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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코엘류와 지코 ‘동병상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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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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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축구대표팀 외국인 사령탑 눈물의 성적표… 스타일 구겨진 두 감독의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

‘0-2와 1-4’.

한국 축구대표팀의 움베르투 코엘류(53) 감독과 일본의 지코(50) 감독이 지독한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코엘류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은 6월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루과이와의 친선 경기에서 0-2로 완패했고, 지코 감독의 일본팀은 이날 나가이스타디움에서 열린 기린컵 개막전에서 아르헨티나에 1-4로 대패했다. 아시아 축구의 대표주자인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남미 강호들의 ‘밥’이 된 것이다. 지난달 5월31일 한-일전에서 일본을 완파한 코엘류 감독은 여유를 부렸지만, 우루과이전 패배 이후 무력감에 빠진 선수들을 어떻게 추스를까 걱정이 태산이다. 지코 감독은 더 불안하다. 한-일전 패배 뒤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던 터에, 나카타 히데토시(파르마) 등 해외파 선수들을 모두 불러들였음에도 아르헨티나와 싸움에서 크게 졌기 때문이다.

남미의 강호들에게 덜미 잡히다


사진/ 코엘류와 지코는 끝내 웃을 수 있을 것인가(교도통신)
성적표도 두 나라 감독이 비슷한 ‘미’ 수준을 기록 중이다. 코엘류 감독은 3월 감독 데뷔 첫 경기인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것을 비롯해 우루과이전까지 4번 싸워 한번 이겼다. 득점도 1골. 극심한 골 가뭄이다. 지코 감독은 더 심하다. 지난해 7월 부임하면서 일본 축구의 미래를 밝혀줄 ‘선생님’으로 칭송받았지만, 아르헨티나전까지 손에 쥔 성과는 1승2무3패로 바닥권이다. 지코 감독은 기린컵 파라과이 경기 뒤 6월19일부터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2003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아시아대표로 나가게 돼 있지만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 속이 바짝 탄다. 2000년 유럽축구대회(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을 4강에 올려놓은 명장 코엘류 감독과 선수 시절 ‘하얀 펠레’로 불린 ‘스타’ 지코 감독, 둘 모두 자존심을 구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축구 전문가들은 일단 “아직은 두 나라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초반기이다. 더 있어야 감독의 색깔이 드러난다”며 섣부른 판단을 유보한다. 그러나 두 나라 지도자의 스타일 차이는 뚜렷해, 앞으로 한-일 대표팀의 팀 색깔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코엘류 감독은 “패스, 패스, 패스”를 강조하는 조직 플레이와, “공이 없으면 빼앗아라, 빼앗은 뒤에는 공격하라”고 주문하는 ‘압박축구’를 지향한다. 철저하게 막은 뒤 정확하고 빠른 미드필드에서의 패스 플레이에 의해서 골까지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중시한다. 6월8일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는 유상철-이을용-김남일 등 미드필더들이 상대 수비수들의 눈에 빤히 보이는 평범한 패스를 주고받아 경기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선수들이 감독이 요구하는 수준에 따라오지 못한 것이다. 반면 지난 5월31일 일본과의 경기 후반전에서는 톱니바퀴 같은 미드필드 운영으로 이길 수 있었다. 선수들의 경험과 지능이 요구되는 고차원적 전술에는 시행착오가 따르지만, 코엘류 감독의 축구 방향만큼은 패스를 통한 조직의 힘 극대화에 쏠려 있다.

이에 비해 지코 감독은 팀이나 조직보다는 ‘개인’, ‘자율’, ‘창조성’에 중점을 두어 팀을 운영한다. 그래서 팀 전체가 함께하는 전술 훈련보다는 선수들을 경쟁시켜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를 발굴해내고, 그때그때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경기에 내세운다. 가령 플레이메이커인 나카타가 있지만 나카무라 스케 또한 역량이 있다고 판단해 포지션이 중복돼도 두 선수를 동시에 출전시킨다. 이런 것은 이전의 필리페 트루시에 감독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본 축구의 가능성”을 떠벌이는 지코는 선수들에게 “축구는 머리로 한다”는 요한 크루이프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열린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뛰라며 ‘축구 개인주의’의 장을 열어준다.

코엘류의 조직력 vs 지코의 자율성

사진/ 지난 5월31일 한-일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모리오카 선수와 공을 다투고 있다.(연합)
이런 두 나라 감독의 축구철학 차이는 선수 시절부터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코엘류 감독은 포르투갈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이다. 수비수는 골잡이에 비해 언제나 빛이 덜 난다. 그러나 자기보다는 팀 전체를 생각하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개인 기술을 자랑하기보다는 동료들과의 협조 플레이가 더 중요하고, 모험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다. 흔히 ‘덕장’, ‘지장’으로 분류되는 코엘류 감독의 지도 스타일은 선수 시절 얻은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됐다. 한국 대표선수들도 “코엘류 감독 밑에서 훈련하는 게 정말 편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팀의 고참급인 최용수도 코엘류 감독 아래서는 순한 양이 된다. “(욕심을 내서) 주연을 하기보다는 (팀 플레이를 위한) 조연 구실을 많이 하겠다”는 최용수의 각오는 팀 플레이를 강조하는 코엘류 감독의 조련술이 빚어낸 것이다.

상대적으로 지코 감독은 브라질 대표팀의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인 ‘용장’이다. 1978, 82, 86년 세 차례의 월드컵에 출전해 5골을 넣은 전문 골잡이. 골잡이는 본디 모험을 밥먹듯 해야 하고, 개인적인 욕심도 내야 한다. 개인의 성공은 곧 팀의 성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도자 경력에서도 코엘류식 축구와 지코식 축구가 구별된다. 코엘류 감독은 포르투갈(1998~2000년), 모로코(2000~2002년) 대표팀 감독을 거쳤다. 그러나 지코 감독은 대표팀 감독 경험이 전혀 없다. 일본 프로축구 가시마 앤틀러스의 총감독을 지낸 적이 있지만 대외업무나 스카우트 등이 주된 역할이었다. 98년 브라질 대표팀의 기술고문 자리 역시 감독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지코 감독은 지난해 7월 부임 때 엄청난 기대를 모았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 출신인데다, 93년 일본 프로축구 J리그 창립에 지대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일본축구협회와 갈등이 심했던 트루시에 전 감독이 만든 조직력 축구에 더해, 지코는 일본 축구의 기술을 배가시켜줄 것으로 여겨졌다. 새롭게 일본축구협회장이 된 가와부치 사부로와는 절친한 사이다. 지난달 한-일전에서도 일본 관중들은 단 한번도 특정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지 않았지만, “지코” “지코”는 90분 동안 외쳐 그에 대한 팬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했다.

아시아 축구의 ‘지존’을 위하여

그러나 성역으로 간주되던 지코 신화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공격을 마음대로 하라는 게 지코의 말이지만, 말만 해서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한-일전 이후 오른쪽 미드필더인 오가사와라는 “팀 차원에서 공격 패턴을 연습하고 싶다. 팀으로서 이 공격을 이렇게 한다라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며 자율·개성 중심의 지휘에 불만을 표시했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그늘 때문에 2004년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안컵대회까지만 계약한 코엘류 감독도 “아직도 색깔을 모르겠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유럽 감독이 선호하는 ‘4백’ 수비라인이 한국 실정에는 맞지 않다는 국내 축구 지도자들의 지적도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시작의 시간들. 코엘류 감독과 지코 감독은 뼈아픈 실패를 바탕으로 더 강한 축구를 세워갈 재능이 있는 지도자들이다. 세계관의 차이가 큰 만큼, 한국과 일본의 축구는 앞으로 새로운 단계에서 아시아 축구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도 있다. 물론 한국팀을 맡은 지 3개월밖에 안 된 후발주자 코엘류 감독이 5월 한-일전에서 지코 감독에 완벽한 한판승을 거둔 게 분명하지만.

김창금 기자 | 한겨레 스포츠부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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