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 인권, 그 위선의 역사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인들의 인권을 위한 해방전쟁”이라고 강변했던 것은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영국의 국제문제 저널리스트 커스틴 셀라스에 따르면 강대국의 이권을 위해 약소국 국민의 인권을 동원하는 수법은 역사가 길다. 그는 <인권, 그 위선의 역사>(The rise and rise of human rights)에서 수많은 역사 자료들을 촘촘히 엮으면서 ‘서구’가 ‘인권’의 개념을 어떻게 ‘발명’하고 이용해왔는지 보여준다.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객관적인 개념처럼 보이는 인권에도 권력과 정치의 그물이 촘촘하게 얽혀 있었고 이권을 챙기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유엔의 원래 이름은 ‘열강연합’이었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유엔은 “전체주의 봉쇄정책, 특히 소련을 겨냥한 견제의 원칙에 따라 구성된 열강들의 협의체”였고, 이를 가리는 가면으로 ‘세계인권선언’과 몇 가지 인권관련 기구들이 만들어졌다.
유엔의 출범 직후 열린 뉘른베른크와 도쿄 전범재판은 “승전국의 전쟁범죄를 다루지 않을 것임을 명문화한 채” 시작돼 연합국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냉전시대에 인권은 주로 소련을 비난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1947년 11월 영국은 유엔에서 소련의 강제노동을 향해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이 비난문을 작성했던 영국 정부의 실무자들은 “이런 종류의 연설문을 써내는 요령은 오직 하나, 아주 폭넓은 범위를 다루면서도 우리의 식민지에서 벌어진 문제들은 과감히 무시하는 것”이라고 썼다.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영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영국 정부의 이익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만 활동했다.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 설치를 반대하고 미군의 행위를 대상으로 삼지 말 것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당연한 결과다.
서구 강대국들의 ‘인권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간섭은 비서구 약소국 희생자들의 상황을 전혀 개선시키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인권 캠페인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하다면 희생시켜도 되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잊혀져버린 희생자들의 명단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대통령과 총리, 자본가와 구호단체, 외국 특파원과 종군 사진기자, 팝스타와 모델 모두 불의의 현장으로 구름같이 몰려 간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곳으로 옮아가면 희생자들은 다시 한번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그들의 실제 고통에는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