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헤인스 감독의 ‘천국보다 먼’ 결혼이야기 〈파 프롬 헤븐〉… 그녀가 ‘진정한 삶’을 살게 되기를
또 불륜 얘기이군. 지겨워. 한국이나 미국이나 불륜이 너무 상투적인 소재, 관습적인 상상력이 돼버렸어. 대체 왜 자꾸 중년의 남녀가 자아 정체성을 회복하는 이야기에 불륜이 동원되는 거지? 무엇보다, 여성들은 왜 ‘낯선’ 남성의 손길이 와닿아야 자기 삶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거야? 〈파 프롬 헤븐〉의 극장 예고편을 보면서 막연히 이런 불만이 차올랐다.
듣던 대로 토드 헤인즈 감독의 〈파 프롬 헤븐〉은 불륜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불륜이 좀 이상하다. 이 영화의 불륜은 상투적이기는커녕,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우리를 몸서리치게 만든다.
두 남자의 이기적인 선택
모든 건, 여주인공 캐시(줄리안 무어)가 남편 프랭크(데니스 퀘이드)와 다른 ‘남자’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 시작된다. 캐시는 남편의 성공, 화목한 가족을 토대로 한 안온한 중산층의 삶에 진심으로 만족해왔다. 그런데 남편이 모든 것을 망치려고 한다. 캐시는 어떡하든 그걸 막으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의 동성애를, 불륜을 ‘질병’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래야 치유가 가능하고, 그래야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건 오기나 자존심일 것이다. 자기의 전부를 쏟아 가꾸어온 삶이 허물어지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오기.
하지만 역부족이다. 한번 벌어진 일상의 균열은 다시 메워지지 않는다. 어느 날 남편은 엉엉 울면서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혼을 요구한다. 혼자가 된 캐시는 그녀가 지옥 같은 시간을 헤맬 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 하지만 그녀의 현재를 지키기 위해 뿌리쳤던 흑인 정원사 레이먼드를 찾아간다. 하지만 아직 흑백의 분리가 심하던 그때 그 시절, 백인 여성에게 연정을 품은 대가로 고통을 맛본 레이먼드는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들은 그렇게 가버린다. 프랭크는 가족과 아내에 대한 의무, 도덕을 내던지고 자기의 욕망을 따라가고 레이먼드는 현실의 논리를 좇아간다. 그들은 번민하지만, 결국 ‘덜 손해보는’ 길을 택한다. 프랭크는 오랫동안 유예시켜온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레이먼드는 캐시와의 결합이 가져올 곤경을 사전에 차단한다. 그들의 선택은, 고통의 깊이와 무관하게, 이기적이다. 프랭크는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처럼 욕망을 보채는 애어른처럼 보였다. 반면 미리 뒷걸음질치는 레이먼드는 비겁해 보였다.
감독의 정교한 이야기 솜씨
선택의 기회가 없었던 캐시는 그들이 남기고 떠난 삶을 짊어진다. 천국을 꿈꿨던 건 아니지만, 천국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을 줄도 몰랐다는 돌연한 깨달음, 그 앞에서 그녀는 막막해진다. 그리고 그녀의 막막함에 우리까지 아득해진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정교하고 사려 깊은 이야기 솜씨로 어느새 우리를 그녀의 순례에 동참시킨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녀와 같은 고독한 순례자였음을 아프게 깨닫도록 한다.
만추에서 시작된 〈파 프롬 헤븐〉은 겨울이 아니라, 초봄에 끝난다. 그녀는 이제 막 겨울을 지나왔다. 그녀는 집안에서조차 벗지 않았던 화려한 원피스를 벗고 타이트한 정장을 차려입는다. 캐시는 혼자가 됨으로써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그녀가 진정으로 ‘그녀의 삶’을 살게 되기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하얀 목련은 그런 그녀에 대한 축복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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