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숙의 사이언스크로키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뜻의 “There’s no rule but has some exceptions”란 문장은 학창 시절 누구나 열심히 암기하던 것 가운데 하나다. 물론 영어 시간에 이것을 배우는 이유는 그 의미라기보다 ‘but’가 보통 접속사로 쓰이지만 이 경우에는 관계대명사의 역할도 겸한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다. 따라서 의미는 대충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법칙·법규·규칙 등에는 일정한 예외가 있다. 교통법규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누구나 잘 지켜야 한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일어났다면 앰뷸런스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 돌발적인 범죄를 추적하는 경찰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까지 엄격한 준수를 고집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큰 비극과 혼란을 맞는다. 그리하여 원칙을 일부 희생하면서 대승적 차원의 질서를 추구한다.
그런데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문장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자기모순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이 옳으려면 거기에도 예외가 있어야 하며 따라서 “예외 없는 법칙은 있다”라고 결론지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리적으로야 어떻든 실제로 우리가 접하는 법칙들을 살펴보면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로 많은 예외가 관찰된다. 그리하여 “이 말은 비록 논리적으로는 모순일망정 현실적으로는 역시 진리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는 범죄에서 이런 현상을 많이 본다. 분명 처벌을 받아야 할 듯한데도 드높은 비판을 비웃듯 유유히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란 말은 어느덧 고전적(?) 문구가 되었다. 또한 법망, 즉 ‘법이라는 그물’은 아주 작거나 아주 큰 고기는 잡지 못하고 오직 잡을 만한, 또는 목표로 삼은 고기만 거둬들인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런 한편 우리는 “적어도 자연과학에서는 그렇지 않겠지”란 생각을 한다. 사람은 속일지라도 자연은 진실하다는 믿음이 그 배경에 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자연과학 법칙들에서도 많은 예외가 관찰된다. 수학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0으로 나누기’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사칙연산을 평생 되풀이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오직 0으로는 나눌 수 없으며 이를 무시하면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또한 가장 널리 쓰이는 법칙의 하나인 에너지 보존법칙도 예외는 아니다. 양자역학의 핵심을 이루는 불확정성원리에 따르면 계의 에너지와 측정 시간의 불확정성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성립한다. 그리하여 측정 시간보다 짧은 시간 동안에는 에너지보존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은 역시 공평한 것일까. 같은 보존법칙의 하나인 운동량보존법칙은 예외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껏 단 하나의 예외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하여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예외 없는 법칙은 있다”는 말이 진리임을 밝혀준다. 그런데 사실 말하자면 예외라는 것도 정작 그것 하나만을 두고 보면 예외라고 할 수도 없다. 나아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외를 허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며, 예외들도 나름대로 타당한 규율에 따르게 하면 될 뿐이다. 결국 문제는 예외가 아니라 규율에 있다. 올바른 규율을 적용하는 한 예외 없는 법칙도 있음은 물론 “예외 있는 법칙은 없다”는 말도 가능할 것이다.
고중숙ㅣ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일러스트레이션 | 이강훈
고중숙ㅣ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