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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불쌍하다고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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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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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상담해온 이란주씨의 〈말해요, 찬드라〉

“우리 현주 밥은 먹었니?” “예… 으응.”

“먹었어? 뭐 먹었는데?” “과자요.”

“엄마 많이 아프시니?” “예. 마아아니요.”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 이란주 사무국장이 다섯살 현주를 찾아갔을 때 “현주는 머리 싸매고 누워 있는 엄마 옆에서 침침한 방안을 헤치고 딱 손수건만큼만 들어오는 햇볕을 따라다니다가 배고프면 과자 몇개 주워먹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

네팔에서 온 ‘불법체류 노동자’ 현주의 아빠는 출입국 보호소에 갇혀 있고, 한국 사람인 현주의 엄마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 주민등록에 아빠로 오르지 못하고, 곧 강제출국될 현주 아빠는 “우리 현주를 어쩌냐”며 울먹인다.

1995년부터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도와온 이란주 국장이 쓴 <말해요, 찬드라>(삶이 보이는 창 펴냄)에는 그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임신 4개월째에 남편이 한국 여성과 함께 도망간 뒤 만삭이 될 때까지 열심히 일해서 아이를 낳고 쉼터를 찾아온 몽골 여성, 불법체류자의 아이는 받아줄 수 없다는 교육부의 고집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다가 11살에 입학을 한 나잉나잉, 어느 날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죽은 중국인 노동자의 주검 앞에서 조사를 회피하는 경찰과 자신에게 피해가 갈까 전전긍긍하는 한국인 사장….

이 국장은 그동안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의 애환, 아픔과 절망, 그 속에서 가녀리게 피어나는 웃음과 희망을 글로 썼다. 책 마지막 부분에는 ‘최초의 외국인 노동자 파업’으로 알려진 아모르 가구 노동자 100명의 파업을 상세히 기록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으로 담아내려 한 이 글에는 한국인은 악하고 외국인은 무조건 순한다는 이분법도 없고, 그들을 무조건 불쌍한 희생자로만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고, 가족이 보고 싶고, 파업의 대열에서 이탈해 혼자만 한국인 사장에게 잘 보이려고도 하고. 그러나 한국 기업이 필요해 하루 10~12시간씩 일을 시키면서도 외국인은 노동자가 아니고 연수생일 뿐이라고 우기는 한국의 제도는 이들을 짓밟는다. 한국인들이 이들에 대해 가지는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은 더욱 끔찍하다. 네팔의 찬드라 구릉은 지갑을 놓고 와 밥값을 내지 못해 경찰에 붙잡히고 한국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정신병자라는 판정을 받고 강제로 6년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갇혔다. “미치지 않았고 네팔에서 왔다”는 그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이란주 국장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외면해온 것은 기가 막히지만, 분명히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며 “일부 노동법이 적용되고 불법체류 노동자의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것 등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관심 높아가지만, 그래도 아쉬운…

최근 문화방송 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인권영화제가 이 문제를 주제로 삼는 등 조금씩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도 다행스럽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짠하다, 마음 아프다’는 반응이 많지만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고, 경제 위기론에 너무 민감한 점도 아쉽다. 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손에 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너무나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 대해 “또 그 얘기야. 외국인 노동자들 불쌍하다는 빤한 얘기지?”라고 말하기 쉽겠지만 이제는 “왜 현실은 바뀌지 않는가”를 물어야 할 때다. 올해 초 외국인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고용허가제를 시행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 언론들이 임금이 오르고 파업을 할 수도 있다며 위기론을 퍼뜨려대고, 4월 국회에서 공청회까지 열렸지만 의원들의 반대로 법안심사 소위에도 올라가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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