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아리랑 문학관’ 개관… 작가 체취 느껴지는 육필원고·소장품 등으로 알차게 꾸며져
작가 조정래(60)씨와 함께 전남 벌교에 갔을 때였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읍의 역 앞 상가 건물 2층에서 ‘태백산맥’이라는 옥호를 단 노래방을 발견했다. 그 이름의 저작권자라 할 작가 조씨는 자신의 소설 제목이 한갓(?) 노래방의 간판으로 쓰이고 있는 데 대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일행은 그 집에 재미삼아 들어가 노래 몇곡을 부르고 나왔댔다. 주인 아저씨는 저작권자의 출현에도 전혀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서비스 마른안주라도 내놓을 법했건만, 소식이 없었다.
〈태백산맥〉과 노래방, 그리고 벌교
‘노래방 태백산맥’이 말해주는 바는 분명했다. 벌교는 <태백산맥>의 고장이며 벌교와 <태백산맥>의 그런 관련성이 모종의 상업성을 보장한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벌교에는 <태백산맥>의 배경을 눈으로 확인하려는 독자들의 발길이 1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노래방 주인은, 비록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적어도 완고한 반공 이데올로기에 발목 잡혀 <태백산맥>의 기념사업을 세기를 넘겨가며 질질 끌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보다는 자유롭고 현실적이었다.
전남 벌교가 <태백산맥>이라는 복덩이를 향해 발길질을 계속하고 있는 사이, 전북 김제는 <아리랑>이라는 먼 친척과의 희미한 끈을 놓치지 않고 지역 홍보와 관광 목적에 적극 활용하고 나서 대조를 보였다. 지난 5월16일 오후 2시 전북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 벽골제 박물관 맞은편에서는 ‘아리랑 문학관’ 개관식이 열렸다. 김제를 무대로 삼은 조정래씨의 두 번째 대하소설 <아리랑>을 중심으로 작가 조씨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그런데 <태백산맥>의 무대가 벌교라고 말하는 것과, <아리랑>의 무대가 김제라고 하는 것 사이에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태백산맥>은 그야말로 벌교와 인근 지역으로 이야기의 대부분이 수렴되는 구조를 지니는 데 반해, <아리랑>은 비록 김제에서 출발하기는 하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군산과 도쿄, 만주와 하와이, 연해주와 남태평양으로까지 공간이 확장되는 특성을 지닌다. 12권짜리의 명실상부한 대하소설 <아리랑>의 제1권 첫 장면은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방영근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가기 위해 어머니와 동네 머슴 지삼출과 함께 김제·만경 초록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장면이다.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일망무제의 평야와 이따금씩 언덕처럼 솟아 있는 낮은 야산으로 이루어진 풍경은 소설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여일했다. “호남평야 안에서도 김제·만경 벌은 특히나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고 있는 곳이었다./ 눈길이 아스라해지고 숨길이 아득해지도록 넓은 그 벌판이 보기에 너무 지루하고 허허로울까 보아 조물주는 조화를 부린 것일까. 들녘 이곳저곳에 띄엄띄엄 야산들을 앉혀놓고 있었다.”(<아리랑> 제1권 11쪽) 아리랑 문학관이 들어선 자리는 소설 속에서 방영근들이 걸어갔던 곳과 흡사한 망망한 초록 들판 한가운데였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따라 파문처럼 퍼져 나가지만, 아리랑 문학관은 <아리랑>의 출발점과 그 중심이 바로 여기임을 강조라도 하듯, 김제 벌판 한복판에서 우뚝하였다. 꼼꼼히 모은 89종 350여 가지 자료들
사실 2층짜리 문학관의 전면에는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이라는 글씨가 뚜렷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이 문학관이 소설 <아리랑>을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정래씨의 문학세계 전반을 기리는 일종의 작가 기념관으로서도 구실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올해로 꼭 갑년. 살아생전에 제 이름의 문학관이 세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조정래씨는 드문 행운의 소유자라 할 만했다. 그 행운의 강도와 크기를 말해주듯 개관 당일의 그는 다소 상기되고 고무된 모습이었다. “개인의 삶은 유한해도 역사와 그 역사를 다룬 문학은 무한하다. 우리 민족사에 대한 질문을 담은 내 대하소설 세편은 언제까지고 살아남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딱하고 위압적인 외양과는 달리 문학관 내부는 비교적 알차고 요령껏 꾸며져 있었다. 1층 입구를 지나 막바로 마주치게 되는 정중앙에는 <아리랑>을 직접 손으로 쓴 육필원고 2만장이 거인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와 함께 <아리랑>의 시대적 배경과 소설 줄거리를 사진과 함께 병치해놓은 설치물은 소설의 세계를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었다. <아리랑> 취재를 위해 갔던 만주 등지의 취재 노트, 카메라와 녹음기, 신발, <아리랑>의 신문 연재본 등도 보였다. ‘1990. 4. 18 장춘에서 할빈행 열차 안에서 본 벌판의 방풍림들’이라는 제목의 메모와 볼펜 그림처럼 소설의 배경이 될 장소를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에 대한 욕구와 함께 그림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다는 작가의 내력을 잘 보여주었다.
문학관의 전시물이 <아리랑>에 관련된 것으로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중고교 졸업 앨범과 논산훈련소에서 작성한 일기장, 제대증, 평소 가까이 두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도모했다는 호두를 닮은 가래 두알과 염주, 안마기와 진찰권 등 작가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수많은 물품들이 책걸상과 필기구 등과 함께 살뜰하게도 전시되어 있었다. 자료에 따르자면 모두 89종 350여 가지의 물품들이었다. 문학관이 세워질 것에 대비해 처음부터 작정하고 모아둔 듯한 모습이었다. 전시물들을 둘러본 이들은 작가의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에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었다.
이날 개관식에는 문학평론가 임헌영·황광수·진형준·김재용씨, 소설가 최인석·김영현·김훈·정도상·방현석·전경린씨, 시인 박남준·이문재·이산하씨 등 문인들과 출판사 대표들, 그리고 박태준 전 국무총리와 권근술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박원순 변호사,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 150여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bon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사진/ 〈아리랑〉의 무대 김제 벌판에 선 문학관. 소설이 태어난 역사를 담은 자료들이 꼼꼼하게 전시돼 있다.
전남 벌교가 <태백산맥>이라는 복덩이를 향해 발길질을 계속하고 있는 사이, 전북 김제는 <아리랑>이라는 먼 친척과의 희미한 끈을 놓치지 않고 지역 홍보와 관광 목적에 적극 활용하고 나서 대조를 보였다. 지난 5월16일 오후 2시 전북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 벽골제 박물관 맞은편에서는 ‘아리랑 문학관’ 개관식이 열렸다. 김제를 무대로 삼은 조정래씨의 두 번째 대하소설 <아리랑>을 중심으로 작가 조씨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그런데 <태백산맥>의 무대가 벌교라고 말하는 것과, <아리랑>의 무대가 김제라고 하는 것 사이에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태백산맥>은 그야말로 벌교와 인근 지역으로 이야기의 대부분이 수렴되는 구조를 지니는 데 반해, <아리랑>은 비록 김제에서 출발하기는 하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군산과 도쿄, 만주와 하와이, 연해주와 남태평양으로까지 공간이 확장되는 특성을 지닌다. 12권짜리의 명실상부한 대하소설 <아리랑>의 제1권 첫 장면은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방영근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가기 위해 어머니와 동네 머슴 지삼출과 함께 김제·만경 초록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장면이다.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일망무제의 평야와 이따금씩 언덕처럼 솟아 있는 낮은 야산으로 이루어진 풍경은 소설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여일했다. “호남평야 안에서도 김제·만경 벌은 특히나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고 있는 곳이었다./ 눈길이 아스라해지고 숨길이 아득해지도록 넓은 그 벌판이 보기에 너무 지루하고 허허로울까 보아 조물주는 조화를 부린 것일까. 들녘 이곳저곳에 띄엄띄엄 야산들을 앉혀놓고 있었다.”(<아리랑> 제1권 11쪽) 아리랑 문학관이 들어선 자리는 소설 속에서 방영근들이 걸어갔던 곳과 흡사한 망망한 초록 들판 한가운데였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따라 파문처럼 퍼져 나가지만, 아리랑 문학관은 <아리랑>의 출발점과 그 중심이 바로 여기임을 강조라도 하듯, 김제 벌판 한복판에서 우뚝하였다. 꼼꼼히 모은 89종 350여 가지 자료들

사진/ 개관식에 참석한 조정래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