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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객주’의 식솔들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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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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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제일의 장국밥을 자랑했던 구포 덕천객주… ‘덕천고가’에서 그 비법을 잇는다

전통사회에서 오일장을 중심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를 매개하였던 전문적 상인인 보상과 부상을 총칭하여 보부상이라 불렀다. 보상은 주로 기술적으로 정밀한 세공품이나 값이 비싼 사치품 등의 잡화를 취급하였는데,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였다. 그리고 부상은 조잡하고 유치한 일용품 등 가내수공업품을 위주로 했는데, 상품을 지게에 얹어 짊어지고 다녔다. 보부상은 상품 유통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직접 소비자들과 상대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행상’이다.

사진/ ‘덕천고가’의 장국밥에는 돼지 사골뼈를 뼈가 물러질 정도로 곤 ‘곰국’과 그 곰국에다 조선된장을 풀고 끓인 ‘장국’ 두 가지가 있다.
객주는 생산자나 상인의 물건을 위탁받아 팔아주거나 매매를 거간하며, 그에 부수되는 여러 기능을 담당하는 초기 자본가 계급에 속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좌상’으로, 김주영의 소설 <객주>에 나오는 신석주,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나오는 송도 배대인 등이 그들이다. 객주의 원형은 물품의 위탁 매매를 주업으로 하는 물상객주(物商客主)다. 그런데 물상객주는 생산자와 상인의 물품을 위탁받아 매매하는 업무 외에 위탁자들을 위한 숙박, 금융, 도매, 창고, 운송 등 일종의 부업도 함으로써 오늘날의 재벌기업 또는 종합상사와 같은 역할을 했다.

부산의 구포는 조선시대 낙동강 수운과 동래를 잇는 포구로 각종 물산이 집산되는 곳이다. 조선시대부터 3일, 8일에 열리는 5일장이 있어서 김해, 양산 일대의 보부상, 생산자, 소비자들이 모여 큰 정기 시장을 형성하였다. 이런 지리적 조건으로 구포에는 자연스럽게 거상 물상객주들이 여럿 존재하고 있었다. 19세기 말 일제의 침략이 거세지면서 전근대적 산업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조선의 경제는 속속 국가자본을 앞세운 일본 자본가들의 영향력 아래에 떨어지고 만다. 이에 지주계급과 초기 자본가 계급인 물상객주들이 나름대로 자구책을 구하게 되는데, 이의 한 형태가 1908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한 근대적 민족계 지방금융회사인 구포저축주식회사였다.

구포저축주식회사는 구포의 지주 출신 윤상은과 쌀의 대일 수출로 거상이 된 물상객주 장우석 등 70여명이 합자하여 설립한 회사로, 예금과 대금업, 어음할인업 등 그 업무가 근대 은행과 별 차이가 없었다. 구포저축주식회사는 탄탄한 자본력으로 경영도 충실하였고 영업실적도 매우 양호해 사세가 크게 일어났으나, 1909년 국권피탈 뒤 조선의 경제를 완전히 장악하고 민족자본의 형성을 철저히 압박하려는 일제의 정략에 의해 일본 상공인들을 주주로 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제의 <조선회사령>에 의해 1912년 해체돼 구포은행으로 새로이 발족하게 됨으로써 한국 최초의 민족계 지방금융회사는 좌절되고 만다.

이때에 활동한 구포의 물상객주 중에 지금의 부산시 북구 덕천동 부근에 살았던 김기한이라는 거상이 있었다. 김기한의 덕천객주에는 김해, 양산 일대의 보부상들, 거간꾼, 목도꾼, 뱃사람 등 수십명의 식솔들이 들락거렸다. 따라서 이들을 삼시 세끼 먹이는 것도 수월치가 않았는데, 이들을 먹이기 위해 끓이던 국밥이 낙동강 칠백리 물길을 통해 영남 제일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구포 덕천동에는 덕천객주 김기한가의 장국 비법을 이어받은 장국밥집 ‘덕천고가’(051-337-3939)가 있다.


이 집의 장국밥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돼지 사골뼈를 토막 내어 가마솥에 넣고 뼈가 물러질 정도로 하룻밤 하루 낮을 고아 뻑뻑하게 골수가 빠져나온 진땡(眞湯)이라 부르는 ‘곰국’이고, 다른 하나는 그 진땡에다 조선된장을 풀고 우거지, 부추, 고추, 마늘, 파 등을 넣어 끓인 ‘장국’이다. 진땡은 꼭 낙동강 하구 명지에서 나오는 천일염으로만 간을 하고, 장국의 된장은 김해 주동에서 생산되는 콩으로 만든 토장만을 쓰는데,그 어느 것이든 입에 착착 들러붙는다. 시끌벅적, 풍요의 물산집산지 구포의 영화도 사라지고 이제는 대도시 부산의 그저그런 변두리의 하나로 되어버렸지만, 주방에서 맛을 책임지는 김기한가의 며느리 권명군, 그리고 그 전통을 이어가려는 그의 남동생 권경업을 통해 100여년 전 구포 물상객주가의 넉넉한 장국 인심을 느낄 수 있다.


김학민 ㅣ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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