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2: 리로디드>가 기대보다 못하다고 불평하는 분들을 이해한다. 1편이 올려놓은 기대가 컸던 탓이다. 영화만으로는 만족 못하시겠다는 분들을 위해 <애니 매트릭스>를 추천한다. <애니 메트릭스>는 <리로디드> 개봉 직후 DVD로 한국에서도 출시될 예정이다. 아홉개의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이루어진 에피소드 중 <세컨드 르네상스: 파트1> <파트2> <프로그램> <형사 이야기>는 공짜로 내려받을 수 있다(www.theanimatrix.com).
<애니 매트릭스>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보여주지 못한 긴 역사와 주변 이야기를 담은 외전이다. 전체 분량은 한 시간 반가량. 아홉개 중 네개는 워쇼스키 형제가 대본을 썼고, 나머지는 매트릭스라는 소재를 갖고 각각의 감독들이 상상력을 펼쳤다. 전 작품 모두 미국과 일본의 정상급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만들었다.
<오시리스 최후의 비행>은 <파이널 판타지> 제작팀이 만들었다. 숨막히는 3D로 106분을 채운 <파이널 판타지>도 좋은 시도였지만, 10분도 채 못 되는 이 작품이 그보다 더 생동감 넘친다고 단언한다. 기계들이 인간들의 근거지 시온을 향해 구멍을 뚫는 것을 발견한 오시리스호. 벌떼처럼 몰려드는 기계들의 추격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한편, 가상세계 매트릭스에 밀사를 띄워 이 사실을 알린다. 이 작품은 <…리로디드>의 극장용 예고편으로도 쓰였다. <오시리스…>는 보통 예고편과는 달리 기승전결이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선사해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세컨드 르네상스>는 인간의 르네상스에 대치되는 기계의 르네상스를 일컫는다. 관객을 컴퓨터 사용자로 가정하고, 시온 아케이드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역사파일 12-1을 읽는 형식으로 꾸몄다. <세컨드 르네상스>는 무엇보다 창세기의 구조를 빌려온 점이 눈에 띈다. “태초에 인간이 있었다. 인간이 그 형상을 따서 기계를 만들었다”로 시작되는 또 하나의 창세기다.
어느 날 기계 “B166ER”이 주인을 살해한다. 법정에 선 B166ER은 “죽고 싶지 않았다”라고 변론하지만, 인간은 기계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인 기계 대 인간의 대치가 일어난다. 기계들은 “백만 기계인간 행진”을 단행하지만, 인간에 의해 살육당한다. 여기서 백만 기계인간 행진은 미국 흑인의 인권향상을 위해 치러진 백만인 행진에서 빌려온 것이다. 결국 기계인간들은 “약속된 땅”에 “01”(비트의 최소 단위)이라는 나라를 세운다. 이에 인간은 기계의 에너지원인 태양빛을 차단하기로 하고 “오퍼레이션 다크 스톰”을 단행한다. 그 결과, 기계들은 인간들을 건전지 삼아 살아간다. <청의 6호>의 마에다 마히로 감독은, 인간과 기계의 주종이 바뀌는 과정을 기계의 입장도 인간의 편도 아닌 제3의 시각에서 담아내고 있다.
철학적 함의를 담은 작품도 눈에 띈다. 피터 정이 감독한 <매트리큘레이티드>(Matriculated)는 가상현실을 이용해 기계를 인간쪽으로 돌려놓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역 매트릭스로 기계를 바꿔놓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도대체 현실이 무엇인가”를 놓고 동료와 논쟁을 하는 주인공은 결국 “나의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을 알 뿐, 그 이외의 것은 모른다”는 말을 내뱉는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발상일까.
<키드 스토리> 역시 재미있는 암시를 숨기고 있다. 나의 일상이 진짜 현실일까, 하고 의문을 가진 고등학생이 있다. 수업시간에도 멍하니 있기 일쑤다.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서 네오는 말한다. “네가 안다는 걸 그들이 안다. 도망쳐.” 매트릭스 요원들의 추격을 받은 그는 네오에 대한 신념을 갖고 옥상에서 스스로 떨어진다. 그 결과 그는 매트릭스를 탈출, 꿈에 그리던 네오와 만난다. 트린은 “스스로 자각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라며 감탄한다. 빨간 약을 먹지 않고도 매트릭스에서 탈출한 첫 번째 사례가 된 것이다. 그의 이름이 칼 포퍼라는 것은 우연일까. 칼 포퍼는 유토피아를 부인하고 비판에 열린 사회를 제시한 철학자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는 네오를 아다니는 철부지로 나온다.
이 외에도 <수병위인풍첩>의 가와지리 요시아키가 감독한 <프로그램>, 달리기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매트릭스의 실체를 엿보게 된 남자 이야기 <월드 레코드>, <메모리즈: 그녀의 추억>의 모리모토 고지가 감독한(저 너머에) 등의 작품들 모두 완성도가 높다.
<애니 매트릭스>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영화를 뛰어넘어 <매트릭스>의 세계를 넓혔다는 점에 있다. 이제 관객은 매트릭스의 과거, 매트릭스의 버그, 인간이 만든 역 매트릭스 등 더 폭넓은 매트릭스에 몰입할 수 있다. 이뿐인가. <엔터 더 매트릭스> 게임, 매트릭스 폰, 매트릭스 카드, 매트릭스 세계관을 분석한 책, 매트릭스 설정집 등 매트릭스는 자기 세계를 넓혀만 가고 있다. 이런, 그러고 보니 우리도 꿈꾸는 대가로 이윤을 공급해주는 건전지인가. 올 11월까진 꼼짝없이 네오의 재림을 기다려야만 하는.
이민아/ 자유기고가 mina74@yahoo.com

이 외에도 <수병위인풍첩>의 가와지리 요시아키가 감독한 <프로그램>, 달리기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매트릭스의 실체를 엿보게 된 남자 이야기 <월드 레코드>, <메모리즈: 그녀의 추억>의 모리모토 고지가 감독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