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의 철학적 구조 반복하는 〈매트릭스2: 리로디드〉… 거대한 액션 볼거리로 물량공세
4년 만에 돌아오는 <매트릭스2: 리로디드>(5월23일 개봉)의 첫 부분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싶다”고 말한다.
<매트릭스>에서 너무 많은 것을 펼쳐 보였으며 상상할 수 없었던 성공을 거둔 제작진은 이런 고민을 할 만하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은 매트릭스가 제공하는 가상현실일 뿐이며 인류는 기계의 에너지원으로 사육되고 있다”는 상상을 스크린 위에서 펼쳐 보인 <매트릭스>(1999년 개봉)는 확실히 하나의 혁명이었으니까.
영화라기보단 ‘거대한 현상’
검은 선글라스와 의상, 트리니티의 발차기를 360도 회전으로 보여주고, 네오와 요원이 공중에서 격돌한 채 정지하는 화면을 지난 4년 동안 수많은 대중문화들이 베끼고 우려먹고 낄낄거림으로써 <매트릭스>는 거대한 이미지가 되었다. 마치 감독 워쇼스키 형제가 근거로 삼았다는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나 표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 이론처럼 <매트릭스>는 단순한 <매트릭스>가 아니다. <…리로디드>는 이미 하나의 영화라기보다는 거대한 현상으로 다가온다.
전편에서 대사로만 등장하던 지구의 땅 밑 한가운데 있는 최후의 인간 도시 ‘시온’이 주요 무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시온을 향해 수십만개의 기계 추적자(센티넬)들이 다가오고 있다. 인류가 멸망할 위기에서 네오 일행은 매트릭스 시스템의 핵심에 들어가 시스템을 파괴하려 한다. 당연히 길목에는 네오를 추격하는 요원 ‘스미스들’과 시스템의 삭제 명령을 거부하고 살아남은 프로그램들이 있고, 네오,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는 이들과 처절한 전투를 벌인다.
확실히 <…리로디드>는 <매트릭스>만큼 성큼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1999년에 살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2199년이며 이미 하늘이 타버려 폐허가 된 지구에서 자궁 같은 배양기에 갇힌 인류가 온몸에 구멍이 뻥뻥 뚤려 전선과 연결된 채 기계들의 에너지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매트릭스>의 대담한 ‘세계 인식’을 뛰어넘을 만한 인식의 충격이 속편에는 없다.
<매트릭스>가 몰고온 충격은 철저하게 게임과 쿵후 영화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또 하나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하나하나의 의미의 문을 열기 위해 <신약성서>와 보들리야르, 푸코, 융 심리학, 플라톤, 들뢰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장자> 아니메라는 수많은 ‘열쇠’가 필요한 복잡한 결들에 있었다. 현실을 낯설어 보이게 하는 철학하는 블록버스터!(<매트릭스> 홈페이지(whatisthematrix.com)의 philosophy 항목에는 <매트릭스>의 철학에 대한 많은 논문들이 올라 있다)
<…리로디드>의 철학은 전편이 보여준 세계관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아주 조금씩 거리를 둔다. 전편에서도 네오가 직면했던 선택의 문제-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중 무엇을 삼킬 것인가, 요원에게 잡힌 모피어스를 살릴 것인가 시온을 구하기 위해 죽일 것인가- 를 변주하는 것이 주요한 주제가 된다.
100명의 ‘스미스들’과 네오의 결투 장면
자신이 ‘구원자’인 ‘그’(the one)임을 받아들였던 네오는 속편에선 아예 신부의 사제복과 비슷한 의상을 입고 나와 소명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조금씩 매트릭스와 거기에 연결된 프로그램과 인간의 관계, 선택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다시 만난 여자 예언자 오라클에게 “당신이 이미 다 알고 있다면 나는 선택을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고 “자넨 선택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게 아니야.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온 거야”라는 답을 듣는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매트릭스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운 선택을 원하는 인간 세계를 구원해내는 역할이 구원자이며, 구원자는 그래서 완벽한 체계처럼 보이는 체계의 불규칙성과 결함에서 나타난다.
<…리로디드>는 자유의지와 숙명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삶에서 어디까지가 숙명이고 어디까지가 자유의지일까. 숙명이 있다면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있는가. 우리의 세상은 얼마만큼 미리 결정돼 있으며 인간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아니 선택할 수 있긴 한 건가. 우리가 선택한다고 믿고 있지만, 모든 것이 이미 결정돼 있는 것은 아닌가. 저항과 예언과 구원마저 이미 시스템 안에서 계산되고 결정돼 있는 산물이고 반복될 뿐이라면 시스템에서 빠져나와 스스로의 감정을 가지고 네오에게 복수하려는 스미스 요원이나 시스템의 삭제명령을 거부한 채 도망다니는 악당 프로그램들을 통해 불규칙성은 더욱 강조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불규칙성은 매트릭스의 ‘양념’일 뿐이라면? 네오가 예측 가능성을 뛰어넘어 얼마나 우연한 또는 예측 불가능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가 구원의 가능성이며, 변수는 사랑이다.
이거 너무 빤한 이야기 아니냐고? 맞다. <…리로디드>에서는 전편의 철학적 구조를 거의 그대로 반복한다. 새로움이 줄어든 대신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거대한 볼거리와 두배로 는 제작비를 과시하는 액션 장면들이다.
트리니티가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리며 공중으로 돌면서 전투를 시작하는, <공각기동대>의 시작과 겹치는 첫 장면부터 영화의 많은 부분은 배우들이 엄청난 부상에 시달리며 찍었다는 액션과 컴퓨터그래픽의 연속이다. 그런데 이 액션이 뭔가 대단한 것을 보여주겠다는 물량공세의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끊임없이 자기를 복제하는 100명의 ‘스미스들’과 네오의 결투 장면은 액션 장면 중 가장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전편의 액션이 내용과 긴밀하게 얽히면서 내용을 끌고 나간 것과는 달리, 아예 고속도로를 직접 만들고 15분 분량을 보여주기 위해 48일 동안 촬영했다는 고속도로 추격 장면은 지나치게 늘어진다. 또한 매트릭스에 접근하는 열쇠를 쥔 키메이커를 구하기 위해 메로빈지언의 호화저택에서 칼과 창, 도끼를 들고 싸우는 장면은 사족에 가깝다.
전편보다 빈약한 속편은 숙명일까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인간들의 최후 도시 시온에서 벌어지는 에로틱한 테크노파티 장면과 군중집회 장면은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며 기계 세계에 저항하는 세계라고 보기에는 너무 전체주의 냄새가 강하며, 인도풍 옷을 입은 시온 사람들의 모습에선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성에 빠진 빈곤한 상상력까지 드러낸다. 빛으로 된 문을 통과해 창조자를 만나려는 피조물들에 대한 주제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블레이드 러너>에서 너무 여러번 반복됐다.
“프랑스어는 욕하기 딱이지”라고 비아냥거리는 악당 메로빈지언의 이름이 프랑스 역사 초기의 메로빙거 왕조에서 온 것도 지나치게 이라크 공습 이후 미국인의 정서에 구애하는 격이어서 불편하다. 슈퍼맨과 똑같이 하늘을 나는 네오는 어떤가.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미리 시사회를 본 특권을 휘둘러 결론을 말해버릴까 걱정하지는 마시라. <…리로디드>에 결말은 없다. 11월에 개봉하는 <매트릭스3: 레볼루션>으로 이어진다는 자막이 끝이니까. <…레볼루션>은 가상세계가 아닌, 폐허가 된 현실의 지구를 배경으로 네오 일행과 기계들이 전면전을 벌인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다.
참, 전편보다 빈약한 속편은 숙명인가 선택인가.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