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지기로 이웃과 함께하며 활력 얻어… 무엇이 끼니 거르지 않는 ‘밥 힘’만 하랴
칠십 문턱을 넘은 지 몇년 되었으니 오래 살았다고 여긴다. 험난하고 덧없는 인생길에 여태까지 살아온 것이 새삼 고맙다. 나도 이제 누구나 다 가고 마는 길을 향해 그 많은 이별과 경험으로 배우고 익혀서 늘 마음다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은 드물겠지만, 모두 살고 있을 동안 건강하게 살다 마치기를 원한다.
나는 퇴행성 관절염이 심한데, 3년 전부터 고혈압과 당뇨병이 생겨 병원에 간다. 저혈당 현상이라나. 온몸이 진땀으로 고통받는 게 싫어 먹는 것에 신경쓰니 배가 더 나온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무슨 ‘건강 이야기’인가 할 것이다. 나는 곧 ‘북망산’에 갈 무지 뚱뚱한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아픔이 있는 현장에 달려가는 ‘인권지기’임을 자부하며 신체의 아픔을 딛고,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로하며 함께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나의 건강법이다.
18년 전 엄혹한 군사독재시절 막내아들의 두 번째 구속으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회원이 되었다. 절망과 분노로 울고 지새느라 온몸은 붓고 가쁜 숨을 쉬는 환자로서 면회도 잘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구치소에 모인 많은 대학생 부모들을 만나 서로 말하고 의지하니 점점 새 힘이 생겨 큰소리도 나오고 아들을 위한 지혜까지 생겨났다. ‘민가협 엄마’란 타이틀을 붙인 투쟁력과 배짱은 이전의 나의 모습을 싹 바꾸어놓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학생·노동자들이 감옥으로 끌려가고, 수천명 양심수들은 감옥에서 옥중투쟁을 하여 바람 잘 날 없었다. 50~60대 ‘아줌마’들이 하루 종일 투쟁의 현장을 누비고 다니니 어찌 몸이 성하랴. 늦게 집으로 돌아와서는 끙끙 앓으며 “내일은 절대 나가지 못할 거야” 하다가도, 아침이면 또 일어나 어머니 동지들이 약속한 곳으로 향했다.
18년 세월을 오로지 내 자식, 남의 자식 구별 없이 아끼고 사랑하고 이웃의 아픔에 관심을 가지면서 불의와 부정, 부조리를 미워하며 옳음을 위해 싸워왔다. 그러면서 슬픔은 나누고 기쁨을 함께 하니 어느새 몸의 병도 겁나지 않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칠순 ‘할머니’인 내가 지금껏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건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실현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 희망이 나를 여전히 ‘민가협 엄마’로 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건강법’인가 생각하니 희비가 교차한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것 하나. 내가 활동을 유지하는 비법은 바로 ‘밥 힘’이다. 우리 민가협 엄마들은 밥 때는 꼭 챙긴다. 배가 든든해야 발걸음에도 힘이 생기고 지혜도 형성되는 법이다. 어쩌다 빠듯한 일정이 계속될 때는 집을 나설 때 꼭 도시락을 챙긴다. 찬은 없을지언정 밥은 꼭 보리밥이나 현미밥으로 지어 담는다. 내 몸과 함께 살아가는 병들은 나와 함께 투쟁하고 끼니마다 보충해주는 영양으로 잠잠해지는 것이다. 병 자랑해서 뭣하랴. 이렇게 몸 움직일 수 있을 때, 함께하는 기쁨이 어딘가. 오늘도 갈 곳이 많구나. 아이구 바쁘다! 일어나자, 이만.
임기란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 상임의장

사진/ 임기란(이용호 기자)
임기란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 상임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