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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짜릿함은 없고 비명만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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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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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고딕 호러 표방한 〈장화, 홍련〉에 대한 아쉬움… 지나친 단순화로 재해석의 묘미 반감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을 끄집어내 ‘고딕 호러’ 영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개인적으로 짜릿한 호기심을 느꼈다. 한국의 고전소설 가운데 가장 괴팍스러운 텍스트, 고딕 호러라는 난이도 높은 개념을 결합해서 오늘날의 관객에게 흥미를 주는 공포영화로 도약할 수 있을까?

김지운 감독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장화, 홍련>은 <장화홍련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므로 옛 소설의 이야기 자체는 거의 해체되었다. ‘재해석’이란 원전의 모티브를 오늘날의 맥락으로 어떻게 옮겨와 이식 혹은 전복할 것인가라는 도전적인 과제를 뜻한다.

고전 〈장화, 홍련전〉에 담긴 욕망의 서사


<장화홍련전>은 계모에게 희생된 자매 귀신이 마을 사또에게 하소연한 끝에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된다는 줄거리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모티브들이 뒤얽혀 있다. 생모와 계모에 대한 선악 이분법이 우선 눈에 띄고,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해서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끝까지 처벌도 받지 않는 아버지-가부장의 존재도 주목을 요한다. 장화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은 낙태를 했다는 혐의 때문인데 여성의 방종한 섹슈얼리티는 가문의 영광을 위협하므로 죽음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결국 자매 귀신을 평정하는 것은 용기 있고 현명한 관료, 그를 믿고 지원해준 왕이라는 제도권의 남성 지배계급이다.

그러나 <장화홍련전>은 마냥 온순하게 넘기기는 어려운, 목에 걸리는 가시가 곳곳에 박혀 있다. 우선 이 모든 갈등의 원천이 경제적·계급적인 문제라는 사실이다. 장화의 생모는 시집올 때 가져온 재산으로 가난했던 집안을 단박에 일으킨다. 반면 계모는 과거에 부유했으나 이제는 몰락한 가문 출신으로, 장화와 홍련이 시집갈 때 재산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 범행 동기였다고 실토한다. 계모는 자신이 낳은 아들 삼형제에게 그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어한다.

말하자면 <장화홍련전>은 몰락한 계층 혹은 구 지배층이 새롭게 부상한 계층의 집안으로 들어와 소란을 일으키면서 아들로 상속되는 경제 질서를 구축하려는 욕망의 서사이며, 이같은 사회적 갈등을 생모-계모라는 여성간의 갈등으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 과정에서 개별적인 남성 가부장의 무능을, 유능한 가부장의 화신인 왕·관료의 힘을 빌어 극복함으로써 남성 중심의 유교적 가부장 질서의 구축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 배경이 세종대로 설정된 것은 아마도 그때가 가장 유능한 유교적 관료국가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장화홍련전>이 진정으로 흥미로운 것은 이런 시도가 얼마나 달성되기 어려운 과제인지를, 현실과 환상 세계를 오가며 무시무시하게 형상화하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사실이다. 쥐를 튀겨서 껍질을 벗긴 다음 장화의 이불 밑으로 집어넣는 계모의 계락도 그렇거니와 결국 그 쥐를 이용해서 복수를 완성하는 장화, 홍련의 집착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비천한 생물과 여성이 결합되어 발휘하는 힘의 무시무시함! 또한 장화, 홍련의 원귀가 밤마다 사또에게 나타나 징징거리니 심약한 사또가 다섯이나 죽어나갔다고 하는 것도 관료 국가에 대한 조롱일 것이다.

영화 <장화, 홍련>을 이해하는 두 번째 키워드인 '고딕 호러'는 고딕적인 거대한 집을 배경으로 어떤 갈등이나 스트레스를 공포의 틀로 소화하는 장르를 뜻한다. 오래되고 거대한 집에 귀신이 들리니 친숙하고 안락해 보이던 가정이 일순간에 낯설고 두려운 공간으로 변모하고, 가정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여성이 갑작스레 히스테릭하고 분열된 존재로 폭로된다. 이러한 불길함의 저변에는 그 시대 나름의 어떤 위기 징후가 짙게 깔리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장화, 홍련>은 고딕 호러의 이같은 장치들을 거의 전폭적으로 차용했다. 여성들이 집안에서 뒤엉켜 저주하고 싸우는 동안 남성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점잖은 체하는 모습은 현대 한국 여성들의 스트레스를 강하게 상기시키면서 보는 이에게 히스테리를 전염시킨다. 이들이 나아가는 외부 세계는 결국 정신병원이다! 염정아-임수정-문근영 등 여배우 세 사람의 앙상블도 대체로 인상적이다.

고딕 호러 장치에도 공허하기만 하네

그런데 <장화, 홍련>이 소설 <장화홍련전>이나 ‘고딕 호러’와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지점이 있다. 영화가 소설로부터 차용한 모티브는 새엄마와 자매의 갈등, 무기력한 아버지, 딱 이것뿐이다. 더욱이 계모는 아버지의 직장동료 출신으로, 병들고 무기력한 생모와 자매의 죽음 혹은 파국을 초래하고 스스로도 분열증에 시달린다. 사회생활하는 여성, 그리고 재혼 가정의 여성이 21세기 고딕 호러의 원흉이란 뜻인가

또한 한국적 고딕 호러의 공간으로 설정된 일본식 가옥, 그 내부를 치장하고 있는 과장된 모던 인테리어가 품고 있는 한국현대사의 맥락은 이들 가족의 갈등과 공포에 아무런 사회적 배경도 제공하지 못한다. 그저 단순히 복잡하고 그럴싸한 미술적 요소에 그치고 마는 셈이다.

<장화, 홍련>은 수많은 힘들이 모여 사회적·성적·제도적 갈등의 파노라마를 펼쳐보이는 고전소설을 왜소하게 ‘재해석’한 뒤, 비싸지만 힘없는 저택에 몰아넣고 시대착오적인 여성의 갈등으로 단순화 시킨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공허함을 메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등장인물의 거친 숨소리, 불길함을 예고하는 카메라와 사운드, 역순으로 전개되며 밝혀지는 비밀, 이상한 귀신 형상 (혹은 자동인형) 같은 스릴러 영화의 관습적인 장치들이다.

김소희 기자 | 씨네21 cwgo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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