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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숨겨진 질서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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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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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명현상 재해석하는 네트워크 과학… 전염병 확산 막고 ‘소문 마케팅’ 등에 활용

인터넷 질병(epidemiology)은 정보화 사회의 재앙으로 불린다. 지난 1월 컴퓨터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서 가공할 만한 위력을 드러냈다. 사상 초유의 인터넷 접속 중단사태를 일으켰던 것이다. IT강국 코리아가 SQL슬래머 웜 한방에 녹다운된 일대사건이었다. 사실 인터넷 대란을 일으킨 대규모 공격은 지난 2000년 야후, 이베이 등 해외 유명 사이트를 공격했던 ‘분산서비스거부’(DDoS·Distributed Denial of Service) 공격이나 2001년 7월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를 공격했던 코드레드(Code Red) 등과 비슷했다. 국내에 5만여대가 공급된 것으로 알려진 마이크로소프트 SQL데이터베이스 서버의 취약성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다행히 공격 원인이 규명된 뒤 공격에 이용된 포트를 차단해 수시간 만에 위기 상황을 종료할 수 있었다.

핵심적 노드를 공격하는 인터넷 질병

네트워크 과학은 사회·생물학의 비밀을 풀어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사회현상이 네트워크에 묶인 모습을 형상화한 이미지.
이런 인터넷 질병은 네트워크 사회에서 필연적 결과인지 모른다. 거미줄처럼 얽힌 네트워크로 이뤄진 인터넷은 우발적인 사고에는 나름대로 대응력을 보이지만 해킹처럼 조직적인 공격에는 매우 취약하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네트워크를 무력화하려고 밤낮없이 틈새를 엿보고 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특단의 전략 역시 네트워크 안에 있게 마련이다. 국가 정보망이 훼손된 것은 ‘허브’라 불리는 핵심적인 노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의 허브들은 거의 무제한의 링크를 가지며 다른 노드와 전혀 다른 특성을 지녔다. 만일 네트워크의 흐름을 결정짓는 허브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관리만 하면 네트워크의 적들을 막아낼 효과적인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모든 복잡계 네트워크는 완전히 무작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무작위 네트워크 모델에서 현실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도구는 주사위가 있었을 뿐이다. 주어진 노드들 간에 링크가 무작위적으로 부여되는 데서 주사위를 떠올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작위적으로 보였던 네트워크에도 질서가 담겨 있었다. 미국 노트르담 대학 물리학과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교수는 웹에서의 야후, 사회 네트워크에서의 커넥터처럼 허브 구실을 하는 노드를 주목한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을 제시했다. 한국과학기술대학 정하웅 교수팀이 웹 지도를 분석한 결과 80% 이상의 웹 페이지가 4개 이하의 링크를 가지고 있었지만 전체의 0.01%에도 미치지 않는 노드는 1천개 이상의 링크를 가진 허브 구실을 하고 있었다. 허브를 찾아내기만 하면 어디든 길을 뚫을 수 있는 셈이다.

복잡계 과학에 따르면 사회·생명현상은 네트워크에 의해 결정된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뇌는 신경세포의 축색돌기로 연결된 네트워크이며 세포는 생화학적 반응에 의해 연결된 분자들의 네트워크다. 인간 사회 역시 네트워크로 통한다. 그것은 우정이나 가족관계, 직업적인 관계로 연결된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먹이사슬과 생태계도 생물종들의 네트워크를 토대로 삼고 있다. 기업과 국가를 경영하고 개인들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분자 수준의 세포들도 놀라운 성능의 통신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다. 세포들의 통신에 관련된 네트워크가 손상되면 질병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노인성질환이나 세균성질환은 세포통신 체계의 마비로 면역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네트워크 이론은 사회학 물리학 생물학 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 온갖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체에서 분자들 간의 화학적 반응에 따른 신진대사나 유전자와 단백질간의 생화학 반응관계도 따지고 보면 허브에 의해 조절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30억년간의 진화를 거치며 세포복제 과정에서 변이가 일어나면서 주요 구실을 하는 허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종양 억제 유전자 p53이 돌연변이체로 변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버트 보겔스타인 박사는 암세포를 이해하는 열쇠는 p53세포 자체가 아니라고 한다. 바로 p53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단백질들의 네트워크인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이 끝이 아니라 시작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유전자들의 연결에 의해 형성되는 중층적 네트워크 지도를 만들어야만 비로소 생명현상을 이해하게 된다.

복잡계 네트워크는 컴퓨터 바이러스의 확산이나 전염병, 유행 등을 파악하는 데도 적용된다. 중국에서 발생해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급성호흡기증후군(SARS) 같은 전염병의 임계값을 예측할 수 있다. 임계값보다 전염성이 낮은 바이러스나 질병, 유행은 사라지고 그 반대의 경우만이 전체 시스템으로 퍼져나간다. 문제는 네트워크에서 임계값이 ‘0’인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바이러스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상황에서 네트워크를 파괴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면역조치가 아니다. 가장 빈번하게 네트워크에 노출되는 문서나 사람을 목표로 하는 표적 면역이다. 네트워크상에서 허브를 판정하려면 링크의 질을 판별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만일 전염병이라면 허브 지역을 주 대상으로 삼아 백신을 분배한다면 체계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의 히든 커넥션은 어디에

네트워크상의 허브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위력을 떨칠 것으로 보인다. 바이러스의 전염과 성격이 유사한 시장 마케팅은 제품의 선택 속도를 높이기 위해 구체적인 허브를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제품과 유행에 과한 소문을 퍼뜨리는 데 있어서 영향력을 끼치는 특정 고객이 있게 마련이다. 실제로 인터넷 소문을 추적해 허브를 밝혀내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도 있다. 미국 오피온사가 개발하는 소프트웨어는 게시판이나 회사의 웹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들에게 특정 번호를 할당한 뒤 모니터링한다. 그 다음 특정 주제 영역에 대한 발언에 반응을 파악해 각 개인의 영향력에 순위를 매긴다. 마인드풀아이사 등도 새로 출현할 경향을 결정하기 위해 자연어 분석기와 언어패턴 분석법 등을 이용,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 있는 글에 점수를 매기는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게시판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 즉 허브를 찾아내 효율적인 마케팅을 하려는 것이다.

복잡계 네트워크는 감추어진 연결고리에 의해 작동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이른바 자기 조절이 존재하는 그물망이다. 수많은 구성원들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통해 만들어내면서 자기 조직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온갖 네트워크는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며 링크의 성립 과정에 특정한 ‘선호도’가 작용하게 된다. 사람들 사이의 친분관계에 따른 사회적 네트워크, 생태계 연결고리망 등은 노드의 링크에 따른 상호의존성에 의해 유지된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노드와 노드, 링크와 링크 사이를 오가면서 각각의 조각을 모아야만 네트워크에 감춰진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 이제 과학은 부분으로 전체를 이해하려는 환원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UC 버클리대 물리학과 프리초프 카프라 교수가 인간 사회를 유기적 네트워크라 일컬으며 ‘히든 커넥션’을 찾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참고 자료

<링크>(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김기훈 옮김, 동아시아 펴냄).

<히든 커넥션>(프리초프 카프라 지음, 강주헌 옮김, 휘슬러 펴냄).

<사이언스 올제> 2003년 6월호 ‘척도 없는 네트워크’.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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