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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개인은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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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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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의 역사

‘개인’(individual)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개념이 아니다. 서양의 개인은 유일신 앞에서 얼굴을 감추고 엎드려 있어야 했고, 동양의 개인은 가족과 친척, 사회의 제도윤리에 칭칭 감겨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개인의 자각은 언제 이루어졌을까 러시아의 역사가 아론 구레비치는 <개인주의의 등장>(이현주 옮김, 새물결 펴냄)에서 복잡다단한 개인의 역사를 파헤친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사람’(person)이란 말조차 없었다. 그리스어 ‘프로소폰’(prosopon)과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는 무대에서 사용되는 가면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한명의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 쓰며 그 가면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프로소폰 또는 페르소나는 한명의 개인을 가리키지 않았다. 성격(character)과도 유사한 개념의 페르소나는 제도와 사회가 정해준, 외부에서 결정된 정체성이었다. 프로소폰·페르소나가 한명의 사람으로 진화한 것은 중세 기독교 때였다. “그리스도 교회의 세례를 통해 인간(human being)은 한 사람이 된다”고 13세기 문헌은 말한다.

그러나 물론 이때의 사람은 여전히 현대적 의미에서의 ‘개인’이 아니다. 아론 구레비치에 따르면 개인은 “씨족적 존재에서 벗어나 사회적 신분에 따른 여러 제한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다. 지은이는 이런 개인의 전형이 르네상스 시대 때 갖춰졌다는 많은 역사가들의 지적을 거부하고, 중세 이전 스칸디나비아 문학의 전통까지 거슬러올라가 곳곳에서 출몰한 개인의 계보를 더듬는다.

고대 노르웨이 서사시에는 뛰어난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중 대표적 영웅인 ‘에갈’은 거친 바이킹이자 세련된 궁정시인, 자애로운 아버지, 부와 선물을 기대하는 남자이며 충성스런 친구 등 모순적인 성격의 인물로 나타나는데, 에갈이 구현하는 개인성은 집단의 윤리에 자신을 완전히 동화시키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인간적 겸손함을 요구하는 기독교가 개인에 대한 관심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한 것은 확실하지만, 중세 시대에도 역시 개인의 탐구는 계속됐다. 이 중 <고백록>을 쓴 성 아우구스티누스(AD 354~430)는 기독교 안에서 개인의 ‘내적 공간’을 탐구하는 데 큰 진전을 이뤘다. 방종한 생활로 젊음을 탕진하며 살다 어느 날 진정한 신을 발견하게 된 그는 “나는 운명도 아니요, 숙명도 아니요, 악마도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가 바라본 세계의 중심은 “창조자를 대면하는 에고”였다. 중세의 다른 저자들이 스스로를 이교도, 성서적 영웅, 복음서·역사·문학의 인물에 비교하는 것과 달리, 아구구스티누스는 자신에 대해 묵상하고 본래 그대로의 자신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글을 쓰는 지식인 집단말고도 개인은 여러 계급에서 발견됐다. 8세기의 한 조각가 밀라노 대성당의 황금 제단 위에서 왕관을 씌워주는 성자 앞에 무릎을 꿇은 인물로 자기를 묘사했으며, 다른 장인들 역시 곳곳에 자기의 서명을 남겼다. 기독교 윤리에 직업의식이 덧씌워지면서 기사와 상인 역시 각자 소명대로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며 개인성을 형성해나갔다.

지은이는 “개인은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결론내린다. ‘개인’은 중세 이전부터 싹을 틔웠지만, 자아에 대한 개인의 태도, 자각을 의미하는 영어의 접두어 ‘self’는 종교개혁 이후에야 등장했다. ‘개인’은 느리고 더디고 힘겹게 일상의 영역으로 편입돼온 것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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