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 〈꿈꾸는 지렁이들〉
‘얇고도 안전하다.’ 생리대가 갖추어야 할 기능적 덕목은 이렇게 요약된다. 요즘 시장에 나오는 초박형(1.5mm) 생리대는 두께에서라면 기술적으로 더 이상 얇아질 수 없다고 할 정도다. 그렇다면 안전은 어떠한가. 주 소비자인 여성의 몸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뜻에서의 안전인가? 아니다. 생리혈을 신속하고도 감쪽같이 빨아들임으로써 행여 칠칠치 못하게 옷에 묻히는 실수로부터 지켜준다는 의미다.
에코 페미니스트 그룹 ‘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꿈지모)이 쓴 <꿈꾸는 지렁이>(환경과 생명 펴냄)는 생리대 회사와는 아주 다른 관점에서 안전도를 묻는다. ‘새하얗고 깨끗하며, 기적같이 빠르게 흡수하는’ 생리대가 머금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화학약품은 과연 무해한 것인가, 흡수 솜 안에 들어 있는 알갱이 형태의 고분자 흡수체(흡수겔)는 여성의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얀색을 만들기 위해 염소 표백을 하는 것은 아닌가 등등.
이 책은 이 밖에 화장품, 농약, 모유수유운동, 조산술처럼 여성의 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데도 그늘 밑에 꽁꽁 숨어만 있던 주제들을 끄집어낸다. 주름살 억제용 크림들이 피부를 민감하게 만들어 오히려 노화를 촉진시키지는 않는가? 반드시 로션과 모이스처 크림, 에센스를 다 발라줘야 한다는 화장품 회사의 선전은 믿어도 좋을까? 화장품에 들어간 방부제는 해롭지 않은가? 애를 낳을 때는 반드시 산부인과 병원에서처럼 비스듬히 누운 자세여야 할까? 조산술은 병원에 비해 낙후된 저기술로 폄하돼도 좋은가? 왜 농촌의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더 빈번하게 농약에 노출되는 걸까? 모유수유운동이 되레 육아를 여성의 몫으로만 돌리게 되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꿈지모’는 생태 사상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문순홍(바람과물 연구소 소장)씨가 2000년 봄학기에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에서 ‘환경과 여성’을 강의하면서 수강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탄생한 모임이다. 지은이 중 한명인 이윤숙씨는 머리글에서 “여성들은 언제나 쉼 없는 노동으로 생명을 일구고 먹여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살림’의 노동은 늘 폄하되어왔고, 그 ‘살려내고 보살피는’ 몸짓들이 칭찬받고 주목받을 때조차도 고된 살림의 노동은 언제나 여성의 몫이라는 견고한 ‘성별 분업’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생명을 돌보면서도 무시와 차별 속에 살아온 여성과 흙 밑에서 꿈틀대며 땅을 살리고 기름지게 해온 지렁이가 서로 닮은꼴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꿈지모’가 소망하는 세상은 지렁이가 더 이상 소외되지 않고 좀더 당당하게 그 역할과 사명을 존중받는 곳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