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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잃어버린 개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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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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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사에서 궤멸된 개인주의의 흔적을 복원한 박노자 교수의 <나를 배반한 역사>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학생 시절 조회시간마다 되뇌어야 했던 ‘국기에 대한 맹세’를 떠올리면 당황스럽다. 몸과 마음을 바쳐 ‘나’의 자아를 죽이고 집단 속으로 들어가라는 ‘거대한’ 주문에 대해, 그리고 한명도 빠짐 없이 가슴에 손을 올린 채 태극기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충성을 다짐하도록 길들여진 어린 나와 친구들에 대해서.

국가주의·제국주의에 짓밟힌 사람들


사진/ 박노자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은 외세의 제국주의 논리를 내면화해 ‘개인’을 말살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한국인의 마음속 깊이 주입된 절대적 민족·국가주의의 기원을 좇아서, 한국학 연구자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학)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신문과 잡지, 개인문집 등 생생한 자료 속으로 들어가 촘촘히 짜낸 근현대 사상사가 <나를 배반한 역사>(인물과사상)로 묶여 나왔다. 여기서 역사에 배반당한 ‘나’는 ‘개인(주의)’이다. 박 교수는 국가주의와 제국주의 사상의 홍수 속에서 한국사가 잃어버린 개인주의를 안타깝게 되돌아본다.

‘대포가 없으면 권리도 없다’는 태도로, 휘청거리던 조선의 마지막 고혈까지 짜내기 위해 달려드는 제국주의 국가들을 보면서 당시 지식인들은 ‘부국강병’을 필연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 목표 앞에서 개인주의는 없애버려야 할 이기주의이거나, 국가를 위해 양보해야 할 사소한 것이었다. 1924년 7월 <개벽>을 통해 박영희가 “개인주의는 일체 권력에 불복종하여 이기적 자아를 자라게 하는 것이다. 자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국가사회를 원하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은 당시의 일반론이었다.

192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 유행한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의 개인주의는 권위주의적 사회는 그대로 두고 카페의 자유로운 공간에서 이성교제와 에로틱 문학, 서양의 최신 유행 의상을 즐기며 고등교육이 보장하는 출세를 포기하지 않는 틀 안에서만 존재했다. 박 교수는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소비 취향의 자유나 또래 따라하기에 열중하는 현재 한국 대학가의 일부 신세대들이 허약한 근대 개인주의자들의 연장선에 있다”고 지적한다.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는 현재까지도 좌·우파 지식인 모두가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다. 한 학생회장이 1990년대 대학 학보에 쓴, ‘사회의 진보를 위해 애국·애족하는 학생들이 모든 것을 바쳤던 80년대’를 예찬하고 ‘개인주의가 독버섯처럼 번진 지금의 일그러진 시절’을 대조하는 훈시는 ‘개인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면서 서로 배려하고, 억압적인 온갖 제도와 이념에 저항해 비타협적으로 싸울 수 있는 정신의 무기인’ 개인주의의 본뜻과는 먼 거리에 있다.

약육강식의 논리는 지금도 계속된다

박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은 외세의 침략을 받은 사람들이 제국주의의 반인륜적인 논리를 철저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점”이라고 말한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공포에 길들여지고 “내가 맞을 짓을 했지”라며 남편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것처럼 제국주의의 힘 앞에 무릎을 꿇은 조선말 지식인들은 약육강식의 논리를 뼛속 깊이 받아들였다. 제국의 힘에 대항하려면 국가의 힘을 키우고 국민을 훈육하는 부국강병의 길밖에 없다는 것이 당시의 결론이었다. 개명 유학자 박은식이 <대한매일신보> 1909년 7월21일치에 쓴 “강권이 있는 자는 성현이며 군자며 영웅이요, 강권이 없는 자는 용렬한 놈이며 천한 놈이며 소와 말이며 개와 돼지다”라는 글은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에 못지않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의 세계질서를 그대로 따르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가혹한 지금 우리의 모습과 오싹하게 겹쳐진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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