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방 선정비와 진수성찬은 민중 수탈의 산물… 담양 ‘남도전통한정식집’의 다양한 맛
호남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예전의 읍자리 부근에 유난히 비석이 많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만히 다가가 풍진에 희미해진 글자를 한자 한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확인해보면 대개는 ‘전 현감 ○○ 영세불망비’니 ‘전 부사 ×× 송덕비’니 하는 것들이다. 10여년 전 광주에서 나주를 지나 목포를 가게 되었는데, 광주에서 목포 가는 구도로를 따라 예의 그 선정비와 송덕비가 촘촘히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서 나는 이 ‘선정비’들이 봉건시대에 호남 민중들이 얼마나 가렴주구를 당해왔는가를 확인해주는 반증이라고 생각했다.
돌을 세운다는 것은 공덕을 표하기 위한 것이므로, 중국에서도 선정비는 임금이 죽고 나서 장사지내고 신하들이 임금의 덕과 공을 찬양하기 위해 세우는 것에 한정하였다. 곧, 신하나 민간에서는 원칙적으로 선정비, 송덕비를 세우지 못했던 것인데, 후한 때 사람 오장(吳章)이 군수로 있을 당시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그가 죽은 뒤 사람들이 그의 묘 앞에 비를 세움으로써 민간에서도 이때부터 이를 모방했다고 전해진다.
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昇平府) 부사로 있었던 최석(崔碩)이 승진하여 개경으로 돌아갈 때 당시의 관례에 따라 가재도구를 싣고 가느라 말 일곱 마리를 끌고 갔다. 그러나 최석은 가지고 간 말을 그냥 자기 소유로 했던 전임자들과는 달리 개경으로 오는 도중에 낳은 새끼 1마리까지 합해 말 8마리를 승평부로 다시 돌려 보냈다. 이에 승평부 사람들이 그 덕을 칭송하여 비석을 세워 ‘팔마비’라 이름하였는데, 여기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송덕비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선정비는 조선시대로 오면서 급작스럽게 많아졌는데, 명종 때는 이미 한 고을에 4~5개의 비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로 오면 고을마다 선정비, 송덕비가 지천으로 깔려, 개혁 군주 정조는 세운 지 30년 이내의 비석은 모두 뽑아버리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백성들은 탐관오리들의 수탈에 신음하며 초근목피로 근근히 목숨을 유지해가고 있고, 가혹한 가렴주구로 요원의 불길처럼 민란이 일어났던 바로 조선 후기에 ‘선정비’가 그토록 많이 세워졌다니 참으로 시대의 블랙 코미디일 것이다.
나는 수십 가지의 산해진미로 한상을 그득 채우는 호남지방의 상차림 역시 봉건시대 민중 수탈의 유물이자 그 반증이라고 추정한다. 즐길거리가 다양하지 못한 봉건시대에 관리들이나 지방 호족들이 위락으로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먹고 마시는 일이었을 것이다. 호남지방은 산이 깊으면서도 들이 넓고, 또 바다가 연해 있어 물산이 풍부하고 다양했다. 이러한 조건들과 봉건 지배층의 맛을 찾는 욕구가 맞아떨어지면서 백성들은 이를 채집, 조달하는 부역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흉년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백성들이 목구멍으로 억지로 넘겼던 구황식품들 또한 ‘특미’로 개발되어 호남의 상차림을 풍부하게 하는 데 한몫을 했던 것이다.
며칠 전, 구례에서 있었던 어느 모임에 참석하는 길에 최형식 담양군수의 초청으로 담양의 ‘남도전통 한정식집’(061-382-3111)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17년 전 윤혜경(67)씨가 이 집의 문을 열었는데, 이제는 윤씨의 딸 김난이(43)씨가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아 운영해오고 있다. 우리 음식의 깊은 맛은 장과 젓갈에서 나온다. 이 집은 된장, 간장, 고추장 모두를 집에서 직접 담그고 있고, 진석화젓, 전어창자젓, 멍게젓, 토하젓, 돔배젓 등 7가지에 달하는 젓갈도 원료를 사와 윤씨가 직접 담그고 있다. 지글지글 떡갈비, 4년 묵은 김장김치, 3년 된 갓김치를 비롯해 40여 가지에 이르는 진수성찬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니, 이 집에 오면 침착하게 행동하시라. 여주인 윤씨가 손수 빚은 잘 익은 청주 몇 잔에 안주 삼아 반찬들을 골고루 맛보기 전에는 절대 밥숟갈을 뜨지 말 것!

사진/ 장과 젓갈을 모두 직접 담그는 ‘남도전통한정식집’의 40여 가지에 이르는 진수성찬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며칠 전, 구례에서 있었던 어느 모임에 참석하는 길에 최형식 담양군수의 초청으로 담양의 ‘남도전통 한정식집’(061-382-3111)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17년 전 윤혜경(67)씨가 이 집의 문을 열었는데, 이제는 윤씨의 딸 김난이(43)씨가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아 운영해오고 있다. 우리 음식의 깊은 맛은 장과 젓갈에서 나온다. 이 집은 된장, 간장, 고추장 모두를 집에서 직접 담그고 있고, 진석화젓, 전어창자젓, 멍게젓, 토하젓, 돔배젓 등 7가지에 달하는 젓갈도 원료를 사와 윤씨가 직접 담그고 있다. 지글지글 떡갈비, 4년 묵은 김장김치, 3년 된 갓김치를 비롯해 40여 가지에 이르는 진수성찬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니, 이 집에 오면 침착하게 행동하시라. 여주인 윤씨가 손수 빚은 잘 익은 청주 몇 잔에 안주 삼아 반찬들을 골고루 맛보기 전에는 절대 밥숟갈을 뜨지 말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