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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불멸의 르네상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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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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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역사·사상적 뿌리 추적… 이념을 실현한 대표작 도상학적 해석 담아

“불멸의 신이여, 어떻게 이러한 경이스런 시대가 우리의 눈앞에 전개되고 있을까요! 젊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1517년, 네덜란드 출신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1466~1536)는 눈앞에 펼쳐지는 르네상스의 문화와 지식의 발전에 감탄하며 자신의 충격적인 심정을 이렇게 편지에 썼다.

미술사학자 임영방씨의 평생 노력 결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 임영방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40년 전 한국의 젊은 미술학도도 같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자란 문화 토양과는 너무나 다른 서양미술,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정교하게 발달했던 르네상스 미술을 만난 그는 이 낯선 한 시대 전체를 이해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임영방(74)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내놓은 700쪽짜리 대작,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은 그가 학부시절 품었던 질문, “사람들은 오늘날도 왜 끊임없이 르네상스 문화예술을 언급하고 거기에 관심을 보이며 마치 본보기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에 계속 답해온 한 미술사학자의 평생 노력의 결실이다.

인문학도들의 애독서였던 <현대미술의 이해>(1979년)를 쓰기도 했던 지은이는 한국의 조형미학과 미술비평 분야에서 활약한 초기세대 대표적 학자 중 한 사람이다(지난달 말 열렸던 출판기념회에는 그의 제자인 연출가 김민기, 김정헌 공주대 교수, 화가 임옥상, 시인 황지우 등이 모였다). 그는 오랫동안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쓰면서 “사람이 왜 태어나고 자라는가, 세상을 왜 함부로 살면 안 되는가를 르네상스 예술을 공부하며 깨닫았다”며 “40년 큰 짐을 이제야 벗었다”고 말했다. 노 학자가 쓴 이 책은 한국 미술인이 쓴 최초의 르네상스 미술 통사로 기록될 것이다.

이 책에서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문화가 태동한 역사적·사상적 뿌리다. 무의식적으로 고대 문화유산을 삶의 배경으로 품고 있었지만, 항상 영토는 분열된 채 도시국가들이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던 이탈리아에서 14세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야만족’들의 계속적인 침공과 점령, 게르만족의 무자비한 문화파괴 침공 등으로 황폐화된 문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온전한 인간성을 회복하길 원했고,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믿게 됐다. 특유의 지식인 사회가 나타났고, 여기에 이들을 후원하는 부유한 가문과 권력자들이 개입하면서 이것은 화려한 미술로 꽃을 피웠다. 지은이는 “이교적 고전·고대 문화와 그리스도교적 중세문화가 만난 사상적 길목이 신플라톤주의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고찰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은 페트라르카, 피코델라 미란돌라, 피치노 등에 계승돼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세우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지적한다.

200여장의 도판 실어… 인간의 가능성 탐구

엄청나게 풍부하고 다양했던 이 시기의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10여차례 유럽의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발품을 들이고, 자료들을 섭렵하며 지은이는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에 다리를 놓은 지오또나 시모네 마르티니의 작품에서 시작해 르네상스의 본거지가 된 피렌체의 천재들-건축가 브루넬리스키, 조각가 도나텔로, 화가 마사치오와 웃첼로, 프라 안젤리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보티첼리-을 지나 인문주의의 정점이 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브라만테의 작품들에 대한 구체적 해석을 시도했다. 물론 200여장의 도판도 실려 있다.

지은이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미술은 극히 난해하고 여러 가지 관점에서 수준 높은 내용을 품고 있으며 또 자연에 대한 다각도의 이해를 보여주지만, 내용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고 고급스럽다 하더라도 결국 그것이 다루는 것은 인간의 문제다. 르네상스가 남긴 것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와 개발”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에게 ‘자아의식’을 갖게 한 200년”,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그의 정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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