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초연 이후 1천회 넘게 공연된 <사랑은 비를 타고(사비타)>의 삼총사가 8년 만에 뭉쳤다. 배해일(연출), 오은희(극본), 최귀섭(음악). 시연회를 며칠 앞두고 연습현장에서 만난 이들 세 사람에게선 긴장과 흥분이 전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탭 뮤지컬’을 내건 <마네킹>이 얼마나 인기를 모을지 점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아무리 노련한 베테랑들이라고 해도 불안과 설렘은 떨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배해일씨는 “화려한 발놀림이 살아 있는 탭 뮤지컬을 보여주겠다”고 자랑하다가도 이내 걱정을 드러냈다. “ <마네킹>을 막상 올리려고 보니 주변에 번역·수입 뮤지컬이 워낙 많아 목이 죄어오는 느낌이다. 외래 수종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속에서 홀로 서 있는 토종 소나무 같다.”
<마네킹>은 지난해 봄 배씨가 오은희씨와 찻집에서 만나 우연히 탭 뮤지컬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시작됐다. 배씨는 ‘언젠가는 탭 뮤지컬을 해보리라’ 작정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백화점, 마네킹이란 소재를 얹어보자고 의견이 더해졌다. 얼마 후 오은희씨가 시놉시스를 보내왔고, 최귀섭씨에게 음악을 맡겼다. “이번처럼 서로 전화도 별로 안 하면서 작업해본 건 처음이다. 각자 무엇을 원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치가 빤해서 척척 알아서 맞춰준다. 이런게 ‘콤비’인가 보다.”
대본이 나오고 음악 담당도 갖춰졌지만, <마네킹>에서 가장 중요한 탭댄스를 가르쳐줄 만한 안무가가 국내엔 없었다. 별수 없이 해외로 눈을 돌린 제작진은 일본에서 유명한 탭댄서이자 안무가로 이름난 도미타 가오르를 찾아냈다. 하지만 도미타 가오르는 일정에 쫓겨 한국에 계속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일본으로 악보를 보내면 그곳에서 안무를 구상해 한국에 올 때마다 배우들에게 가르치는 상황이 계속됐다.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한번 작곡한 음악은 안무가 정해지면 다시는 바꿀 수 없었다.”
예전보다 제작 여건이 훨씬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투자자들이 ‘토종 소나무’에 돈을 풀지 않는 것은 비슷했다. 수입 뮤지컬의 경우엔 몇십억원씩 턱턱 쏟아지면서도, <마네킹> 제작에 필요한 7억원은 쉽지 않았다. 배해일씨는 투자자들을 만나 거꾸로 <뮤지컬>이란 게 쉽사리 돈을 벌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결국엔 며칠 뒤 한 투자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과장하지 않는 말투에 믿음이 간다며 돈을 준다고 했다.”
배씨의 작품은 음악과 배우들의 대사가 잘 어우러져 노래로도 관객들에게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풍선껌처럼 가벼운 줄거리에 발랄한 탭 리듬이 혼합된 <마네킹>이 불경기에도 좀처럼 식지 않는 뮤지컬 바람에 순항할지 주목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사랑은 비를 타고〉이후 8년 만에 삼총사가 만났다. 왼쪽부터 오은희·배해일·최귀섭씨.(김진수 기자)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