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독특한 향기, 애니시 카푸어 조각전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지난해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내뱉은 이 말은 승부사로서 그의 남다른 열정을 대중에게 인상 깊게 각인시켜 주었다. 배고프다는 말은 배가 비어 있다는 말이다. 비어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없다는 것이 곧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히딩크의 경우 없다는 것은 열정과 야심의 존재 이유였다. 없는 것은 있는 것의 어머니인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천하만물은 있음에서 나오고, 있음은 없음에서 나온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라고 했다.
네거티브 볼륨과 포지티브 볼륨
애니시 카푸어의 조각들이 늘어서 있는 서울 소격동 국제화랑(02-735-8449) 전시장에서 우리는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임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다. ‘없음의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있음의 있음’, 곧 있음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특히 물질적으로 풍족한 현대사회에서 이 풍족함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없음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카푸어의 작품은 그런 반성과 사색을 위한 매우 의미 있는 매개체이다.
카푸어의 작품은 물리적인 대상에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을 주된 형식으로 하고 있다. 대리석 등의 돌과 벽에 구형, 사각형 등의 구멍을 뚫거나, 강철로 오목한 반사경을 만들거나, 수지에 기포를 불어넣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의 작품은 돌이든 강철이든 그 나름의 물질성을 강하게 드러내 보이면서도 그것이 강조하는 것은 결국 빈 공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아이러니컬한 성격을 지닌다. 조각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네거티브 볼륨을 표현하기 위해 포지티브 볼륨을 극도로 강조한 작품인 것이다.
네거티브 볼륨이란 조각의 형상 사이사이에 드러난 빈 공간을 말한다. 사람들은 조각을 감상할 때 조각의 ‘있음’에만 주목하기 때문에 네거티브 볼륨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근대 들어 조각이 단순히 사물을 만드는 예술이 아니라 공간을 창조하는 예술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네거티브 볼륨은 포지티브 볼륨 못지않게 중요한 감상 대상 혹은 관조의 대상이 됐다. 카푸어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네거티브 볼륨을 우선적으로 부각시킨 작품, 그로 인해 포지티브 볼륨의 물질성이 대칭적으로 강조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는 결국 우리 시대의 사유와 가치 지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 바, 속도에 반해 느림을 이야기하고, 소유에 반해 무소유를 이야기하며, 가부장 문화에 반해 페미니즘 문화를 이야기하고, 서구적 물신주의에 반해 동양적 초월주의를 이야기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작가 자신이 의식했든 그렇지 않든 카푸어의 작품은 동양의 음양이론과 긴밀히 보조를 맞추고 있다. 달을 노래하고 님을 노래하고 무위자연을 노래한 동양의 예술은 서양의 그것에 비해 기본적으로 음의 미학을 지향한다.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나 런던과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푸어는 그 미학을 서구적 양의 미학, 곧 재료의 즉물성을 좀더 뚜렷이 살린 작품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양적 사고의 서양적 번안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그의 작품은 그만큼 독특한 향기를 내뿜으며 무와 유에 대한, 혹은 공과 색에 대한 물질적 사색, 나아가 물질의 사색을 드러내 보인다. 없다는 것이, 비어 있다는 것이, 이토록 신비하고 넉넉하고 충만한 것인가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물질은 태초부터 그렇게 없음을, 비움을 그리워해 왔는지 모른다.
이주헌 | 미술평론가·아트스페이스서울 관장

사진/ 〈성전〉(2003년), 애니시 카푸어, 소격동 국제갤러리, 6월29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