실조차 잊어버립니다. 지방 건축현실을 읽으려고는 하지 않고 비난만 한 것이 아니냐는 부채의식을 느꼈고, 그래서 직접 지방의 건축문화 현장을 답사하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무주와 인연을 맺은 거죠.”

흙으로 지은 마을회관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서 정씨는 마을에 골프장을 짓는 계획을 막는 젊은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진도리에 골프장 대신 예술인 마을을 짓기로 했던 터여서 마침 만난 건축가 정씨를 자문으로 초빙했다. 평소 ‘생태건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특히 ‘흙건축’을 주장했던 조씨는 마을 주민들에게 생태건축과 흙건축을 강연했다. 마침 진도리는 새 마을회관을 지을 예정이었고, 주민들이 투표까지 한 끝에 조씨에게 맡기기로 했다. 조씨는 흙집으로 마을회관을 지었고, 안성면 면사무소와 무주군청 리노베이션작업까지 부탁을 받았다. 먹이사슬 구조 속에서 비리와 날림이 만연하는 지역 건축사업에 저명 건축가의 작품이 대신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사가 도중에 중단되는 바람에 마을주민들이 직접 나서 완공한 진도리 마을회관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처럼 특색없는 단층 슬라브 일색의 보통 마을회관과는 달리 전통건축의 곡선미를 살렸다. 특히 흙과 나무로만 지어 건물을 헐었을 때 나오는 건축폐기물이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 순환되는 생태건축물이란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안성면 면사무소 역시 기존 관공서 건물과는 다른 모습으로 설계돼 조만간 완공된다. 특히 인구가 적어 채산성이 적기 때문에 공중목욕탕 하나 없는 안성면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면사무소 안에 목욕탕까지 설치한다.

“건축문화가 살아나려면 그나마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소규모 공공건물 건축이 바뀌어야 합니다. 공공성을 지난 건축물이 어떻게 일반사람들과 밀착해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건축문화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가치에서 문화는 빠져 있었습니다.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에서 사라졌던 문화의 향기를 되살리는 길은 작은 건물, 보통사람들의 공간으로 건축이 다시 찾아가는 길일 겁니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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